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로 본 북한의 새해설계… 관행화된 구호 너머 현실에 대한 고민 숨어있어
새해가 밝았다. 진짜 21세기다. 새로운 세기를 북한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북한은 올해 공동사설에서 고난의 행군을 이겨냈다고 한다. 그래서 2001년 공동사설의 제목도 “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한 기세로 새 세기의 진격로를 열어나가자”이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이듬해인 1995년부터 당보(노동신문), 군보(조선인민군), 청년보(청년전위)의 공동사설 형식으로 신년사를 대신하고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공동사설 읽기는 쉽지 않다. 낙관적 구호 너머로 객관적 현실에 대한 고민이 숨어 있고, 관행화된 구호가 있는가 하면, 정책 변화를 시사하는 새로운 문구들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원칙과 변화의 미묘한 차이 역시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강조점을 달리할 수 있다. 결국 ‘징후적 독해’를 해야 북한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자주외교와 부시 행정부에 대한 우려
이번 공동사설에서 북한의 정책 방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외교적 자주, 대내적 단결, 대남정책에서의 민족번영 추구이다. 일단 외교정책을 살펴보자. 북한은 외교분야에서 구체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자주성에 기초해 외교를 하겠다는 것이고, 자주권을 존중하는 나라면 누구라도 대외관계 개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책보다 관행적 구호를 강조한 것은 국제환경이 그만큼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시 행정부가 집권했다. 북한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이후 위기와 돌파를 반복하면서도 유지된 협상구조가 지속될 수 있을지를 우려하고 있다. 물론 페리 보고서라는 양국관계의 안내도가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고 미국이 체제보장과 경제협력 환경 조성을 맞바꾸는 일괄타결 방안이다. 이 원칙을 공화당도 인정하고 있다. 페리 보고서 발표시점에 공화당 인사들이 중심이 된 아미티지 보고서의 기본 맥락도 같다. 문제는 이 원칙의 이행방식을 둘러싸고 협상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화당 집권은 북한의 입장에서 협상파트너의 교체를 의미한다. 2000년 조명록-올브라이트 교환방문으로 조성된 협상 분위기는 부시 승리와 클린턴 방북 무산으로 효력이 다했다. 북한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북한은 부시 행정부와 새로운 협상관행을 조율해야 한다. 북한식 자주외교가 공화당의 현실주의 외교에 통할지는 미지수다. 부시 행정부는 미사일 문제나, 테러국 해제 문제 등에서 북한이 좀더 구체적인 양보안을 제시하지 않는 한, 선의의 무시 정책을 당분간 추구할 수도 있다. 북한이 과거처럼 극단적 관심 끌기 조치(NPT탈퇴나 대포동 시험발사)를 취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북한의 고민이다. 국내적으로는 단결의 정치, 선군 혁명노선, 실리위주의 경제운영을 강조하고 있다. 단결의 정치는 북한의 독특한 정치제도인 수령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다만 선대 수령의 상징보다, 점차 현존 수령의 영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선군 혁명노선이나 총대사상 등 군부 우위정치는 여전히 북한의 체제위기 의식이 높다는 증거다. 많은 사람들이 군부 우위정치 현상을 일시적이고 과도적인 것으로 해석했지만, 이제 북한 체제 운영의 핵심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 국내적인 사회 유동성의 잠재성과 국제적인 체제위협이 존재하는 한, 위기관리형 정치운영 구조는 계속될 것이다. 단결의 정치와 실리위주의 경제정책 경제적으로는 북한은 상당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번 공동사설에서 고난의 행군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과연 그런가? 물론 99년을 기점으로 시작된 플러스 성장추세는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수준의 경제지표에 도달하려면 멀었다. 