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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DJP 뭉치자 불만만 쌓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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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3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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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자민련, 실익없는 공조복원에 당혹… 잇속 챙기기·불협화음 이어져 합당론 대두

사진/민주·자민련의 동상이몽? 양당 수뇌부가 공조복원을 통해 손을 맞잡았지만 서로 다른 속셈을 가지고 있다.(이용호 기자)
“교섭단체 구성하고 정당보조금 받게 됐지만 우리쪽이 잃은 게 더 많다. 돈받고 노비문서에 서명한 셈이니 이제 민주당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자민련 한 핵심 당직자)

“의원까지 보내 교섭단체를 만들어 줬는데 도움주는 것은 없고, 밥그릇 챙기는 데만 열을 올린다. 너무한다. 이렇게 간다면 공조복원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민주당 수도권 한 재선의원).

청와대와 민주당이 ‘의원 임대’라는 엽기적 수단을 동원해가며 어렵사리 DJP공조를 복원한 지 한달이 가까워지면서 민주당과 자민련 안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공조복원의 실익과 앞날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강한 정부 뒷받침할 우군이 없다


민주당은 공조복원 직후 한동안 정국운영에 자신감을 회복하는 듯했다. 때마침 안기부 예산 선거자금 전용 수사가 불거지자 몇몇 민주당 당직자들은 “국회에서 수적 우위를 확보한 만큼 한나라당에 한번 본때를 보이자”며 들뜬 모습까지 보였다. 김대중 대통령도 1월11일 연두기자회견에서 ‘강한 정부론’을 역설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민주당의 기대는 차츰 실망과 우려로 변하고 있다. 의원 임대를 통해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했던 자민련이 정국운영에 부담을 주는 행태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먼저 공조복원을 통한 새 출발을 다짐하면서 안기부 자금 수사를 매개로 한나라당을 거세게 몰아치던 1월14일 김종호 자민련 총재권한대행이 뒤통수를 쳤다. 검찰이 강제소환한 한나라당 당직자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김 대행도 15대 총선 당시 강삼재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2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궁지에 몰렸던 한나라당은 자민련 총재인 이한동 총리와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 등 여권 고위인사들의 자금수수의혹까지 제기하며 “검찰이 명단을 고의로 누락시켰다”고 반격했다. 민주당과 자민련 안에서도 “김 대행 자신도 돈을 받아쓴 마당에 강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 때 소속 의원들 표단속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비관론이 터져나왔다. 결국 이번 사건을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하고 강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을 외치던 여권은 목청을 낮췄고, 검찰도 꼬리를 내렸다.

이뿐이 아니다. 의원 임대에 대한 비난이 채 사라지기 전에 자민련이 ‘제몫 챙기기’에 나서면서 비난여론을 확대하고 있다. 김종호 대행은 1월15일 “여권 고위인사와 만나 장관직을 제외한 기타 정무직에서 자민련 인사들에 대한 배려를 요청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고 공언했다. 이와 관련 자민련 한 고위당직자는 “정부 산하단체 정무직에 임명됐던 자민련쪽 인사들이 DJP공조 파기를 전후해 대부분 밀려났다”면서 “공조가 복원된 만큼 자민련 몫을 다시 배분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자민련의 전·현직 의원들이 오는 3월 예정된 개각 때 장관자리 배분을 요구하며 치열한 로비전을 펼치는 것은 청와대와 민주당에는 큰 부담이다. 자민련은 공조복원에 따른 국정운영 책임보다는 장관자리에 염두를 두고 있는 듯하다. 자민련의 한 당직자는 “모두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하고 재선급은 물론 초선들까지도 장관이 되기 위해 서로를 비난하며 ‘도토리 키재기’를 계속하고 있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이완구·이양희 의원은 행자부 장관, 정우택 의원은 재정경제부 장관, 오장섭 의원은 건설교통부 장관을 희망하며 JP와 여권을 상대로 치열한 물밑로비를 벌이고 있다. 원외인 김현욱 지도위의장은 교육장관을 목표로 뛰고 있고, 구천서 전 의원도 기회를 잡으려 뛰고 있다.

김 대통령과 민주당이 나름의 힘을 쏟고 있는 국가보안법 개정에 대해서도 자민련은 재뿌리기를 계속했다. 공조복원에 힘을 얻은 김 대통령은 지난 1월13일 “북한이 노동당 규약 등을 고치지 않더라도 우리는 (보안법을) 개정해서 우월성을 보여줘야 한다”며 개정의지를 피력했고, 민주당도 15일 “조속 처리”를 다짐했다. 바로 그날 자민련은 고위당직자회의를 열고 “국보법은 상호주의에 입각, 북한의 노동당 규약과 형법이 고쳐지지 않는 한 손댈 수 없다”고 맞받아쳤다.

