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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정치판 이슈’를 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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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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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맞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본 정국 이야기… 친지와 친구들을 만나면 활용해보자


새해벽두부터 정치판이 돌아가는 모습은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의원 꿔주기’라는 국내정치사에 유례가 없는 기상천외한 일이,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두번씩이나 거듭된 데다, DJP 공조복원, 안기부 예산의 옛 여당 선거자금 유입에 대한 검찰수사를 둘러싼 정쟁으로 정치판이 꽤나 시끄럽다. 자고나면 새 사건이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을 정도로 상황변화가 극심해 일반 국민들은 사건을 따라가기도 벅차다. 여권의 한 인사조차 사적인 자리에서 “최근 며칠 사이는 워낙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마치 몇달을 보낸 것 같은 느낌”이라고 토로할 정도다.

도대체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앞으로 어떻게 전개돼 나아갈지 등을 한번쯤 차근차근 되짚어볼 필요를 느끼는 시점이다. 요즘 날마다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DJP 공조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안기부 예산의 선거자금 유용에 대한 검찰수사를 둘러싼 DJ와 YS,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격돌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곧 본격적으로 전개될 대선정국을 앞두고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흘러간 노정객들의 레퍼토리는 무엇인지 등, 앞으로 전개될 정국의 향배를 한번쯤 전망해보자.

<한겨레21>은 이번 설 연휴를 맞아 그동안 새해 정치판을 뜨겁게 달궜던 현안들을 몇개의 주제로 나눠 정리하고 조망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편집자



이회창, ‘안풍’ 탈출할까

무작정 저항할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고…

사진/시시각각 조여오는 목. 강삼재 의원 체포동의서가 국회에 접수되고 있다.(이용호 기자)
“얼마나 더 버티다 어떻게 매듭지어야 할 것인가.” 안기부의 불법 선거자금 지원에 대한 검찰수사가 일주일을 넘기면서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이런 목소리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검찰수사 결과 지난 96년 15대 총선 당시 안기부로부터 전달받은 940억원을 180여명의 출마자들에게 배분하는 등 모두 1192억원의 자금이 한나라당에 흘러들어온 것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앞으로의 대응방법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겉모습은 아주 단호해 보인다. 특히 이회창 총재가 강경 분위기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우리는 정치검찰의 수사를 수긍하지 않는다. 결코 정도를 벗어난 정치에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고 어떠한 야당파괴 기도에도 감연히 맞서 야당을 지킬 것이다.”(이 총재 12일 당무회의) 지난해 10월 불거졌다 덮인 문제를 다시 들춰낸 데는 여권의 정계개편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만큼 결사항전하겠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강삼재와 결별할 수도

그러나 강성기류 한쪽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들린다. “보도내용 등을 종합해볼 때 내 정치체험상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진실관계를 밝히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리도 협조해야 한다.”(한나라당 수도권 한 초선의원) “사건에 관련된 다른 선배동료 의원들 보기 미안해 ‘진실을 밝히자’는 원론만을 언급하고 있지만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는 분위기도 많다.”(수도권 한 재선의원)

아예 몇몇 실무 당직자들 사이에는 무작정 버티기보다 검찰쪽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시되고 있다. “지도부는 모든 사람을 끝까지 보호하겠다는 것인데…, 딜레마다.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안기부에서 돈이 나온 것 같다면서 이번에 확실히 털어버리는 게 내년 대선전에서 유리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문제는 묘안이 없다는 것이다.”(한나라당 한 핵심 실무 당직자)

