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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광주의 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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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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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한용 기자/ 한겨레 정치부 shy99@hani.co.kr

“나 행사 관계자요. 문희상 의장만 잡지 말고, 골고루 잡으세요. 저기 한화갑 대표도 있잖아요!”

9월6일 오전 광주시 서구 치평동 상무지구 안에 있는 ‘김대중 컨벤션센터’ 개관식이 한창 진행될 때 행사장 한편에서 누군가 카메라맨에게 이렇게 외쳤다. 5천여명이 모여든 행사장에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고, 카메라 2대가 이들의 모습을 잡아 실시간으로 대형 스크린에 내보내고 있었다. 카메라맨에게 소리를 지른 사람은 박광태 광주시장의 측근이었다.

광주에서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광주 국회의원 7명은 모두 열린우리당이지만, 최근 민심은 ‘민주당 우세’로 바뀌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이런 흐름을 인정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얘기하면서부터다.

국가정보원 불법 도청 사건 발표 뒤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던 김 전 대통령이 광주를 찾은 것은 9월5일이다. 김 전 대통령의 광주 방문은 확실히 민주당에 ‘호재’였다. 김 전 대통령은 5·18 묘지에 참배했다. 5·18 묘지에는 민주당원 500여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주당원들은 목포, 영암, 영광, 함평 등지에서 관광버스 10여대에 나눠타고 일부러 광주에 올라왔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을 기다리며 주변 사람들과 환담을 하던 한화갑 대표가 ‘활짝’ 웃었다. 당원들은 “김대중, 김대중” “민주당, 민주당”을 연호했다.

‘김대중 컨벤션 센터’ 개관식은 광주의 민심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였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6일 컨벤션센터 개관식에서도 참석한 의원들 수는 열린우리당이 많았지만, 분위기는 민주당이 우세했다. 행사를 광주시가 주관했기 때문인 듯했다.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준영 전남지사는 민주당 소속이다. 박광태 시장은 개관식과 지역인사 오찬에서 환영사를 했다. 박준영 지사는 건배사를 했다. 문희상 의장과 한화갑 대표에게는 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공평하지만, 명색이 집권여당 대표에게 ‘마이크’를 주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어색했다. 그나마 문희상 의장은 오후에 서울에서 다른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시루떡 자르기’ 행사까지만 참석하고 자리를 떴다. 한화갑 대표는 미소를 띤 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지금 광주에서 ‘술집 여론’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주도한다고 한다. “한나라당하고 합치면 일당독재를 하겠다는 것이냐.” “노 대통령과 유시민은 결국 경상도 사람들 아니냐.” 그렇지만 내년 지방자치 선거에서 민주당이 광주와 전남에서 승리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아직 섣부르다.

호남 특유의 ‘정치적 내공’이 얼굴의 주름으로 쌓인 50대 후반 ‘아저씨’에게 견해를 물었다. 답변은 이렇게 돌아왔다. “결국 민주당 사람들은 단체장 몇명을 차지하고 ‘호남 자민련’을 해도 좋다는 건데, 이 지역 사람들의 생각과 거리가 있다. 광주는 내년에도 정국 전체를 바라보며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이다. 호남에서는 두 당이 경쟁을 하더라도 수도권에서는 연합공천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인데, 이것도 민주당이 완강하게 반대하게 돼 있어 실현 가능성이 없다. 이러다간 둘 다 망한다. 정국 전체를 보며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가가 아쉽다.” 오랜 기간 정치부 기자를 했고, 정치부장도 2년이나 지냈다는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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