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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지지율 까먹는 애국심의 굴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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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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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합리적 보수세력의 가능성 보였던 박근혜는 왜 ‘이념전사’로 망가졌나
측근·계파 안 만들고 원칙 지켰으나 원초적인 국가주의 가치관이 발목 잡아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박근혜는 장외투쟁에 반대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인 만큼 경제 위기 등을 고려해 국회를 정상화해야 한다.” 박근혜 부총재는 2000년 9월 부산과 대구 집회에 끝내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DJ 정권의 자민련 교섭단체 만들어주기에 반대하며 이회창 총재를 중심으로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박근혜는 등원론을 펴며 이회창의 강경 투쟁 방식에 반기를 들었던 셈이다.

2000년 장외투쟁 결사 반대 6년 후…


박근혜 대표가 한 달이 넘게 전국 곳곳을 누비며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여론을 되돌리지 못하고 있다. 박 대표가 1월5일 서울 영등포 구민회관에서 열린 ‘사학법 규탄대회’에 참가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류우종 기자)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지난 1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에서 차로 20분쯤 떨어진 서대문 문화체육회관 3층 대강당에서 ‘날치기 사학법 원천 무효 및 우리 아이 지키기 위한 당원 교육’ 행사가 열렸다. 행사장엔 1천 명 이상의 한나라당 당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강당에 들어서자 사회자는 마이크 볼륨을 한껏 높이고 분위기를 띄웠다. “우리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쓰러져가는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박근혜 대표님이 들어오십니다.” 누군가 “박근혜!”라고 선창하자 “박근혜! 박근혜! 박근혜!”라는 합창이 터져나왔다. 박근혜도 화답했다. “지난 2년간 당은 싸울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고통을 덜려고 참고 또 참아왔습니다. 다른 것 다 용서해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훼손하는 것만은 용서가 안 됩니다. 이것을 못 막으면 나라의 근본부터 흔들리고 선진 한국 건설은 물거품이 됩니다.”

2000년과 2006년 박 대표의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김형준 국민대 정치학 교수는 “본인이 비주류였을 때와 주류일 때”라고 그 차이의 원인을 설명했다. 박근혜가 그토록 중시하는 원칙을 스스로 깨뜨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근혜 자신은 어떻게 느낄까? 과거나 현재나 박 대표의 명분은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에겐 두 가지가 모순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 ‘애국 처녀’ 박근혜에겐 모든 행동 규범의 제1원칙은 바로 ‘나라 사랑’이다.

역설적이게도 박 대표의 나라 사랑은 자신과 당의 지지율을 까먹고 있다. 지난해 12월13일 국회를 뛰쳐나온 지 한 달 동안 대표의 직무수행도는 추락했다. 당의 지지율과 대권 예비 후보들 가운데 박 대표의 선호도 또한 하락했다. 특히 장외투쟁에 대한 여론은 차갑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나 한길리서치에 따르면 등원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80%를 웃돈다. 당내도 마찬가지다. 의원들이 대표적 ‘반박(박근혜)’으로 꼽히는 이재오 의원을 원내대표로 뽑은 것도 박 대표의 강경투쟁에 대한 불만과 견제를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고진화 의원은 이를 “박 대표의 사학법 투쟁에 대한 중간 평가”라며 “원내대표 지지율인 58%는 당내 장외투쟁 철회 요구”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왜 고집스럽게 장외투쟁을 계속할까? 박근혜는 이미 등원을 위한 명분 찾기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여론에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1년 동안 박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승민 의원은 “대표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인기를 고려했다면 이렇게 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론을 업지 못한 장외투쟁의 고수를 계기로 박근혜의 당내 기반은 보이지 않게 침식되고, 그의 리더십에 대한 회의 또한 커지고 있다. 지난 4·15 총선 때 난파 직전에 처한 한나라호를 구하면서 보였던 긍정적 리더십에 상반되는 것들에 대한 주목도가 커졌다.