당 지도부는 일단 연일 “안기부 자금은 국가예산이 아니라 (기업들로부터 조성된) 통치자금일 가능성이 있다”고 자금출처 논란을 벌이거나, 특검제를 도입해 DJ 비자금을 비롯한 모든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자”고 맞불작전으로 맞서고 있다. 그러나 검찰수사 결과 가운데 상당부분 공박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는 데 한나라당 주류의 고민이 있다. 먼저 언론에 보도된 정치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돈받은 사실 자체는 인정하는 분위기다. 액수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거나 통상적인 선거지원금으로 생각하고 받았다는 정도의 변명을 늘어놓는다. 또 고액의 돈을 제공받은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총선자금이 아닌 개인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점차 드러나고 있는 것도 한나라당을 곤혹스럽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강삼재 의원이 14억2천여만원을 빼내 개인계좌에 입금하거나 현금으로 바꾼 뒤 3억4500여만원을 총선 뒤 개인용도로 쓴 사실이 검찰수사에서 밝혀지면서 체포동의안 처리를 실력저지해서라도 강 총재를 보호하려는 지도부의 명분이 약화되고 있다. 때문에 당내 몇몇 실무 당직자들은 “최악의 경우 강 의원과 결별도 각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총재의 한 측근 참모는 “그 경우 돈을 받은 상당수 의원들, 특히 당내 비주류 인사의 동요와 이탈이 심해질 것이며 그것이 바로 여권이 이번 사건을 통해 노리는 것인 만큼 굴복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총재의 다른 한 참모는 “우리는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무작정 정국을 경색시킬 생각도 없다. 시나리오에 맞춰 일을 진행시키는 쪽이 먼저인 만큼 그쪽에서 적절한 해법을 제시해야지 우리는 묘안이 없다”고까지 말했다.

이 총재를 비롯한 지도부조차 이런 복잡한 당 안팎의 분위기를 반영한 듯 대응 수위를 일관되게 조절하지 못한 채 헷갈려 하고 있다. 강성기류를 주도해온 이 총재는 지난 1월11일 열린 인천시지부 ‘규탄대회’에서 “우리의 잘못이 있다면 분명 국민에게 사과할 것이다. 정말 (안기부 자금이) 들어왔다면 왜 책임을 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언론이 잘못을 시인하는 발언으로 해석하자, 12일 오후 권철현 대변인이 기자실을 찾아와 “특검제로 수사해 안기부 자금이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사과한다 뜻이었다”며 현재 검찰수사 결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비슷한 시각 이 총재의 몇몇 측근들은 “여당에 입당한 의원들은 세비로 국고환수를 약속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만 무작정 버티다가는 큰 치명상을 입는다”면서 “당사나 연수원을 매각해 국고에 환수하는 방안은 어떻겠냐”고 밝히는 등 여론을 떠보려 애썼다. 이 총재와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곤혹스런 처지에 빠져 있는 것이다.

DJP는 계속된다, 죽∼

정치권 “정권 말까지 공조 이어진다” 낙관… 합당의 첫 단추될 수도

여야 정치권이 새해 벽두부터 DJP 공조복원 문제로 격돌하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해 말 전격적으로 의원 3명을 자민련으로 이적시키며 DJP 공조복원을 추진하자, 한나라당은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겨냥한 정치적 음모”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DJ의 태도는 단호하다. 8일 DJP 회동에 이어 10일에는 장재식 의원을 이적시켜 끝내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든 등 DJP 공조복원 프로그램을 밀어붙였다.

사실 DJ는 DJP 공조에 대해 그동안 무척 강한 집착을 보여왔다. 지난해 4월 총선 과정에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DJP 공조 파기를 선언한 뒤 줄곧 공조복원을 거부해왔으나 DJ는 지난해 8월 개각 때도 자민련 몫을 챙겨주는 등 공조복원에 매달려왔다.

“JP, 한나라당에 미련 안 둘 것”

