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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문희상 만담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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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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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호/ <오마이뉴스> 방송팀 기자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보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진지하다. 북핵 문제가 어떻고, 경제는 또 어떻고…. 진지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이렇게 정치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하는 이야기는 딱딱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지난 몇 달 동안 국회에서 취재를 해본 결과, 의원들이 꼭 재미없는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 밖에 카메라 앞에서도 농담을 곧잘 하는 의원들이 있다. 기자들은 무미건조한 회의 시간에 불쑥 튀어나오는 의원들의 농담에 종종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접한 정치인들의 농담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의 농담이 퍽 깊은 인상을 줬다.

문 의장은 ‘얼굴은 장비, 머리는 조조’라는 별명이 말하듯이 자신의 ‘넉넉한’ 풍채와 재치 있는 입담으로 기자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다. 문 의장은 올해 성인의 날을 맞아 20대 청년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여성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의장님은 개인적으로 코디네이터를 두고 계신지 궁금하다”고 묻자, 왼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코디네이터가 있었으면 이렇게 됐겠어요. 앞으로 (코디네이터) 좀 부탁합니다.”

(사진/ 윤운식 기자)

올여름이었다. 문 의장은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 10여 명과 서울 봉천동 재래시장 가운데 하나인 원당시장으로 민생체험을 나갔다. ‘일일 과일가게 점원’으로 나선 문 의장은 “참외 6개에 5천원”을 목청껏 외치며 과일을 팔았다. 문 의장의 팬이라고 밝힌 한 아주머니와 폰카로 다정하게 사진도 찍고 자신이 산 수박을 기자들에게 맛보게 하며 즐겁게(?) 민생정책 활동을 펼쳤다. 잠시 짬을 낸 문 의장은 과일가게를 나와 전병헌 대변인이 고기를 썰고 있던 정육점에 들렀다. 정육점 직원들과 정답게 악수를 마친 문 의장은 꼬챙이에 주렁주렁 내걸린 고깃덩어리를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 “이거 전부 돼지네. 우리 동족이 매달려 있는 것 같네.” 지난 6월 열린우리당 열린정책연구원 이사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농담이 연출됐다. 이사회가 시작되기 전 한 이사가 문 의장을 보고 “얼굴살이 좀 빠지셨네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문 의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신문 만평에 매일 얼굴이 돼지로 나오니까 나도 좀 미안하더라고요.”


문 의장은 또 지난달 열린우리당 77차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며 “행운의 숫자가 겹친 77차이다. ‘7땡’이라고도 하고…”라는 농담을 던졌다. 이어 그는 6자회담 타결을 보고하기 위해 회의에 참석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를 가리키며, “우리 대단한 두 분이 오셔서 ‘7땡’이 딱 맞는 것 같다”고 ‘7땡’의 의미를 풀이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정 장관은 “‘7땡’이라는 소리를 오랜만에 듣습니다”라고 웃어넘겼다.

여당의 최고 지도자인 문 의장이 정책이나 정치 현안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중요한 뉴스가 되지만, 농담은 뉴스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농담은 대화에 생기를 불어넣고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특히 정치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는 기자들에게 긴장과 피로를 풀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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