정치1기 합리적 보수, 2기 이념 전사

박근혜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네 시기로 나눴다. 그의 홈피에 들어가면 대통령의 딸 → 22살의 퍼스트레이디 → 10·26 이후 → 국회의원 박근혜로 구분한다. 여기에서 국회의원 박근혜를 현재까지 다시 2기로 나눠볼 수 있다. 그가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2004년 7월 전당대회를 통해 두 번째 당 대표로 선출되는 기간까지와 같은 해 8월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국가 정체성의 수호자로서 박근혜다.

박근혜는 1기 때 당내 개혁과 합리적 보수세력으로서 가능성을 보였다. 당시 야당 대통령인 이회창을 중심으로 한 사당화, 계파 정치, 금권 정치에 맞서 싸운 것이나, 2002년 방북, 2004년 정동영 당의장과의 5·3 상생협약, DJ에 대한 사과 등은 박근혜에게 새 보수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2004년 3월 총선 직전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저는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우리 한나라당을 진정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에 앞장서는 실용 정당으로 만들겠습니다”라고 밝혔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연구소장은 “박근혜가 처음 대표를 맡았을 때 보안법 개폐 문제의 수용 가능성 시사와 그 과정의 연속상에서 대북 문제의 접근 방법도 이전 한나라당과 다르게 표현했다. 그래서 수구꼴통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좀더 합리적인 중도 노선으로 오겠다는 것으로 비쳤다”고 말했다.

그러나 2기 때부터 여당과의 대치 정국으로 흘러가면서 박근혜는 ‘이념 전사’의 모습으로서 부각됐다.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NLL) 침범, 민주화 유공자 선정 시비, 국가보안법, 강정구 동국대 교수 발언 파문, 사학법 개정 논란의 와중에서 박근혜는 이념전의 선봉에 섰다. 홍형식 소장은 “결과적으로 지금 그때(2004년 8월 이전)보다 우경화됐다. 보수화를 강화하면서 ‘그 아버지의 그 딸’이라는 것을 스스로 정당화해줬다”고 지적했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실장은 “과도한 애국주의로 가면서 과거 보수주의에 대한 개혁을 하지 못하고 발목이 잡혔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표의 수심이 깊다. 자신뿐만 아니라 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등원의 명분을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진/ 류우종 기자)

장외투쟁이 전략적 이해타산의 결과물이 아니라 박근혜의 신념의 산물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가 정치공학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박 대표의 리더십을 “확실한 국가관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항상 자기가 생각하는 마지노선을 지키려고 자기의 모든 것을 거는 것은 거의 신앙적인 신념”이라고 말했다. 박근혜에 비판적인 한나라당 인사조차 “행동의 동기가 내 이익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아니라 애국에서 이뤄지는 것 같다”며 “다만, 박근혜는 국가와 자신을 일체화하는 병적 착란증에 있지 않나 싶다”고 분석했다.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 리더십의 가장 큰 특징을 “원칙”이라고 꼽았다. 하지만 그의 신념이 타인의 신념과 충돌할 때 잘 융합하지 못하고 고집으로 비쳐질 때도 적지 않다.

김형준 교수는 “보안법, 과거사법, 사학법 등에서 국가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은 모든 것을 체제 문제의 시각에서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는 스스로 설정한 이념적 가이드라인을 넘어서는 것과는 좀처럼 타협하거나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유승민 의원은 “박 대표가 이념적으로 경직돼 있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당내에서조차 많은 의원들의 생각은 그와 다르다. 특히 박근혜의 국가주의에 가까운 나라 사랑이 추상적인 절대가치로 작동하면서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모순이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개방형 이사제를 중심으로 전교조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민주적인 다양성의 가치를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이 들게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형준 교수는 “박 대표가 얘기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인권과 자유 등 개인의 권리에 대한 것은 전혀 없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반공과 안보로만 가득 차 있다”고 비판한다. 그의 리더십이 산업화·근대화 이후 사회 구성원 간 협력과 조정이 필요한 민주주의 운영에 맞는 것인지 회의적인 시각조차 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박근혜의 리더십은 사회의 다원성을 이끌어갈 민주주의 리더십이 아니라 절대왕조나 권위주의 시대의 리더십에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박근혜의 신념이다. 2004년부터 사학법 개정을 체제를 훼손하는 법안으로 규정하고 이를 막겠다고 선언한 만큼, 무효화를 위한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일 수 있다. 당직을 지낸 한 의원은 “약속 지키기는 박근혜의 장점이자 어느 순간 유연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며 “박 대표는 국가 정체성 국면에 들어가면 자기가 한 말에 계속 구속돼 빨려들어간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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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박정희=국가라는 삼위일체