공장 가동률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지만, 원자재나 전력부족 등 경제운영 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2000년 농사가 흉작이라는 사실이다. 가뭄이 심했다. 최근 몇년 동안 저수 및 관개시설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해 이상기후는 곧 작황감소를 의미한다. 세계식량계획은 최소 섭취량을 기준으로 2001년 10월까지 식량부족분을 186만t으로 보고 있다. 정상수준으로 계산하면 200만t이 넘는다. 부족분은 대부분 남한을 포함한 주변국가의 식량지원으로 충당해야 한다. 외교관계 활성화와 남북 관계개선 전략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내놓은 경제정책 방향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북한은 올해도 계획능력 향상을 위해 전력, 석탄, 금속 등 선행부문의 정상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선행부문 강조가 과거 중공업 우선노선으로의 복귀는 아니다. 기간산업의 가동률이 하락한 상황에서는 농업이나 경공업을 활성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선 경제운영의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정책 차원에서 강조하고 있는 실리위주 역시 지극히 제한적이다. 북한은 지난해에 기업소 관리체계의 변화를 시도했지만 제자리로 돌아왔다. 연합기업소 제도 개편이 경제정책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성급한 외부의 기대에 불과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적 실리를 도모하는 계획개선형 정책 변화를 지속할 것이다. 이번 공동사설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대남정책이다. 북한은 통일은 애국이고 민족적 융성번영의 길이라고 했다. 또한 민족이 화합하고 하나로 단결하면 그것이 곧 통일이라고 했다. 여전히 관행적인 통일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있지만 남쪽의 사실상의 통일 개념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통일 문제에 대한 미묘한 입장 변화는 아마도 남북한 통일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한 6·15공동선언 2항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이번 공동사설에서도 연합이라는 단어와 연방이라는 단어를 동시에 사용했다. 다시 말해 통일은 단계적으로 할 수밖에 없고, 지금은 화해협력이 중요하다는 포용정책의 핵심기조와 좀더 가까워졌다. 대남정책 기대 높지만 전망은 불투명
공동사설에서 엿보이는 대남정책은 대부분 6·15공동선언의 연장선상에 있다. 상당한 기대감도 피력했다. 그러나 북한의 기대와는 달리 올해 남북관계 환경은 생각보다 밝지 않다. 남한은 경기침체, 여야대립, 그리고 여론악화로 대북지원에 상당한 한계를 안고 있다. 그렇다고 북한이 여론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쟁점현안을 양보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이 지난해처럼 남북관계의 제도화보다 일방적인 지원 요구를 앞세울 경우, 대화자체가 순탄하게 진행되기 어렵다.
경제협력 역시 마찬가지다. 경제협력 환경은 완만하고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밖에 없다. 경협의 제도적 장치가 실무적으로 보완되어도 핵심은 금융, 가격, 노동시장을 비롯한 북한 내 정책환경이 변화되어야 경협 환경이 개선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추가 완화 전망도 불투명하다. 개성공단을 하든, 위탁가공을 늘리든 북한산 제품의 수출이 가능해야 하지만 일반특혜관세(GSP) 부여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민간수준의 경협 역시 국내 기업의 경영환경 악화로 수익성 위주가 될 것이다. 사실 현재의 경협 환경에서 위탁가공조차 활성화되기 어렵다. 물류체계 개선을 통한 납기준수, 기술수준 제고, 소비시장 확보 등의 과제가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본격적으로 시작될 개성공단 역시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북한이 특구의 경영환경 개선에 여전히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경제특구란 국내경제와 국제경제를 이어주는 창문과 같다. 원자재의 계획공급과 노동력의 중앙배치, 시장가격과 100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고정 환율제 등이 지속되는 한 특구의 경영환경은 개선되기 어렵다.
