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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고이즈미의 승리는 9·11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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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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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일본통’ 이성권 의원이 일본 정치권을 둘러본 뒤 전하는 현지 정세…‘자폭해산’을 했음에도 9·11총선에서 거침없이 승리한다면 동북아 불안요소 될 것

▣ 이성권/ 한나라당 국회의원

용감하다고 해야 할까 무모하다고 해야 할까.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선언했다. 총리 임기를 1년도 남겨 놓지 않은 상황이다. 자민당의 대다수 의원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마저 극렬히 반대한 중의원 해산이다. 고이즈미가 아무리 ‘헨진’(變人·괴짜)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는 민주당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바라지 않는 모험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자폭 해산’, ‘도박 선거’라고 부른다. 공교롭게도 선거일이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9·11 테러와 같은 날이다. 과연 이날이 일본 정치에 9·11 테러에 버금가는 충격을 가져다줄 것인가. 한반도 등 주변 국가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정적을 사정 없이 제거하다

고이즈미는 최대 공약이었던 우정민영화 방안이 부결되자, 배수진을 치고 정치판 새틀짜기를 시도했다. 한-중은 외교적 마찰을 빚어온 고이즈미 내각이 교체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 (사진/ AP연합)

과연 고이즈미는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고이즈미가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자민당을 깨부수겠다”고 강변했던 점, 그리고 이번 중의원 해산 뒤, 기자들 앞에서 “낡은 자민당을 부수고 새로운 자민당을 만들겠다. 낡은 자민당과는 절대 손잡지 않겠다. 반대한 사람과는 결별한다”라고 재차 강조했던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이즈미의 결정을 분석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낡은 자민당’이다. 자민당은 1955년 창당 이래 몇년을 빼곤 지금까지 일당 지배를 해왔다. 그 과정에서 정·관·재계의 유착 구조가 형성됐고, 이런 구조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경제 불황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고이즈미는 이 유착의 중심에 ‘낡은 자민당’이 있고, 건설업계, 우정성 관료 그리고 유족회가 그 3대 지지세력이라고 봤다. 이 3대 세력의 컨트롤 타워가 구하시모토파(다나카파, 다케시타파의 후신)라고 인식하고 있다.

결국 그는 자민당의 구체제 파괴, 구세력 청산이 자신의 절체절명의 과제고, ‘우정성 민영화’를 그 핵심적인 도구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민당식의 정치문법이자 전통인 “파벌간 타협의 정치”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자폭 해산”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그 정적은 바로 자민당 내의 최대 지분을 가지고 있는 하시모토파와 그에 동조한 가메이파, 호리우치파다. 이번 선거는 그들을 제거하기 위한 권력투쟁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우정민영화 법안에 대한 반란표 가운데 중의원 51명 중 40명(반대 31, 결석·기권 9), 참의원 30명 중 26명(반대 20, 결석·기권 6)이 이들 3대 파벌에서 나왔다. 고이즈미 입장에서는 이들 파벌을 해체 또는 약화하지 않는 한 ‘낡은 자민당’을 파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의 이러한 권력투쟁이 성공할 것인가? 중의원 해산 뒤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고이즈미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흐르고 있다. 애초 법안이 의회에 상정됐을 때만 하더라도 주요 언론은 사설을 통해 고이즈미의 스타일에 대해 비판했다. 고이즈미의 정치적 우군들조차 자민당의 분열을 우려해 참의원 표결을 미루고, ‘계속심의’할 것을 요구했다. 보수세력이 분열선거를 치르게 되면 자민당은 ‘필패’한다는 논리였다.

앞서 7월6일 중의원에서 우정민영화 법안이 5표 차이로 통과된 저녁 시간, 도쿄에서 가진 한-일의원연맹 만찬에서 자민당 의원들은 모두 희색이 만연한 얼굴이었다. 한-일의원연맹 21세기위원장인 모리파 소속의 오노신야 의원은 인사말에서 “오늘 만일 중의원에서 우정민영화 법안이 부결됐으면 만찬도 취소됐을 것이다. 모두 선거 때문에 지역구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중의원 해산을 바라지 않는다”라고 인사말을 시작했다. 자민당 의원들 대다수가 얼마나 중의원 해산을 바라지 않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권 교체를 노리는 제1야당 민주당은 내심 중의원 해산을 기대했다. 보수세력의 분열선거로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7일 민주당의 오카다 대표와의 한-일의원연맹 간담회에서 그는 “이번에 절대로 정권 교체를 이룰 것이다. 그 가능성은 일본 정치사에서 지금이 가장 높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표적공천’이라는 고이즈미의 자객

그러나 해산 직후의 여론은 고이즈미에게 모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고이즈미는 이미 그것을 읽고 사전에 전략을 세워놓았던 것이다.

우선 고이즈미는 ‘배수의 진’ 병법과 적을 분열시키는 전술을 사용해 자민당 내 ‘개혁세력 대 저항세력’간의 싸움으로 몰고 가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세련되고 속도감 있게 정적 제거 작업에 나섰다. 반란에 가담한 의원에게는 표적 공천이라는 ‘자객’을 보내고 있다. 또한 반대 파벌이 결속하지 못하도록 기권·결석한 의원 가운데 반성문을 제출하는 의원에게는 표적 공천을 유보할 수 있다는 분리전술의 섬세함도 보이고 있다.

