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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잘못 놀린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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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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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사학법 철폐를 요구하며 국회의장실에서 농성하던 임인배 의원(한나라당·경북 김천)의 입에 동티가 났다. 보고서를 가져온 수행비서를 의장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이유로 의장실 여비서 2명에게 “너희들 뭐하는 ×들이야” “싸가지 없는 ×들” “버르장머리 없는 ×들”이라고 폭언을 퍼부어 국회윤리위에 제소된 것이다.

국회의원은 입으로 먹고사는 대표적인 군상이다. 입을 잘 놀리면 국민을 위로하고 천하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잠깐 방심하면 사회적 흉기로, 자신을 날려버리는 폭탄으로 변한다.

이경재 의원(한나라당·인천 서구 강화을)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2년 12월3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주사파들이 (대통령직)인수위에 대거 참여했다” “일부 반미 세력들이 순진한 젊은이들을 촛불시위에 동원… 적화통일까지 이룩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1석 3조의 효과를 노렸음직하다”는 색깔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입은 다음해인 2003년 12월23일 성희롱 발언으로 더 큰 폭탄을 터뜨렸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한나라당 간사인 이 의원은 위원장석에 앉아 버티는 김희선 의원에게 “다른 여자가 우리 안방에 누워 있으면 날 좀 주물러달라는 거지”라고 해 성희롱 시비에 휘말린 것. 2004년 7월21일 여성부는 그의 발언을 성희롱이라고 공식 결정했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부산 남을)도 비슷한 이력이 있다. 2002년 7월12일 장상 총리서리 지명 당시에는 “대통령이 유고될 경우 총리가 대통령의 직무를 대행하게 될 텐데, 국방을 모르는 여성 총리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여성 비하성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그는 2003년 10월18일 “개혁당 유시민 의원이 일반인이던 지난 대선 직전 베이징 북한대사관을 수차례 방문해 자료를 받아왔다는 첩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잘못 놀린 입 때문에 뒤늦게 유 의원에게 사과하는 수모를 겪었다.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 교체를 시도한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의 핵심 멤버인 유용태 전 의원(민주당·서울 동작을)은 지난 1997년 2월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사 진행과 관련해 의원들과 논쟁을 하다 동료인 한영애 의원에게 “여자가 여자다워야지. 걸레 같은 게, 싸가지 없이”라고 극언을 퍼부어 비난을 받았다. 결국 후단협 활동과 이 발언 때문에 2004년 총선연대가 선정한 낙선 대상자로 지목됐고, 낙마했다.

최병국 의원(한나라당·울산 남갑)은 2003년 7월17일 <오마이뉴스>가 실시한 호주제 폐지에 대한 의견조사에서 “호주제는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제도로 호주제 폐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혼한 여성들의 민족사에 대한 도전이며, 대단히 못마땅하다”는 취지로 답변해 여성을 비하했다는 구설에 시달렸다.

그나마 공식적으로 알려진 게 이 정도다. 적지않은 의원들이 동료 여성의원마저 심심찮게 비하한다. 지난 1998년 DJP 연합으로 김대중 정권 창출에 결정적 공헌을 한 김종필 총리 인준안 표결 당시, 여당 소속의 한 여성 의원은 투표함을 깔고 앉아 찬성표를 던질 것 같은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에게만 투표함 입구를 열어줬다. 이를 지켜본 몇몇 여야 의원들은 “좋아하는 남자에겐 다리를 쫙 벌려주고, 반대하는 사람에겐 문을 꼭 닫는다”며 키득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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