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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노회찬은 서울시장 출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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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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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당으로 전락한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 18개월만에 최대 위기 봉착
당직·공직 분리 폐지 등 자구책 고심하며 내년 5월 지방선거에 관심집중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탄핵 역풍이 몰아치는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당당히 원내 제3당의 입지를 구축했던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 18개월 만에 최대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

조승수 파동, 엎친 데 덮치다


일단 진보 진영의 정치세력화,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국민들이 만들어준 원내 제3당의 지위가 완전히 무너졌다. 당시 9석을 차지해 민주노동당에 뒤졌던 민주당이 이후 각종 지방선거에서 약진하고 무소속 최인기 의원의 영입에 이어, 9월29일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신중식 의원까지 끌어오면서 원내 3당의 입지를 꿰찬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날 대법원은 지역구에서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에게 벌금 150만원형을 확정하면서 전체 의석은 9석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은 독자적인 법률안 발의권조차 상실했다. 당내 정파적 갈등 관계도 여전하고, 당직·공직 분리에 따른 최고위원회의와 의원단의 현안 대응 능력 부족 등 원내 진출 이후에 지속된 고질적인 한계도 여전하다. 이제 민주노동당이 내세울 것은 민주당보다 앞선 정당 지지율(약 12% 안팎)과 노회찬·심상정으로 대표되는 몇몇 스타급 의원이 존재한다는 정도다.

9월29일 대법원은 사전 선거운동 혐의로 민주노동당 조승수의원에게 벌금 150만원형을 확정하면서 의원 자격을 박탈했다. 같은 날 기자회견을 하는 조승수 의원의 표정이 착잡하다.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민주노동당의 위기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한 최고위원은 “원내 3당의 지위도 빼앗겼고, 광역 단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민주당에 앞선 것은 정당 지지율 정도인데 이마저 자칫 실수하면 밀릴 수 있다”면서 “너무 갑갑하니 드러내놓고 말은 안 하지만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위기 상황은 오래전부터 충분히 예견됐던 것이다. 민주노동당도 최근까지 나름의 대응책을 계속 가다듬어왔다. 무엇보다 정파간 갈등을 조장해 민주노동당의 지도력을 약화하고, 의원들과 당의 유기적·효율적 협조를 가로막는 주범으로 지목됐던 불합리한 요소들을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먼저 당 장악력과 자질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온 현행 최고위원들이 조기에 총사퇴하고, 내년 초에 새롭게 당 지도부를 꾸리기로 결론내렸다. 현재 최고위원들의 임기는 내년 6월까지다. 하지만 9월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년 5월 지방선거, 김혜경 대표의 임기 등을 고려해 내년 1월20일부터 나흘간 최고위원 선거를 치러 새 지도부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현재 최고위원들의 임기는 예정보다 5개월 단축된 올해 말로 끝나는 셈이다.

9월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최대 논란거리였던 당직·공직 겸임 금지 규정을 폐지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홍승하 대변인은 “10월29일 최고위원회에서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 이후 유지됐던 당직·공직 규정을 당규에서 삭제하기로 결론냈다”면서 “앞으로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직 공직자가 당직을 겸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갑득·정창윤, 울산 북구를 노린다

민주노동당은 역사상 첫 원내 진출을 이뤄낸 직후 현실 정치판에 몸담은 의원들이 타협하면서 민주노동당의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당직·공직을 분리하고 원외 인사로 구성된 최고위원회의에 최종 당론 결정 권한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스타급 의원의 당 지도부 배제에 따른 민주노동당의 대중성 상실, 원내 정보에 어두운 최고위원들이 국회의원을 지도하는 데 따른 한계 등을 노출하면서 개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점차 확산됐다. 결국 당직·공직 분리 원칙 고수를 외치는 목소리 앞에 최종 결론을 내지 못하던 민주노동당은 제4당으로 위상 추락, 당 지지율 답보, 의원단과 최고위원회의의 불협화음에 따른 효율성 저하 등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이 조항을 당규에서 삭제하기로 결론내린 것이다.