중의원이 해산되자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총선거를 코앞에 두고 자민당과 고이즈미의 인기는 오히려 상승곡선을 그려 야당을 당혹케 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모든 언론의 시선을 자민당과 민주당간의 대결 구도가 아닌 자민당 내부로 향하도록 했다. 결국 선거 과정에서 민주당의 존재를 무력화한 것이다. 언론은 민주당이 무슨 공약을 내세우는지 어떤 후보를 내세우는지보다는 고이즈미가 보내는 ‘자객’이 누구인지, 반대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만을 보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미 그 불안감은 민주당의 개별 의원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참의원 표결을 하루 앞둔 8월7일 개인적으로 만난 민주당의 이노우에 의원의 발언은 이를 잘 보여준다. “고이즈미가 개혁을 화두로 유권자에게 선택을 강요했을 때, 민주당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벌써 고이즈미는 우정민영화 법안에 반대한 민주당과 자민당 내의 반대파를 반개혁 세력으로 몰고 있다. 이 점이 우려된다”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실제로 이번 해산선거에서 민주당은 세 가지의 불리한 요인을 안고 있다.

우선 민주당 자체의 문제다. 민주당이 지금까지 스스로 ‘정권준비당’이라고 자임해왔지만, 이번 우정민영화 법안에 대한 독자안조차 제출하지 못했다. 원칙적으로는 민영화에 찬성하지만 방법이 틀렸다는 이유로 당론으로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반대를 위한 당’의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민주당이 바라는 보수세력의 분열선거 양상이 기대 이하인 점이다. 자민당을 탈당한 반대파들은 무소속 상태로 각개전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국민신당’이라는 새로운 당을 창당했지만, 지금으로서는 10명도 되지 않는 소규모로 독자적인 정권 공약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무기력한 정당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마지막으로 민주당에 유리한 선거 쟁점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카다 대표 등 집행부는 우정민영화가 쟁점이 되지 않도록 연금·세금·외교 등의 쟁점을 제기하고 있으나, 이미 우정민영화를 전면에 내세운 자민당에 이슈를 선점당한 상태다.

‘난쟁이 국제 외교’는 계속될 것인가

그래서 갈수록 여론조사 결과는 고이즈미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 지난 13~14일 <마이니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고이즈미 내각 지지율은 51%를 넘어섰다. 중의원 해산 직후인 8~9일 조사보다 5%포인트 높으며, 7월 조사 때보다 무려 14%포인트나 상승했다. <후지TV>의 여론조사에서도 고이즈미 내각 지지율은 57.2%에 달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실제 선거에서 유권자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있더라도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게 투표하려는 밴드왜건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높다. 그렇게 되면 최초로 자력으로 정권 교체를 이뤄 일본 정치사를 새롭게 쓰고 싶어한 민주당의 꿈은 좌절될 수밖에 없다.

한일의원연맹 소속 국회의원들이 지난 7월 일본을 방문해 집권 자민당의 다케베 간사장(가운데)과 간담회를 가졌다. (사진/ 이성권 제공)

고이즈미에 의해 도발된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 결과는 일본의 국내 정치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비롯한 주변 국가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본과는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역사왜곡, 영토분쟁, 대북정책 등 한반도의 미래가 걸린 문제들이다.

고이즈미가 다시 승리하게 되면 동북아의 긴장 상태는 완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고이즈미가 8월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고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 “한국, 중국과의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 등의 메시지를 담은 담화를 발표했지만, 이것은 철저히 선거전략 때문이다.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게 되면 아시아 외교 실패, 유엔안보리 진출 불투명,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등 민주당이 쟁점으로 삼고자 하는 외교정책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컸기 때문이다.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삼을 생각은 전혀 없다”는 그의 발언은,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선거가 끝나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6월 한-일 정상간에 야스쿠니신사를 대체할 제3의 추도 시설 검토를 합의했음에도 고이즈미 내각은 최근 건립 조사비를 내년 예산에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 7월7일 자민당의 타케베 간사장을 만나 ‘총리 및 각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중지와 제3의 추도시설 건립’을 요구하자,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국민의 정서를 대변한 일본 정치가의 임무다. 그리고 일본의 국내 문제다. 제3의 추도시설 문제는 국민 정서를 고려해야 하므로 지금 입장을 표명할 수 없다”라고 답했다. 한마디로 냉정한 거부인 셈이다.

북한 핵 문제를 어젠다로 삼고 있는 6자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제기하는 고이즈미 정권의 모습 속에는 ‘난쟁이 일본 외교’가 숨어 있다. 동북아의 이웃 국가인 한국과 중국의 중재 노력을 무시하고 우익과 영합해 대북강경 정책에만 골몰하는 고이즈미 정권의 모습에서 동북아의 불안한 미래를 느낄 수 있다.

비록 한국이 일본 선거에 개입할 수는 없지만,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일본 총선의 흐름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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