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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죄다 축구에 갖다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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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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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호/ <오마이뉴스> 방송팀 기자

지난 2월2일 오후 열린우리당 당 의장 선출 예비 경선이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렸다. 비록 9명의 후보 가운데 최소 득표자만 탈락하는 예비 경선이었지만 열기는 전당대회 못지않았다. 후보들은 500여 명 선거인단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열변을 토했다. 김근태 후보는 “고문 후유증 때문에 연설을 하면 콧물을 흘린다”며 아예 손수건을 꺼내놨다. 임종석 후보는 ‘반한나라당 선거연합’을 주장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 후보들의 입심 대결보다 귀를 사로잡은 것은 짬이 날 때마다 울려퍼진 열린우리당 ‘당가’였다. 구수한 멜로디와 낯간지러운 가사는 여느 당가와 다르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5박자 축구대표팀 응원구호에 가사만 바꾼 ‘대~한민국 새로운 정치, 대~한민국 잘사는 나라’라는 부분은 익숙한 박자 때문인지 귓속에 계속 맴돌았다. 한 선배 기자는 지난해 열린우리당 전당대회 취재 뒤, ‘당가’의 환청까지 들었다고 한다.

열린우리당 당 의장 선출 예비경선에서 결선에 진출한 후보들이 인사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종찬 기자)

응원박자를 ‘당가’에 삽입할 정도로 축구를 사랑하는 열린우리당은 종종 축구대표팀을 정치에 연결시키기도 했다. 2004년 12월 여야 대치가 심할 때 이부영 당 의장은 세대교체를 이룬 우리나라가 독일을 3 대 1로 이긴 것을 언급하며 “17대 국회도 엄청난 세대교체를 이루었고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고 개혁 완수를 외쳤다. 지난해 6월에는 정세균 원내대표가 박주영이 활약한 청소년 축구대표팀의 승리를 되새기며 “의원 개개인이 박주영이 되는 노력을 열심히 하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문희상 의장도 축구대표팀이 이란을 2 대 0으로 이긴 사실로부터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통합의 정치, 통합의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주장을 이끌어냈다. 18일 전당대회 때까지 당을 맡고 있는 유재건 당 의장은 ‘새로운 당 의장을 뽑는 2·18 전당대회가 아드보카트 감독 대표팀의 전지훈련을 연상시킨다’며 성공적인 전당대회 개최를 다짐했다. 정동영 상임고문도 당 복귀 기자회견에서 아드보카트의 애칭 아드빅(I’d Vic=I Would Victory)을 외치며 당의 부활을 약속했다.

이처럼 열린우리당의 축구대표팀 활용은 경기 결과에서부터 감독의 애칭까지 다양했다. 심지어 임시국회가 열린 지난해 6월 전병헌 대변인은 ‘중대한 논평’이라는 문자 메시지까지 보내 기자들을 불러모은 뒤, ‘한국 축구 6회 연속 월드컵 진출’ 축하를 브리핑했다.

그러나 이같은 애정공세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는 열린우리당의 모습을 축구에 빗대 질타한다. 지난해 11월 열린우리당이 주최한 ‘국민과의 대화’에 참석한 정진우 목사는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이 넘었을 때 개혁 법안 통과에 실패한 것을 비판하며, “문전 처리에 미숙한 한국 축구를 보는 것 같다”고 꼬집었고, 지난해 6월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도 열린우리당을 향해 “백패스와 횡패스만 거듭하지 말고 전진하는 개혁으로 골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공을 잘 차도 골을 못 넣으면 욕먹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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