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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2002년 대선은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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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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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 여야 극한의 대립… 정국주도권 확보 위한 차기 대선 전초전으로 치달아

사진/DJP 공조복원에 따른 여야간 극한 대립이 대선 전초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강력한 정부를 국정운영 패러다임을 삼을 것으로 보인다.(청와대 사진기자단)
“야당이 협력하기보다는 나를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하면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김대중 대통령)

“이 정권은 우리가 협력해서 세운 정권으로 잘되게 할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 그 책임을 수행한다. 이 정권이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하는 것이 국가에 나름대로 봉사하는 것이다.”(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개헌론이니 정계개편, 안기부 자금유입, 정치사정 등이 영수회담을 앞두고 나왔다. 이 무슨 작태인가.”(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지금 김대중씨는 다 썩어빠진 칼자루를 쥐고 있으며, 그나마 쥐고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완전히 이성을 잃은 짓만 하고 있다.”(김영삼 전 대통령)

DJP 공조복원과 여야 총재회담 결렬, 안기부 선거자금 수사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잇따르며 여야 정치권이 새해 벽두부터 극한대결로 치닫고 있다. 여권이 민주당 의원 3인의 자민련 임대라는 사상 초유의 ‘엽기적 묘수풀이’로 DJP 공조복원을 이뤄내고 안기부 예산 1천억여원의 옛 여권 선거자금 유입에 대한 검찰수사라는 칼을 빼들자, 야당은 “정치탄압”이며 강력대응에 나섰다. 게다가 검찰수사의 칼날이 자신도 겨냥하고 있다고 느낀 YS까지 “공공연한 정치보복”이라며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나서면서 정치권은 ‘3김+1이’가 총출동해 공방을 벌이는 양상이다.


자민련에 의원 임대하며 대야 강경책 구상

왜 갑작스럽게 여야간에 이처럼 얽히고 설킨 극한 대치정국이 찾아온 것일까. 불과 한달 전만 해도 여야는 상생의 정치를 외쳤다. DJ는 지난해 12월1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민주정부가 아니다. 이번 예산안이 끝나고 나면 연말이나 연초에 이회창 총재를 만나 국가 전체를 놓고 거시적인 입장에서 충분한 얘기를 하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때와 비교하면 상황이 180도로 달라진 것이다. 동교동계 관계자는 “김 대통령의 국정운영 패러다임이 변했다. 그동안 야당을 아우르면서 해나가겠다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강력한 정부, 강력한 여당을 모토로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DJ의 국정운영 기조가 바뀐 것은 우선 민주당 의원 3인의 자민련 임대로 DJP 공조가 완벽히 복원됐다는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권은 DJP 공조복원으로 원내 과반에 2석 못 미치는 135석(민주 116+자민련 19)을 얻었지만, 군소정당과 무소속 등 4명의 의원이 그동안 친여성향을 보여온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원내 안정의석을 확보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16대 국회 개원 이후 불안한 DJP 공조로 늘 한나라당에 끌려다녀야 했던 김 대통령으로서는 정국의 주도권을 되찾을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 때문에 김 대통령이 민주당의 세 의원을 자민련에 임대한 지난해 말부터 이미 대야 강경책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월4일 이회창 총재와의 회담은 대야 강경책 구사를 위한 모양 갖추기였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의 말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청와대도 여야 총재회담을 그냥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여부로 고민한 것으로 안다. 한나라당이 올 예산안 처리에 전혀 협조하지 않은데다 민주당 의원의 자민련 이적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하는 것을 보며 ‘한나라당과의 대화를 통한 국정운영은 이제 더 힘든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청와대에서 총재회담 개최여부로 설왕설래할 때 김 대통령이 ‘내게 맡겨라’라고 비서진에 말한 것으로 안다.” DJ가 여야 총재회담에 들어갈 때 이미 강력한 대응을 작심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DJ가 DJP 공조를 복원하는 순간 이 총재와의 격돌은 불가피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DJP 공조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DJ와 이 총재 사이에는 현격한 인식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DJ는 DJP 공조를 정국운영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DJ로서는 DJP 공조를 버리고 한나라당과의 대화 협력으로 정국을 이끌어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DJP 공조가 우선이고 그 다음이 여야 대화인 것이다. 이 총재의 DJP 공조 반대는 여권 무력화 의도라는 게 DJ의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이 총재쪽은 DJP 공조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반응을 보여 왔다. 이 총재는 지난해 12월15일 ‘경희대·강원일보 공동주최 최고정치전략과정’ 특강에서 “DJP 공조를 또다시 복원하려 할 경우 이 정권은 거센 국민적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사실 지난해 16대 국회 개원 이래 DJP 공조가 흔들리면서 이 총재는 정국 주도권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이회창 대세론’을 확산시켜 왔다. 따라서 이 총재로서는 DJP 공조가 되살아나는 것은 장밋빛 대선가도를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인 셈이다.