박근혜는 자신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자 뿌리인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비판에 알레르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는 최근 국정원 과거사위가 인혁당 사건이 조작됐다고 발표하자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 우리 역사를 왜곡해 함부로 발표하는 것 자체가 과거사가 될 것이다. 인혁당 문제도 증거는 없지만 정황이 이렇다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밑 바탕에 박근혜=박정희=국가라는 삼위일체가 박근혜의 논리적 사고 구조에서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까지 낳고 있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박사는 일찍이 “그녀에게 조국애란 거의 모태신앙과 흡사하다. 스스로의 판단으로 선택하기 이전에 그녀에게 주어진 원초적 가치관 같은 것이다. 그녀에게는 아버지 박정희가 조국 그 자체인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한 재선 의원은 박근혜의 리더십을 “북한 사회의 유훈 통치의 한 형태”라고 도발적으로 평가했다. 박근혜가 아버지의 후광에 매여 있는 한 이같은 비판과 분석은 따라다닐 것으로 보인다. 당직을 지낸 한 재선 의원은 “과거 정치적 자산은 동전의 양면처럼 박근혜에겐 딜레마”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표와 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뭔가를 이끌어내는 방식이 토의나 협의를 통한 쌍방향이 아니라, 밑으로 하달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가 여자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피상적인 것 이상이라고 한다. 박근혜는 과거 대표들과 달리 술판 정치나 계보 정치를 하지 않는다. 당연히 의원들과의 스킨십 기회도 줄어들었다. 당직을 지낸 한 인사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정치적 자폐아”라며 “귀를 닫고 자기 생각과 이념을 밀고 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유승민 의원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근거를 갖고 설득하면 설득되지 않을 때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가 당 대표가 됐을 때 한나라당이 합리적 보수로 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지만, 이념전이 불붙으면서 오래가지 못했다. 박 대표가 2004년 3월 대표에 당서된 뒤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폐쇄적 리더십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은 같은 이유로 박근혜의 인사 스타일도 문제 삼는다. 많은 의원들이 공통적으로 “박 대표가 자신의 가치관의 틀 안에서 사고하는 사람을 편향해서 쓴다”고 말했다. 영남권 인사에 포위돼 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특히 지난해 김무성 사무총장, 유승민 비서실장, 전여옥 대변인 등이 박 대표의 곁에 있을 때 비판은 최고조에 달했다. 대표적 영남 보수 의원인 김기춘을 여의도연구소의 소장에 앉힌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측근’으로 불리는 유승민 의원은 “박 대표의 측근은 없다. 누구를 따로 챙기는 법이 없다”고 말하고, 이정현 부대변인은 “박근혜 계파가 누가 있는가? 다 ‘비박’”이라고 주장한다.

계파를 만들지 않는 그의 정치는 실험적이다. <문화일보>의 천영식 기자는 책 <나는 독신을 꿈꾸지 않았다>에서 박근혜의 무계파 정치에 대해 “배신에 대해 체질적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이는 사람을 차단하는 한 원인이 되고, 무계보 정치를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동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가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되는 순간부터는 여당 후보와의 대결 국면으로 돌입하기 때문에 스킨십이 부족한 여성으로서 박근혜의 단점은 해결될 것이라는 게 주위의 전망이다. 하지만 그전까지 그가 의원들의 에너지와 장점을 한데 묶어나가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던진 어젠다가 도대체 뭔가

