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뒤흔드는 신한국당 불법지원 사건 전말… 검찰 수사의 정치적 파장에 야권 초긴장
새해 벽두부터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안기부의 신한국당 선거자금 불법지원 사건’을 놓고 여야 정치권과 검찰이 또다시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 검찰은 “정당한 검찰권 행사”라고 항변하고 있다. 여론의 표적이 된 ‘의원 임대’ 사건과 묘하게 시기가 맞아떨어지긴 했지만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박순용 검찰총장은 8일 이례적으로 기자회견까지 자청해 “이번 사건은 국가예산을 횡령한 중대 범죄행위에 대한 수사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건의 본질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된다”며 이번 수사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수사로 결정타를 입게 된 한나라당과 김영삼 전 대통령쪽은 “청와대와 검찰, 민주당이 공동으로 정치적 음모를 벌이고 있다”며 의혹을 거듭 제기하고 있다.
검찰이 이번 사건의 단서를 처음 포착한 것은 지난해 7월께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7년부터 경부고속철도 차량선정 로비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황명수 전 의원이 로비자금을 받은 혐의를 포착해 계좌추적을 벌이는 과정에서 황 전 의원의 아들 명의의 차명계좌 등에서 거액의 괴자금이 입금된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당시 검찰청 주변에서는 “검찰이 황씨 계좌에서 ‘못볼 것을 봤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10월4일, 그 소문의 실체가 일부 모습을 드러냈다. <동아일보>가 “안기부에서 나온 400억원 이상이 96년 15대 총선 직전 신한국당의 선거자금으로 제공된 사실이 검찰의 계좌추적 결과 드러났다”고 보도한 것이다. 다른 언론들도 ‘안기부 총선자금 유입’의혹을 잇따라 보도하면서 의혹은 커져갔다. 몇몇 언론은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강삼재 의원(한나라당)과 인터뷰까지 했다. 그러나 강 의원이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완강히 부인하고, 검찰로부터도 더이상 정보가 확인되지 않자 언론들은 입을 닫았다.
지난해 10월 첫 보도 후 잠복
이회창 총재가 지난 1월4일 청와대 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유능한 검찰이 수사를 다해놓고 지난해도 꺼냈다가 다시 넣었는데, 일만 있으면 다시 꺼내느냐”고 목청을 높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이미 덮은 문제를 ‘의원 임대’ 사건이 터지자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다시 끄집어낸 것이라는 주장이다. 당시 검찰이 사건의 전모를 어느 정도까지 파악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이 문제가 처음 언론에 공개됐을 당시 정치권은 오랫동안 장외투쟁을 벌이던 야당이 국회복귀를 선언하고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가 ‘상생의 정치’를 내걸면서 화해를 시도하던 해빙기였다. 때문에 이 문제가 다시 정국의 핵으로 등장하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과 여권이 당시에 모든 사실을 알고서도 여야간 화해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덮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진실이야 어떻든 10월에 묻혔던 안기부 자금 사건이 두달 만인 지난 1월3일 정치권을 뒤흔드는 핵폭탄으로 다시 등장한 계기는 검찰의 보도중지(엠바고) 요청을 언론이 거부한 때문이다. 지난해 12월13일. 대검 기자실 주변에서 “KBS가 안기부 괴자금 관련 검찰 수사내용을 확인해 보도한다”는 소문이 또다시 퍼졌다. 모든 기자들은 긴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책임질 수 있으면 맘대로 써라. 우리가 덮어버리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하느냐”며 보도자제를 압박했다. 결국 보도는 이뤄지지 못했다. 곧이어 검찰 고위관계자가 “전체 중 극히 일부만 확인된 상태에서 섣불리 보도되면 야당이 표적수사라고 반발하는 등 사실상 수사가 어려워진다다”면서 연말까지 보도를 자제해 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검찰 출입 기자들은 논란 끝에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보도중지 요청 기한이 다가오면서 문제는 다시 불거졌다. 