강력한 정부여당 이미지 심을 호기

사진/“이제는 힘의 정치로 가겠다.” 여권은 원내 안정의석을 확보해 정국 주도권을 되찾을 기반을 마련했다.(이용호 기자)
그러나 DJP 공조가 이처럼 전격적으로 복원된 데에는 역설적이게도 한나라당이 한몫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JP는 지난해 내내 ‘자민련 교섭단체 만들기’에 매달렸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DJP 공조 파기를 선언한 JP로서는 홀로서기를 위해서는 자민련의 교섭단체 등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면서 JP는 DJP 공조복원으로 유턴할 수밖에 없었다. “JP는 교섭단체 구성 실패로 지난해 11월 검찰총장 및 대검차장에 대한 탄핵소추안 파동 당시 초·재선의원들의 반란을 겪기도 했다. 권위가 심각하게 훼손된 것이다. 결국 JP는 한나라당이 자민련의 교섭단체 등록을 끝내 막아 고사시킨 뒤 이탈자를 포섭하겠다는 의도인 것으로 확신하게 된 것 같다. 그렇다면 JP가 갈 길은 뻔한 것 아니겠느냐.”(자민련 핵심관계자)

정치권에서는 DJP 공조복원을 계기로 전개되고 있는 여야간 싸움이 향후 정국 주도권의 향배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 나아가 2년이 채 남지 않은 2002년 대선구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지금의 소용돌이는 궁극적으로는 차기대선의 전초전 성격도 띠고 있는 것이다.

실제 민주당은 95∼96년 6·27지방선거와 4·11총선 등 두 차례 선거를 앞두고 안기부 예산 1157억원이 당시 여당이던 민자당과 신한국당의 선거자금으로 유입된 사실을 국기문란행위로 규정하고 연일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등 기세를 올리고 있다. 더욱이 김중권 대표는 “당시 이회창 신한국당 선대위의장이 자금의 세목에 대해선 보고받지 않았어도 액수가 크니까 안기부 돈의 유입을 알고는 있었을 것”이라며 이 총재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4일 여야 총재회담이 결렬되고, ‘3인 임대’에도 불구하고 강창희 자민련 의원의 반발로 자민련 교섭단체 등록이 무산될 때만 해도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5일 JP가 공조복원을 전격선언한 데 이어 8일 청와대에서 DJP 회동을 하면서 분명한 태도를 취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검찰수사 결과 1천억원이 넘는 안기부 예산이 옛 여당에 유입된 것이 확인되는 등 한나라당을 궁지에 몰아넣을 호재까지 이어지면서 정국 주도권을 되찾을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최근 DJP 공조복원과 안기부 자금의 옛 여권 유입에 대한 검찰수사로 ‘일석삼조’의 효과를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여당이 너무 무기력하다는 여론이 많았다. 심지어 시중에서는 정부가 정책을 내놓아도 코방귀만 뀐다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강력한 정부·여당 이미지를 심어주게 됐다. 또 그동안 광범위하게 확산되던 ‘이회창 대세론’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다. ‘이회창 대세론’은 사실 정국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여권에도 책임이 있었다. 또 그동안 집권당을 바지저고리로 봤던 한나라당에도 ‘집권당에 힘이 있다’는 경고 메시지가 갔을 것이다.”

이회창 대세론 빨간불… 분위기 반전 어려워

사진/한나라당은 안기부의 선거자금 불법지원 수사을 정치보복으로 규정하고 총력투쟁을 벌이기로 했다.(이용호 기자)
이에 반해 한나라당은 ‘3인 임대’로 인한 정국이 안기부 예산의 신한국당 선거자금 유입 조사와 맞물리면서 DJP 공조복원이 구체화되자 분노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강창희 의원의 반발로 ‘3인 임대’를 통한 자민련 교섭단체 등록이 무산될 때까지는 의기양양했으나 곧바로 김 명예총재의 DJP 공조 전격선언과 함께 검찰수사가 한나라당을 압박해오자, 한나라당에서는 ‘3인 임대’ 이후 일련의 사태가 2002년 대선을 겨냥해 정치판 자체를 뒤바꾸려는 여권의 치밀한 계산 속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는 판단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DJ가 ‘상생의 정치’로는 이회창 대세론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회창 죽이기’라는 최후의 방법 쓰기로 작심한 것 같다.”(윤여준 의원) 현 상황은 DJ가 지난해 10월께부터 ‘상생의 정치’를 내걸며 이 총재와 한나라당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하던 국정운영 방식을 포기하고 정권재창출을 위해 ‘이회창을 죽이고 한나라당을 분열시키는’ 고도의 정치적 음모를 실현하는 쪽으로 선회했다는 분석인 것이다.