과거 계파를 통한 당 정치나 이회창 전 총재와 같은 카리스마가 없는 대신에 박근혜는 대중의 지지를 정치 동력으로 삼는다. 김기춘 소장은 박 대표 리더십의 힘의 원천을 “대중이 그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4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박근혜의 미니홈피를 방문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대선 후보들 가운데 그의 지지층이 가장 견고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의 지지층은 여성, 보수층, 서민층, 20대다. 박정희 향수층이 그의 주요 지지층이지만, 여성과 젊은 층을 끌어안을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의 지지율은 상승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하향 추세라고 여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홍형식 소장은 “박근혜와 고건의 리더십은 통합과 안정의 리더십인데,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 안주적, 과거 지향적 리더십으로 비쳐지기도 한다”며 “노무현 정권 초기에 이런 리더십이 각광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1~2년이 지나 이제 그런 혼란은 버틸 만하다고 판단한 유권자들이 미래 지향적인 리더십을 바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박근혜의 ‘상황 추수형’ 리더십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이다. 4·15 총선 때 선거대책본부장으로서 박근혜 대표를 도운 윤여준 전 장관은 “노무현이 던진 어젠다(의제)나 이슈가 성공과 실패, 잘잘못과 별개로 과연 박근혜와 한나라당이 던진 어젠다가 있나? 야당으로서 집행 능력이 없다는 한계가 있겠지만 어젠다는 제시할 수 있다. 늘 대응하다 보면 비판만 하면서 끌려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나면 그런 것(비전)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데올로기에 목숨을 거는 듯한 집착!

그러나 비전 제시에 앞서 과거 정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당직을 지낸 초선 의원은 “박근혜는 박정희의 어떤 부분은 자신이 계승하고 어떤 부분은 극복해야 하는지를 먼저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런 것이 없이 박정희의 그늘까지 다 상속한 것처럼 보이면서 시대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박정희의 극복이 여전히 박근혜의 우선 과제인 셈이다.

그의 ‘이념정치’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당직을 지낸 한 의원은 “이데올로기에 목숨을 거는 듯한 집착에서부터 벗어나라”고 충고했다. 박근혜가 말하는 애국이란 것도 자신의 주관적, 관념적, 추상적 가치 체계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것이 정치투쟁의 잣대와 무기가 돼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한 보좌관은 “박근혜의 애국심이 순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이 시대에 맞는 애국심인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모독한 것, 반드시 계산할 것”

예외적으로 환대하던 북한이 박근혜 대표를 비판한 이유는

북한은 지난 1월4일과 16일 잇따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비판했다. 조선중앙방송은 “박근혜가 우리의 은공도 모르고 우리를 함부로 걸고 들며(트집 잡으며) 모독하는 데 대해서 우리는 지켜보고 있으며 반드시 계산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 한나라당의 당 대표는 북한의 비판 대상 1~2위를 다퉈왔던 자리다. 하지만 북한은 박근혜 대표가 지난 2004년 3월 대표 직무를 수행한 이래 한 번도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한 적이 없었다. 박 대표가 2004년 하반기 국가보안법 폐지를 결사 반대할 때도, 북한은 김덕룡 당시 원내대표와 김용갑, 정형근 의원 등을 ‘5적’으로 꼽았을 뿐 박 대표를 넣지 않았다.

이같은 박 대표에 대한 배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관계 때문이다. 박 대표는 2002년 5월11일 EU코리아재단의 이사 자격으로 방북했다. 김 위원장은 특별 전용기를 내줬으며, 6·15 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이 묵었던 백화원 초대소에 묵게 했다. 두 사람은 1시간 동안 단독 면담과 2시간 동안 만찬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1·21 청와대 습격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이회창 전 총재 등 과거 한나라당 인사들과 달리 그가 우호적인 대북 인식을 지녔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2002년 “차기 국가 지도자도 포용정책을 펴서 전쟁이 아닌 평화 국면으로 가야 한다. 가장 중요한 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포함한 북한 당국과의 신뢰 구축”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박 대표의 국가 정체성 이념 논쟁이 거듭되면서 간접적인 북한 때리기가 계속되자 북한이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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