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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쌀의 비극, 강기갑의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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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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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는 쌀 비준반대’ 외치며 단식농성하는 그의 대안은 무엇인가
“12월 열리는 WTO 각료회의에서 ‘쌀 특별품목’인정받는 노력부터 해야”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을 인터뷰하러 간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말하셨다. “해결책이 뭐 있어, 쌀값이 우리나라 경제 여건을 보면 한 20만원은 가야 하는데…. 타산이 안 맞으면 딴 것을 심으러 겨들 거야. 그러면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지난해 16만원에 구입한 쌀 80kg 한 가마니를 올해는 12만원에 샀다고 하신다. 4만원이나 싸게 쌀을 구입하셨지만 방울토마토와 배추 등 원예농사를 짓는 농사꾼 아버지의 목소리는 편치 않게 들렸다.

"쌀 협상에서 우린 너무 많은 걸 내줬다." 쌀 비준 강행 처리를 반대하며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는 강기갑 의원. 그는 비준 반대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사진/ 박승화 기자)


“쌀 협상 무효화? 그건 오해”

지난 11월9일 강기갑 의원을 만났다. 그는 ‘대책 없는 쌀 비준을 반대’하며 국회의사당 2층 로비의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14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그가 앉은 자리 뒤편엔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식량을 하늘로 삼아야 한다”는 세종대왕의 말씀이 눈에 확 들어왔다. 묘하게 농민들이 쌀값 폭락과 국회의 ‘쌀 관세화 유예 연장 협상’안의 비준에 항의하며 볏단 야적 시위를 벌이는 현실과 대비됐다. 강 의원은 지난해 12월에도 국회의사당에서 10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벌였다. 쌀 전면 재협상과 여야 의원 76명이 공동 발의한 ‘쌀 전면 재협상 촉구결의안’의 국회 채택을 요구했다. 받아들여지진 않았지만, 그나마 지난 5~6월 국정조사가 실시됐다.

강기갑 의원은 왜 또다시 단식에 나섰을까. 그는 이 질문에 바깥의 ‘오해’를 의식해서인 듯 기왕에 한 쌀 협상 자체를 무효화하자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분명히 해뒀다.

강 의원의 요구는 이랬다. “오는 12월18일 홍콩에서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협상 세부원칙을 논의할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결과를 지켜보고, 쌀 협상에 대한 국회 비준안 처리 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 DDA 협상에선 관세감축률, 감축 방식 등이 다뤄진다고 한다. 선진국의 경우 민감품목, 개발도상국엔 특별품목을 둬 다른 농산물과 달리 ‘특별 대우’를 해주는 방안도 논의된다. 그는 “불확실하지만 개도국의 지위를 얻어 쌀을 특별품목으로 인정받을 경우, 쌀의 관세화 유예보다 관세화로 가는 길이 우리 농업과 국익에 더 나은 선택이 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고 했다.

누가 농민의 구호를 멈추게 할 수 있는가. 11월3일 충주 톨게이트에서 쌀가마와 농기계를 태우는 충북 음성, 충주 지역 농민들. (사진/ 이호성)

일반적으론 관세화 유예가 관세화보다 더 나은 방식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그가 기다려보자는 것은 쌀 협상이 너무나 많은 것을 내줬다는 비판에서다. 정부는 캐나다엔 완두콩, 유채류 관세 인하, 아르헨티나엔 가금육에 대한 검역 완화 검토, 이집트와 인도엔 대북지원과 같은 식량 원조시 두 나라 쌀을 우선 구매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밖에 국정감사를 통해서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협상국들과의 이면 합의 내용들이 비판의 도마에 올라 있다. 그런데도 여당과 한나라당이 정부의 뜻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11월16일 쌀 비준안을 강행 처리하려 한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올 의무수입 물량(MMA·최소 시장접근 물량)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비준안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고 정부가 주장하고 있지만, 강 의원은 올해 안에 비준안을 통과시킨 뒤 해를 조금 넘겨 쌀을 수입하더라도 전례들에 비춰 문제될 게 없다고 반박했다.

