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호 기자/ <오마이뉴스> 방송팀
사립학교법을 둘러싼 대치로 파행을 거듭하던 국회가 지난해 12월30일 열렸다. 예산안과 파병연장 동의안 등 해를 넘기면 곤란한 현안의 처리 때문에 한나라당을 제외한 여야가 모두 모인 것이다. “김원기 의장이 사회를 보면 물리적 저지를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던 한나라당이 본회의장으로 몰려오는 상황을 우려했지만 기우에 지나지 않았고 본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본회의장은 파병연장 동의안 처리 때의 긴장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평온했다. 의원들은 웃고 떠들었고 한 여당 의원은 인터넷 쇼핑까지 즐겼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127석이 텅 비었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이날 장외투쟁 중인 한나라당은 무엇을 했을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당직자들은 보육시설을 방문했다. 뜻깊게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종무식 겸 봉사활동에 나선 것이다. 관광버스를 타고 보육원에 도착한 박 대표는 사학법 무효화 장외투쟁에서 보여준 결연한 표정 대신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환한 얼굴로 원생들에게 선물을 나눠준 박 대표는 “한나라당은 나라의 발전을 위해 노력 중이며, 안전하고 발전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원생들의 공연이 끝난 뒤 기념촬영 시간. ‘브이’(V)자 포즈를 취하라는 주문에 박 대표는 원생들을 둘러보고 “내년은 승리하는 해예요”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강당을 나선 박 대표는 원장의 안내에 따라 보육원 시설을 돌아봤다. 4살 이하 아이들의 숙소에서 박 대표는 당에서 마련한 목도리를 아이들에게 직접 둘러주며 아이들을 안아줬고, 도서관과 숙소동 등을 방문해 아이들과 정담을 나눴다. 약 1시간20분 동안 보육원을 둘러본 박 대표는 다시 버스에 올라 배웅 나온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보육원을 떠났다.
떠나는 박 대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박근혜 대표를 직접 보니 어떠냐”고 물어보자 “TV에서만 봤는데 신기하다” “미인이다” “예쁘다” “좋았다”라며 마치 연예인을 본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런 아이들의 답변은 ‘보육원 방문은 성공적이었어요’라는 평가의 동의어로 보였다. 하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보도자료에 “보육원 내 청소 및 세탁과 원생과의 대화 등이 예정되어 있다”고 나와 있어서 내심 박 대표가 열심히 청소하는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 대표는 선물을 나눠주고 보육원을 한 바퀴 둘러본 것이 전부였다. 청소는커녕 신발을 신은 채 방에 들어가 오히려 청소 거리를 안겨주기도 했다. 발목까지 오는 부츠를 신은 박 대표가 힘겹게 신발을 벗고 다시 신는 번거로움을 보다 못한 보육원장이 마지막 건물에서는 신발을 벗지 않게 배려한 것이다.
박 대표는 이날 ‘한나라당 없는 국회 본회의에 대한 심경’을 묻자, “뭐 여기까지 와서 정치 얘기를 하냐”고 답변을 피했다. 하지만 이것은 꼭 대답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박 대표가 아이들에게 약속한 ‘안전하고 발전된 나라’와 ‘승리하는 해’는 국회를 떠나서 만들 수 있는 것인지, 여야가 모여 현안을 처리하는 날 제1야당이 국회 대신 보육원을 찾은 것이 ‘뜻깊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인지….

2005년 12월30일 보육시설을 방문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당직자들.
박 대표는 이날 ‘한나라당 없는 국회 본회의에 대한 심경’을 묻자, “뭐 여기까지 와서 정치 얘기를 하냐”고 답변을 피했다. 하지만 이것은 꼭 대답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박 대표가 아이들에게 약속한 ‘안전하고 발전된 나라’와 ‘승리하는 해’는 국회를 떠나서 만들 수 있는 것인지, 여야가 모여 현안을 처리하는 날 제1야당이 국회 대신 보육원을 찾은 것이 ‘뜻깊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