또 선출직 최고위원 7명을 특정 정파가 싹쓸이할 수 있는 길을 합법적으로 보장해온 ‘1인7표’의 현행 선거제도를 1인1표제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이런 개선책들은 오는 10월8일 열리는 당 중앙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시행될 예정이다.

민주노동당의 핵심 인사들은 이런 개선책이 민주노동당이 노출시킨 많은 문제점들을 해소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수도권의 한 지구당 위원장은 “권영길·노회찬 등 대중성이 있는 스타급 의원들이 당 대표를 맡을 수 있게 되는 만큼 당 지지율 제고, 당과 의원단의 유기적 협조 체제가 구축될 뿐 아니라, 최고위원을 1인1표제로 뽑으면서 특정 정파가 지도부를 독식하는 문제점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며 “각 정파도 가장 능력 있고 신망받는 인사를 당 지도부 후보자로 출마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민주노동당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된다.

그러나 당 안팎에서는 이런 당내 제도 개선만으로 추락한 민주노동당의 위상을 완전히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른 한 최고위원은 “민주노동당의 활로는 각종 선거, 특히 내년 지방선거에서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느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도 개선을 통해 당내 비효율을 개선할 수는 있지만, 결국 각종 선거전 승리라는 열매를 거둬야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제4당으로 위상 추락, 당 지지율 정체, 의원단과 최고위원회의 불협화음 등 사면초가의 위기 상황을 맞았다. 9월29일 열린 최고위원회의 모습. (사진/ 류우종 기자)

민주노동당은 단기적으로 10월26일 재보궐 선거에서 조승수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울산북구에서 다시 당선자를 내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이곳에서 다시 의원을 당선시킬 경우 의원직 상실에 따른 자존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독자적 법안 발의를 위한 최소 단위인 원내 의석 10석을 다시 회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울산 북구에서는 현재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출신인 정갑득씨와 울산시당 위원장인 정창윤 두 사람이 경선 채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내년 1월에 출범할 새 지도부가 맞닥뜨린 최대 승부처는 역시 5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다. 민주노동당에서는 스타급인 노회찬 의원을 서울시장에 출마시키는 방안을 유력한 승부수로 거론하고 있다. 노 의원이 시장에 당선되지 못하더라도 인기를 끌어모을 경우 다른 지차제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후보와 함께 ‘제2의 민주노동당 바람’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노회찬-권영길 구도의 고차방정식

그러나 ‘노회찬 서울시장 출마론’은 당내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고차방정식이라 여간해서는 정답을 찾기 어렵다. 당선 확률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당 지지율 등 분위기 제고를 위해 의원직을 버리는 것은 노 의원에게 너무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또 노 의원이 서울시장에 출마할 경우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사실상 권영길 의원으로 굳어지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권 대표는 영광이겠지만, 대선후보 삼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노 의원도 현재까지 서울시장 출마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 의원과 가까운 인사들 가운데는 노 의원이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해 권영길 의원 등과 겨루고, 대선 이후 수도권 지역구에 출마하는 방안이 훨씬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 의원의 서울시장 출마가 필수라는 분위기도 강해 최종적으로 어떻게 결론이 날지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당 기관지 <진보정치>가 광역단체장 후보 선호도 조사를 통해 노회찬 의원의 서울시장 출마를 강요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당 일각의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당 안팎에 또 다른 분란을 자초하는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실제 <진보정치>의 여론조사를 두고 몇몇 당원들이 여론 조작을 위한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도 민주노동당의 복잡·미묘한 현실과 고민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핵심 인사는 “당을 살리려면 노회찬 의원 스스로 결단해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바람을 일으키는 게 최선책이지만, 당이 강요할 수 없는 게 냉혹한 현실”이라며 “새 지도부 교체 이후까지도 이런 답답한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만큼 민주노동당의 활로 찾기는 멀고 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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