왜 DJ는 이처럼 DJP 공조에 목을 매는 것일까. 어떤 동교동계 의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DJ는 늘 정치적으로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추구해왔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이 도저히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기로의 순간에 오면 언제나 현실을 선택했다. 그런 점에서 DJ는 프래그머티스트다.” 원내 안정의석을 확보하지 않으면 각종 개혁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DJ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DJP 공조밖에 없다는 판단이라는 것이다. 여야 협조와 대화를 통한 정국운영이라는 불확실한 ‘이상’에 매달리기보다는 DJP 공조라는 확실한 ‘현실’을 선택한 것이라는 의미다. DJ의 이런 상황인식은 여권의 다른 관계자의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DJ가 여야간 상생의 정치를 말할 때도 DJP 공조는 항상 전제였다. 한나라당과의 대화 협력도 DJP 공조 위에서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복원된 DJP 공조는 과연 얼마나 단단한 결속력을 보여줄까. DJ와 JP는 1월8일 회동을 마친 뒤 민주당과 자민련 대변인을 통해 “97년 정권교체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임기 말까지 최선의 공조를 할 것”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과연 그렇게 될까. 정치권에서도 실제 DJP 공조가 정권 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왜냐하면 이번 공조는 원내 안정의석을 갈망하는 DJ와 지난 한해 동안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해 정치적 생존을 위협받게 된 JP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이뤄졌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정국 전까지는 양당간 이런 공존체제를 뒤흔들 만한 정치적 변수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치적 흐름은 두당간 합당론까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양당 지도부의 ‘합당 불가’ 주장에도 불구하고 ‘의원 이적’을 통한 DJP 공조강화가 결국 합당으로 가는 첫 단추가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양당 관계자들 가운데서도 합당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들이 많다. 한 자민련의 핵심관계자는 “공조체제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4월 총선 이전에도 늘 두당간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지 않느냐. 우선 당장 다음 개각 때 각료배분 문제를 놓고 이런저런 불화가 빚어질 수 있다. 이런 불완전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합당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의 합당 가능성에 대해 유보적인 견해도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의원 이적으로 자민련에 대한 민주당의 제어력이 높아져서 공조로도 충분한 상황이다. 굳이 정계개편 논란 등을 불러일으킬 합당이 당장 필요하지 않다. 일단 공조체제를 가동해본 뒤 향후 운영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 합당 문제를 논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합당 가능성이 향후 정치적 상황에 따라 열려 있지만 불가피하거나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기 대선정국에서도 DJP 공조가 유효할까. 호남과 충청의 지역연합인 DJP 공조가 차기 대선국면까지 이어진다면, 차기 향배에 결정적 영항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이 DJP 공조에 대해 기를쓰고 반발하는 것도 이런 사정과 관련돼 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분석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민주당의 동교동계 의원은 “민주당과 자민련이 합당을 하든 안 하든 이번 공조복원으로 차기 대선구도는 영남 대 비영남의 구도로 짜이게 됐다고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한나라당과의 대결구도를 무릅쓰고, 민주당의 도움을 받아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DJP 공조를 합의한 이상 JP도 더이상 한나라당에 미련을 둘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차기는 조금 다른 문제라고 본다. DJ 이후 차기주자가 누구냐에 따라 변수가 생길 수 있다. 대선정국이 되면 모든 정치권 인사의 행보는 차기주자를 중심으로 움직일 것이다. JP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선정국은 정치적 격변이 예상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JP도 새롭게 주판알을 튕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죽도록 싸우다 손잡을 수도

영원한 숙적이자 친구, DJ와 YS의 경쟁은 어디까지…

사진/갈등은 무덤까지? 공통의 적 앞에서 두 사람은 화해할 수도 있다.(보도사진연감)
안기부의 불법 선거자금 지원 수사를 둘러싼 공방의 1차 전선은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펼쳐져 있다. 그러나 DJ가 “엄정한 법집행”으로 규정한 검찰수사에 대해 YS가 “정치보복의 화신인 김대중씨가 벌이는 최후의 발악”이라고 공격에 나서면서 ‘DJ와 YS 사이에 한판대결’이라는 한국정치사의 고전적 레퍼토리가 덧씌워지고 있다.

그 결정판은 지난 1월11일과 20일 사이에 이뤄졌다. 11일 DJ는 “안기부 자금과 DJ 비자금 동시 수사”를 요구하는 한나라당의 공세를 “과거 정권이 5년 동안 추적했는데도 드러난 것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YS는 바로 다음날 “(내가) 하루도 안 빼고 조사했으면 (DJ는) 영국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DJ는 당선 확정 이틀 뒤 검찰총장을 불러 ‘문민정부가 끝나기 전에 수사를 잘 처리하라’고 지시했다”며 반격했다.