남북한의 화해협력 환경은 소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남이든 북이든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자신을 변화해야 한다. 북한은 좀더 장기적인 시각에서 남북관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어려움으로 당장의 지원이 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합리적 관행과 국제적인 제도를 갖출 때, 좀 더 폭넓은 협력이 가능해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김연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사진/파트너 교체로 북한은 신년사에서 외교의 구체적 정책 방향보다는 원칙을 강조했다.(AFP연합)
이번 공동사설에서 북한의 정책 방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외교적 자주, 대내적 단결, 대남정책에서의 민족번영 추구이다. 일단 외교정책을 살펴보자. 북한은 외교분야에서 구체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자주성에 기초해 외교를 하겠다는 것이고, 자주권을 존중하는 나라면 누구라도 대외관계 개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책보다 관행적 구호를 강조한 것은 국제환경이 그만큼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시 행정부가 집권했다. 북한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이후 위기와 돌파를 반복하면서도 유지된 협상구조가 지속될 수 있을지를 우려하고 있다. 물론 페리 보고서라는 양국관계의 안내도가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고 미국이 체제보장과 경제협력 환경 조성을 맞바꾸는 일괄타결 방안이다. 이 원칙을 공화당도 인정하고 있다. 페리 보고서 발표시점에 공화당 인사들이 중심이 된 아미티지 보고서의 기본 맥락도 같다. 문제는 이 원칙의 이행방식을 둘러싸고 협상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화당 집권은 북한의 입장에서 협상파트너의 교체를 의미한다. 2000년 조명록-올브라이트 교환방문으로 조성된 협상 분위기는 부시 승리와 클린턴 방북 무산으로 효력이 다했다. 북한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북한은 부시 행정부와 새로운 협상관행을 조율해야 한다. 북한식 자주외교가 공화당의 현실주의 외교에 통할지는 미지수다. 부시 행정부는 미사일 문제나, 테러국 해제 문제 등에서 북한이 좀더 구체적인 양보안을 제시하지 않는 한, 선의의 무시 정책을 당분간 추구할 수도 있다. 북한이 과거처럼 극단적 관심 끌기 조치(NPT탈퇴나 대포동 시험발사)를 취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북한의 고민이다. 국내적으로는 단결의 정치, 선군 혁명노선, 실리위주의 경제운영을 강조하고 있다. 단결의 정치는 북한의 독특한 정치제도인 수령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다만 선대 수령의 상징보다, 점차 현존 수령의 영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선군 혁명노선이나 총대사상 등 군부 우위정치는 여전히 북한의 체제위기 의식이 높다는 증거다. 많은 사람들이 군부 우위정치 현상을 일시적이고 과도적인 것으로 해석했지만, 이제 북한 체제 운영의 핵심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 국내적인 사회 유동성의 잠재성과 국제적인 체제위협이 존재하는 한, 위기관리형 정치운영 구조는 계속될 것이다. 단결의 정치와 실리위주의 경제정책 경제적으로는 북한은 상당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번 공동사설에서 고난의 행군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과연 그런가? 물론 99년을 기점으로 시작된 플러스 성장추세는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수준의 경제지표에 도달하려면 멀었다. 공장 가동률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지만, 원자재나 전력부족 등 경제운영 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2000년 농사가 흉작이라는 사실이다. 가뭄이 심했다. 최근 몇년 동안 저수 및 관개시설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해 이상기후는 곧 작황감소를 의미한다. 세계식량계획은 최소 섭취량을 기준으로 2001년 10월까지 식량부족분을 186만t으로 보고 있다. 정상수준으로 계산하면 200만t이 넘는다. 부족분은 대부분 남한을 포함한 주변국가의 식량지원으로 충당해야 한다. 외교관계 활성화와 남북 관계개선 전략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내놓은 경제정책 방향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북한은 올해도 계획능력 향상을 위해 전력, 석탄, 금속 등 선행부문의 정상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선행부문 강조가 과거 중공업 우선노선으로의 복귀는 아니다. 기간산업의 가동률이 하락한 상황에서는 농업이나 경공업을 활성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선 경제운영의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정책 차원에서 강조하고 있는 실리위주 역시 지극히 제한적이다. 북한은 지난해에 기업소 관리체계의 변화를 시도했지만 제자리로 돌아왔다. 연합기업소 제도 개편이 경제정책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성급한 외부의 기대에 불과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적 실리를 도모하는 계획개선형 정책 변화를 지속할 것이다. 이번 공동사설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대남정책이다. 북한은 통일은 애국이고 민족적 융성번영의 길이라고 했다. 또한 민족이 화합하고 하나로 단결하면 그것이 곧 통일이라고 했다. 여전히 관행적인 통일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있지만 남쪽의 사실상의 통일 개념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통일 문제에 대한 미묘한 입장 변화는 아마도 남북한 통일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한 6·15공동선언 2항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이번 공동사설에서도 연합이라는 단어와 연방이라는 단어를 동시에 사용했다. 다시 말해 통일은 단계적으로 할 수밖에 없고, 지금은 화해협력이 중요하다는 포용정책의 핵심기조와 좀더 가까워졌다. 대남정책 기대 높지만 전망은 불투명

사진/얼마 전 평양에서 열린 남북경협추진위 제1차회의. 북한이 내놓은 올해 경제정책 방향은 여전히 소극적이다.(사진공동취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