상황 인식이 절박한 만큼 이 총재를 비롯한 주류쪽은 “이번에 밀리면 죽는다”며 “대여 전면전”을 선언하고, 가능한 대응수단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등 초강수로 맞대응에 나섰다. 일단 신한국당의 안기부 자금뿐 아니라 ‘97년 15대 대선 당시 김대중 비자금 670억원’, 노태우 대통령 집권 당시 김중권씨를 통해 DJ에게 전달된 ‘20억+알파’ 등 의혹이 있는 여야의 모든 선거자금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를 위해 시민단체 대표들이 포함된 ‘정치자금 진상조사기구’ 설치도 제안했다. 아울러 ‘김대중 신독재 저지 투쟁위원회(가칭)’를 설치하고 오는 10일부터 16일까지 수원·인천·부산 등에서 열리는 신년하례회를 투쟁위원회 현판식과 함께 규탄대회 형식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장외집회인 셈이다.

하지만 상황이 쉽사리 반전될 기미가 안 보인다는 데 한나라당의 고민이 있다. 먼저 여권의 치밀한 전략을 사전에 예상하지 못한 채 허를 찔린 데 대한 허탈감과 함께 자민련 교섭단체 문제에 대해 강경론으로 치달았던 지도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제기되는 등 내부 균열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안기부 자금을 지원받은 한나라당 의원의 이름이 계속 흘러나오면서 일부 의원들이 동요하고 있다. “과거 총풍·세풍 때는 이 총재를 겨냥했기 때문에 단일하게 뭉쳐 대응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의원들 개개인에게 직접 치명타를 가하는 것이라 의원들이 동요하고 있다. 더욱이 돈을 받아 집사고 꼬불친 사람들은 ‘돌아버리겠다’고 말한다. 지금도 서로 언론에 변명하느라 정신이 없지 않느냐.”(이 총재의 한 측근 인사) 사안의 성격상 단일대오 형성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권철현 대변인은 7일 고위당직자회의 뒤 “안기부 자금을 받은 것으로 보도된 의원들이 언론에 해명하는데 이런 식은 옳지 않다. 진정해달라”고까지 당부했다. 너도나도 변명을 하다보니 한나라당이 도덕적으로 뭔가 큰 잘못이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우려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내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공동대응을 모색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맹형규 기획위원장 등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DJ 비자금 파일을 가지고 있지 않겠냐”며 안기부 자금 수사로 함께 몰리는 상황에서 뭔가 터뜨려주기를 기대했다. 몇몇 당직자들도 “공동대응을 모색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검찰수사의 칼날이 궁극적으로 자신을 겨냥할 수밖에 없다고 느끼는 YS쪽도 이 총재와의 연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YS의 대변인격인 박종웅 의원은 6일 “이 총재가 순간의 어려움을 빠져나가려는 제스처만이 아니라 정말 반DJ투쟁을 해보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먼저 표명하고 요청한다면 (연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부에서 “이 총재가 YS에게 허리를 굽히고 찾아가는 것은 모양새가 안 좋다”는 반론이 적지 않아 성사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그렇다고 민주당도 “적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고 마냥 마음을 놓고 있을 처지는 못된다. 강창희 의원을 제명하는 초강수를 둔 자민련이 끝내 교섭단체 등록을 하지 못하는 한 DJP 공조의 안정성을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DJP 공조가 깨지는 순간 민주당으로서는 정국주도권을 다시 한나라당에 내줄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오히려 최근 대야 강경드라이브가 부메랑이 돼 급격한 레임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국민감정을 고려할 때 민주당 의원을 한명 더 임대해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고, 자민련이 김용환 의원이나 민국당쪽을 끌어들이는 것도 서로 이해관계가 엇갈려 손쉬운 작업이 아니다.

민주·자민련 합당 전망… YS의 선택은?

사진/자민련은 원내 교섭단체 등록을 좌절시킨 강창희 의원의 제명절차를 서둘러 처리했다.(이용호 기자)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민주당과 자민련 양당 지도부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결국 양당이 합당 절차를 밟게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그림을 크게 그려 JP를 매개로 한 DJ·YS·JP의 ‘신 3김연대’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 JP는 “(YS를) 한번 뵙고 싶었는데 아직 기회가 없다”고 YS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밝혔으며, 박종웅 의원도 “YS는 시간만 맞으면 누구든 문호를 개방한다. 그쪽에서 만나자면 만나는 것이지, 그것까지 꺼릴 필요가 뭐 있냐. JP에 대해서는 한번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여운을 남겼다. 상도동 사정에 밝은 한 민주계 인사도 “YS가 그동안 DJ에게 계속 독설을 퍼부었지만, 역시 이회창 총재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뜻도 비교적 분명히 밝혀왔다. 그것은 ‘이 총재로는 대통령이 안 된다. DJ 당신도 홀로 대권을 창출할 수는 없다. 내가 후보를 정할 테니 함께 밀자’는 DJ를 향한 메시지다. YS는 아직 그 전제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병수 기자suh@hani.co.kr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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