이회창을 어떻게 볼 것인가

안기부 자금 수사로 궁지에 몰린 한나라당 지도부는 “YS가 밝힌 DJ비자금의 실체를 김 대통령은 고백하라”며 양김씨의 싸움을 부추겼다.

YS는 왜 DJ와 사사건건 충돌하는 것일까. 우선 이번 사건이 YS 재임기간에 발생한 것인 만큼 방심할 경우 칼날이 자신의 목을 겨냥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바닥에 깔려 있다. 그러나 더 큰 목적은 내년 대선을 겨냥한 자신의 정치적 공간 확대다. “차기 대권주자 선정에서 영남권을 중심으로 이니셔티브를 쥐려는 YS는 이번 사건을 통해 DJ와 대결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가 자신이라는 점을 영남권에 명확히 보여주려는 것이다.”(민주계 한 중진의원) 영남권 주자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대표주자 행세를 해온 이 총재와 한나라당이 여론의 비판에 주춤거리는 사이 YS는 자신이 영남지역의 반DJ정서를 결집시키는 중심축으로 자리잡겠다는 전술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YS는 IMF를 초래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퇴임한 뒤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나 영남권의 점증하는 반DJ정서에 발맞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 정부의 인사정책이나 대북정책을 공격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했다.

문제는 YS와 DJ가 앞으로도 계속 서로를 등진 채 대립할 것이냐는 점이다. YS의 대변인격인 박종웅 의원은 “두 사람이 너무 많이 엇나갔다. 앞으로 함께하기는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도동 사정에 정통한 다른 한 인사는 “이번 사태로 양김씨의 화해나 연대 가능성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서로 극한 대립을 보이다가도 공동의 적에 자기 이익을 침해당할 위기에 처하면 언제나 협조했던 두 김씨의 관계를 볼 때 아직은 협력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 68년 6월 신민당 원내총무 지명전에서 첫 경쟁을 시작한 이래 유신정권(70년대)이나 신군부정권(80년대) 등 공동의 적 앞에서는 연합해 저항하고, 그 적이 사라지면 결별해 극단적으로 경쟁하는 이른바 ‘경쟁적 협조관계’를 유지하며 서로의 정치적 생존공간을 극대화해온 두 사람의 독특한 생존방식을 되짚어볼 때 작지만 아직은 협력할 여지는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지난 97년 대선상황이다. YS는 자신이 집권했던 95년 DJ의 정계복귀 움직임이 구체화되자 “세대교체론” 등을 내걸고 DJ의 대권도전을 막으려 갖은 수단을 다 썼다. 그러나 DJ는 오히려 YS와 맞서면서 정계복귀의 명분은 물론 집권기반까지 다졌다. 결국 이홍구, 이수성, 이인제 등 다른 대안 모색이 모두 실패한 YS는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DJ 대세론을 인정했다. 그리고 막판에 이를 되돌리기 위해 강삼재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 등이 670억+알파의 DJ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에 수사를 요구했지만 YS는 끝까지 침묵했다.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대선후보는 이에 분개해 ‘YS탈당’을 요구했고, 자신을 벼랑으로 모는 이런 공격에 직면한 YS는 결국 최종순간에 DJ쪽으로 기울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YS가 97년 대선 투표일을 며칠 앞두고 ‘DJ우세가 뒤집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무수석실에 긴급 여론조사를 지시한 뒤, DJ가 된다는 결과가 나오자 안도했다”고 전했다.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도 “YS는 DJ를 찍었을 것”이라는 판단이 주류를 이뤘다.

결국 현재의 양김씨의 대립과 협조의 분기점도 이회창 총재를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공동의 적으로 판단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 총재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뜻을 여러 차례 직간접적으로 드러낸 바 있는 YS와, 독자적인 정권창출이 어렵다는 판단에 이른 DJ가 서로가 동의하는 대권주자를 찾을 경우 손쉽게 손을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DJ와 YS의 난타전을 즐기면서도 이회창 총재를 포위·고립시키는 정치적 결탁이 숨겨진 게 아닌지 노심초사하는 것도 바로 이런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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