검찰은 12월29일을 전후해 다시 “보름 정도만 더 시간을 주면 결과가 나올 것 같으니 협조해 달라”며 보도중지 기한 연장을 법조기자실에 요청했다. 그러나 올 1월2일 열린 기자단 회의에서 기자들은 “무조건 엠바고를 수용하기 어렵다”면서 “그동안 수사경과를 설명듣고 결정하자”는 의견을 냈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이에 “그동안 10여 차례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계좌추적을 해왔는데 다 끝났나 싶으면 또 연결계좌가 나오고 또 나오고 해서 모계좌까지 이르지 못했는데 이제 거의 근접했다는 게 수사팀의 판단이다. 4∼5일 뒤면 모계좌 추적으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고를 받았다. 모계좌를 까보면 통치자금인지 기업자금인지가 판가름날 것이다”고 설명했다. 몇몇 기자들이 불만을 내비치기는 했지만 일단 엠바고 요청을 받아들여 며칠 더 참기로 했다. 그러나 잠시 뒤 상황이 돌변했다. <한국일보>쪽에서 “검찰의 보도중지 연장요청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게 회사의 지침”이라며 거부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리고 영수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인 1월3일 아침 <한국일보>에는 “안기부가 96년 총선 때 예산을 전용해 당시 여당에 500억원대를 제공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수사 과정에 나타난 석연치 않은 구석들
그동안의 진행상황을 볼 때 검찰이 꾸준히 옛 안기부의 선거자금 지원 문제에 대한 수사를 진행시켜왔고, 그것이 결정적으로 터져나온 것은 일부 언론이 보도중지 요청을 거부한 데 따른 것은 분명하다. 또한 최근의 검찰 분위기로 볼 때 설사 청와대나 여권이 이 사안을 덮고 싶었더라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검찰의 순수성이 완전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아 있는 것이다.
먼저 시점의 문제. 지난해 10월 이 문제가 처음 불거질 때와 유사하게 이번에도 여야 총재회담을 하루 앞두고 문제가 터져나왔다. 더욱이 이번에는 검찰이 아주 발빠르게 움직였다. 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3일 검찰은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을 전격 소환했다. 민주당의 대응은 신속함을 넘어 의심을 살 만한 대목까지 엿보였다. 여야 총재회담이 결렬된 바로 다음날인 5일 아침부터 여권 핵심인사들은 수사내용에 대해 잇따라 언급했다. “안기부 자금을 받은 사람들의 리스트가 완전히 확인됐다는 말을 들었고 수사를 통해 전모가 밝혀질 것이다. 이회창 총재도 알았을 것이다.”(김중권 민주당 대표) “15대 총선에서 안기부로부터 10억원 이상을 받은 인사가 10명이 넘는다는데….”(김영환 민주당 대변인). 검찰과 여권이 수사범위 등에 대해 비밀리에 조율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말들이었다.
더욱이 ‘의원 임대’와 DJP 공조복원 등 여권의 정치적 기반강화 작업이 이 사건 보도를 전후해 집중적으로 이뤄진 대목은 “검찰이 진작 선거자금 실체를 파악해놓고 여권이 대야 강경드라이브 시동을 거는 시점에 맞춰 터뜨린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검찰 관계자가 2일 <한국일보>쪽의 보도중지 요청 거부를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않은 채 “언론에 보도돼도 우리로서는 답답할 게 없다”고 여유를 부린 점도 이런 의혹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그래서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공식 발표를 통해 수사에 나설 경우 예상되는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보도중지 요청이 거부되는 형식을 일부러 선택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여야간에 논란이 이렇게 첨예한 이번 사건의 수사는 과연 어떻게 진행될까.
검찰은 현재까지 수사를 통해 96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 겸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강삼재 현 한나라당 부총재가 안기부에서 신한국당의 경남종금 차명계좌 2개에 넣어준 940억원을 관리·배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강 부총재가 이 돈을 당시 신한국당 총선 출마자 185명에게 2천만원에서 15억원씩 배분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검찰은 “안기부 자금을 관리한 적이 없다”는 강 부총재의 해명을 아예 일축하는 분위기다.