자민련의 이런 행태에 민주당은 답답함을 감추지 못한다. “공조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의원 임대에 따른 우리쪽 부담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나 요구하고 개혁법안의 발목을 잡고 나서니 한심하다.”(민주당 한 수도권 개혁성향 재선의원) 민주당 서울지역 한 중진의원은 공조가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내놓았다. “(과거) 자민련쪽 추천 인사들의 성향이나 참신성이 별로였는데도 자민련 몫을 채워주다보니 인재등용에 한계가 있었다. 공조복원으로 다시 그 부작용이 생겨날 것이다. 정부가 외치는 공기업 구조개혁의 출발은 인사개혁인데, 이래 가지고 인사개혁이 되겠느냐.”

원조보수 위협받는 자민련의 속앓이

사진/DJP공조의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지 않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부부동반 만찬장에 들어서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민주당의 이런 불평불만에 대해 자민련도 나름대로 할말이 많다. “돈(정부보조금)받고 정조를 내준 우리가 앞으로 국민을 상대로 뭘 할 수 있겠냐. 민주당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데, 실익은 챙겨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공조복원에 대한 당내 불만세력도 그나마 자리라도 얻을까 해서 참고 있는데…. 그 정도 떡고물도 없다면 천하의 JP라도 당을 추스르기 힘들 것이다.”(자민련 충청권 한 재선의원) ‘원조보수’를 내걸고 공조를 깼던 자민련이 공조를 복원함에 따라 존립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자리’가 그나마 불만을 무마하고 당을 유지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자민련 한 중진 인사는 좀더 구체적이다. “우리도 급하지만, 민주당은 정권이 왔다갔다 하는 문제다. 그깟 장관 몇 자리가 문제겠냐. 모두들 넉넉하고 도량있게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적어도 집권 초반 지분인 5∼6자리는 배려해야 한다.” 이 인사는 특히 “이름만 자민련이고, 속 내용이 없을 때는 그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당원들 모두 JP가 더 힘이 빠지기 전에 자기 생존을 위해 공조를 택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원하는 자리가 보장되지 않을 경우 공조복원에 대한 실효성 논란과 함께 몇몇 의원들이 이탈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3월 개각 때 적절한 배려가 없다면 자민련 안에서 JP에 대한 공격이 시작될 것이고, 그 결과 공조틀 자체가 무력화할 수도 있다는 경고다. 자민련 안팎에서는 “이완구 의원 등이 딴 맘을 먹을 수도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자민련의 태도를 비난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이다. 자민련의 대다수 당직자들은 “지난 3년 동안 ‘금융실명제법 폐지’나 ‘교원정년단축 반대’ 등 핵심 당론을 민주당에 양보했다. 남은 것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것뿐이다. 국가보안법마저 포기한다면 자민련은 존재가치가 없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한나라당의 반발과 민주당 내부 이견 때문에 엄두도 못 내던 것을 우리와 공조를 복원하면서 말이라도 꺼내보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댔다. 그동안 내줄 만한 것은 다 내줬는데, ‘원조보수’를 표방해온 자민련의 마지막 존재가치인 국가보안법까지 양보하라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김현욱 자민련 지도위의장도 “공조는 한쪽이 무작정 끌려다니는 게 아니다”면서 “남북관계 급진전에 따른 보수층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은 자민련이 공조를 통해 메워야 할 몫”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민련 내부에는 이런 ‘결기’에 대한 회의론도 적지 않다. “교섭단체도 구성못해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던 우리가 민주당의 장기(의원)를 이식받아 생명을 연장했는데, 그쪽에서 자리를 준들 얼마나 주겠냐. 또 안 줬다고 박차고 나갈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차고 나가는 순간 ‘딴죽만 건다’는 비난여론이 일면서 자민련과 민주당의 합당 명분만 커진다.”(자민련 다른 한 핵심 당직자) 자민련이 50석을 확보했을 때도 장관 5∼6자리밖에 챙기지 못했는데, 민주당 의원을 임대받아 교섭단체를 꾸린 처지에서 현실적으로 챙길 몫은 크지 않을 뿐 아니라 떡고물이 적다고 계속 반기를 들기도 어려운 지경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자리를 탐하다 이탈하면 “부적절한 공조보다 차라리 합당하자”는 여론이 일면서 자민련이 소멸할 수 있다는 전망인 것이다.

“부적절한 공조보다는 합당 효과가 낫다”

사진/DJP공조를 이뤄낸 '임 대의원' 환영식.(이용호 기자)
힘겹게 복원된 DJP공조는 민주당과 자민련 모두에 큰 만족을 주지 못한 채 불만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박상병 한국정당정치연구소 정책연구실장(정치학 박사)은 “의원 임대에 대한 한나라당의 끝없는 공격과 자민련의 밥그릇 챙기기, 이질적인 이념을 가진 공동여당 내부의 불협화음, 이런 문제를 상쇄하려는 청와대의 무리수가 거듭되는 DJP공조는 김 대통령과 민주당에도 결국 더 큰 독이 될 것”이라며 “삐걱대는 부적절한 공조보다는 차라리 합당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게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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