미국쌀의 노예가 될 것인가

강 의원은 비준안 처리를 연기한 동안 정부와 농업계, 국회로 이뤄진 세 주체의 협상을 통한 쌀 비준안 문제 해결과 근본적인 농업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그는 현재 25%에 불과한 식량자급률에서 그나마 95%를 차지하는 쌀 시장의 개방은 우리의 식량 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1982년 정부가 ‘노풍’이라는 벼 품종을 장려했다가 병해로 쌀이 모자라게 됐다. 일본에 건너가 손을 뻗쳤지만, 작황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당해 다시 미국으로 갔다. 미국이 배짱을 튕기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3~4배의 비싼 가격에 무려 5년치 수입을 약속했다.” 그가 “쌀은 생명”이라고 늘 얘기하는 것도 이같은 교훈 때문이다. 농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단기간에 복구가 어렵다. 실제 식량 위기가 닥쳤을 때, 미국의 메이저 곡물사로부터 쌀 한 가마니를 50만~100만원 주고 사와야 할 처지가 될지 모른다는 그의 우려는 무리한 가정처럼 들리진 않았다.

시위현장에서 시름에 잠긴 한 농민의 모습. (사진/ 이호성)

강 의원은 의원이 되기 전부터 늘 쌀 개방 투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90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반대투쟁과 91년 미국쌀 수입개방 저지투쟁, 2003년, 2004년 WTO 수입개방 반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저지투쟁에 이르기까지 숱하다. 그 과정은 언제나 상경, 단식, 삭발, 농성의 연속된 몸부림이었다.

강 의원은 관세 유예화든 관세화든 “우리 농업은 피해 볼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눈감지 않는다. 그가 정부에 쌀 협상 결과 농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내용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350만 농민의 75%가 쌀 농가다. 쌀은 농민의 농업 소득의 50%, 농가 소득의 30%를 차지한다. 그는 “정부가 당초 올 쌀값 하락률을 5%, 10년 뒤 20% 하락률을 예상했지만, 호남 곡창지역을 중심으로 올 한 해에만 20~25% 가까이 떨어졌다”며 “기본 생산비가 일정한 상황에서 쌀값 하락은 쌀농사 순소득의 80~90%가 줄어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농민 단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쌀 80kg 한 가마니의 생산비를 18만원으로 잡으면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다. 관세화든 관세화 유예든 쌀 의무수입 물량은 올해 22만5천t에서 2014년 40만8천t으로 늘어나고, 이 가운데 소비자 시판량도 2010년부터 30%로 늘어날 예정이다. 현재 수입 쌀의 가격은 평균 4만원 안팎이다. 그는 “이런 추세대로라면 조만간 10만원대 밑으로 떨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농민들은 쌀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쌀소득 보전계획, 제 구실 못할 것

정부는 ‘쌀소득보전기금법’을 통해 시장가격과 목표가격의 차액 85%를 보전해줄 계획이다. 하지만 3년마다 정해질 목표가격도 시장가격의 하락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쌀 소득 보전 계획이 제 구실을 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이다. 정부와 별도로 민주노동당은 이날 강 의원 대표발의로 ‘쌀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7개 법안을 제출했다. 농민단체와 공동으로 마련한 이들 법안은 농업을 회생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농정대안 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들이다.

강 의원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취재하러 부산에 내려가는 기자에게 “내 단식과 상관있는 일”이라고 관심을 보인 뒤, “쌀 문제라는 게 다 그같은 구조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UR 농업협상, 그리고 12년

우리나라는 1993년 12월 타결된 UR 농업협상에서 모든 농산물을 관세화 개방(관세를 내고 자유롭게 수입)했다. 다만 쌀은 매년 MMA만큼만 수입하기로 약속했다. 당시 UR 농업협정문 부속서에 ‘2004년에 관세화 유예조처를 연장하기 위한 협상’을 하도록 해, 2004년 ‘쌀 관세화 유예 연장 협상’을 했다. 정부는 그해 12월30일 WTO에 제출한 쌀개방 이행계획서 검증 절차가 마무리되자, 올 4월 쌀협상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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