이 총재와 김현철씨 등에 대해서는 면죄부
검찰은 최근 또 돈을 받은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채무변제나 재산증식 등 개인적 용도로 자금을 유용하거나 착복한 사실까지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국민세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파렴치 행위에 해당하는 만큼 사실로 드러날 경우 비난여론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남은 문제는 이번 수사가 얼마나 철저히 진행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벌써부터 이번 사건의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 이회창 총재와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가능성을 배제하는 듯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회창 총재는 15대 총선을 한달여 남겨놓은 3월에 선대위의장을 맡았기 때문에 그전에 집행된 안기부 선거자금에 대한 내용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또 김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아들 현철씨의 개입 흔적도 아직 나온 게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이들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검찰은 강 부총재를 비롯한 사건의 핵심인물과 고액 자금 수수 정치인 등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면서 출두를 거부하는 현역의원들에 대해서는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등 적극 대응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1월10일부터 임시국회를 소집해 사실상 ‘방탄국회’를 이어갈 기세여서 법 집행이 제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이와 관련해 “180여명의 전·현직의원들이 도덕적 치명상을 입고 동요하는데 이를 두고볼 수만은 없다”면서 “방탄국회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끝까지 보호한다는 게 당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과 검찰의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박병수 기자suh@hani.co.kr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이회창 총재가 지난 1월4일 청와대 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유능한 검찰이 수사를 다해놓고 지난해도 꺼냈다가 다시 넣었는데, 일만 있으면 다시 꺼내느냐”고 목청을 높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이미 덮은 문제를 ‘의원 임대’ 사건이 터지자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다시 끄집어낸 것이라는 주장이다. 당시 검찰이 사건의 전모를 어느 정도까지 파악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이 문제가 처음 언론에 공개됐을 당시 정치권은 오랫동안 장외투쟁을 벌이던 야당이 국회복귀를 선언하고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가 ‘상생의 정치’를 내걸면서 화해를 시도하던 해빙기였다. 때문에 이 문제가 다시 정국의 핵으로 등장하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과 여권이 당시에 모든 사실을 알고서도 여야간 화해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덮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진실이야 어떻든 10월에 묻혔던 안기부 자금 사건이 두달 만인 지난 1월3일 정치권을 뒤흔드는 핵폭탄으로 다시 등장한 계기는 검찰의 보도중지(엠바고) 요청을 언론이 거부한 때문이다. 지난해 12월13일. 대검 기자실 주변에서 “KBS가 안기부 괴자금 관련 검찰 수사내용을 확인해 보도한다”는 소문이 또다시 퍼졌다. 모든 기자들은 긴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책임질 수 있으면 맘대로 써라. 우리가 덮어버리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하느냐”며 보도자제를 압박했다. 결국 보도는 이뤄지지 못했다. 곧이어 검찰 고위관계자가 “전체 중 극히 일부만 확인된 상태에서 섣불리 보도되면 야당이 표적수사라고 반발하는 등 사실상 수사가 어려워진다다”면서 연말까지 보도를 자제해 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검찰 출입 기자들은 논란 끝에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보도중지 요청 기한이 다가오면서 문제는 다시 불거졌다. 검찰은 12월29일을 전후해 다시 “보름 정도만 더 시간을 주면 결과가 나올 것 같으니 협조해 달라”며 보도중지 기한 연장을 법조기자실에 요청했다. 그러나 올 1월2일 열린 기자단 회의에서 기자들은 “무조건 엠바고를 수용하기 어렵다”면서 “그동안 수사경과를 설명듣고 결정하자”는 의견을 냈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이에 “그동안 10여 차례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계좌추적을 해왔는데 다 끝났나 싶으면 또 연결계좌가 나오고 또 나오고 해서 모계좌까지 이르지 못했는데 이제 거의 근접했다는 게 수사팀의 판단이다. 4∼5일 뒤면 모계좌 추적으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고를 받았다. 모계좌를 까보면 통치자금인지 기업자금인지가 판가름날 것이다”고 설명했다. 몇몇 기자들이 불만을 내비치기는 했지만 일단 엠바고 요청을 받아들여 며칠 더 참기로 했다. 그러나 잠시 뒤 상황이 돌변했다. <한국일보>쪽에서 “검찰의 보도중지 연장요청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게 회사의 지침”이라며 거부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리고 영수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인 1월3일 아침 <한국일보>에는 “안기부가 96년 총선 때 예산을 전용해 당시 여당에 500억원대를 제공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수사 과정에 나타난 석연치 않은 구석들

사진/안기부 선거자금 불법지원과 관련한 검찰 소환 요구에 불응하고 있는 강삼재 한나라당 부총재(왼쪽), 권영해 안기부장(가운데), 구속된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