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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박영선은 삼성의 두통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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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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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산업법 개정안으로 재벌그룹의 문제를 정면에서 제기
“지난해 공정거래법 통과 때도 삼성이 굉장한 압력을 넣었다”며 비판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지난 7월6일 국회 본회의가 끝난 뒤였다. 박영선 열린우리당 의원은 같은 당의 우원식 의원한테서 아직 인쇄에 들어가지 않은 ‘삼성 백서’ 한권을 건네받았다. 책 맨 앞장엔 우 의원이 직접 쓴 “건투를 빈다”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박 의원은 굳이 묻지 않았지만 뭘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지난해 삼성에서 벌어진 부당노동 행위, 노조탄압 등을 고발한 우 의원이 ‘동지애’를 표시한 것이다.

<한겨레21>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 의원을 만났다. 최근 삼성의 헌법소원이나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금융산업법(금산법) 개정안을 둘러싼 이슈의 한편엔 박영선 의원이 서 있다.


삼성 대리인 역할하는 정부도 비판

삼성은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집단에 소속된 금융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현행 30%에서 2008년까지 15%로 줄이는 공정거래법이 재산권 등을 침해한다며 6월29일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박 의원은 삼성의 논리가 금융사가 고객 돈을 끌어다가 아들을 위해 집 한채를 사놓고 고객들에게 들켰는데도, 이사갈 집이 없으니까 그냥 살게 해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한다. 삼성의 헌법소원은 재벌 금융사가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 없이 계열사 지분 5% 이상을 취득한 경우 초과 지분을 처분하도록 한 박 의원의 금산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지연시키려는 전략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가 6월1일 여야 의원 26명의 서명을 받아 발의한 금산법 개정안이 삼성의 이해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박 의원의 금산법은 사실상 삼성생명, 삼성카드 등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뼈대를 이루는 계열사의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다.

박영선 의원이 재벌 금융사들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은 20여년 동안 주로 경제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보고 들은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싹텄다. (사진/ 박승화 기자)

여당의 원내 대변인까지 지낸 그는 “삼성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며 정부에도 날을 세웠다. 정부가 5% 이상의 초과 지분의 소유를 묵인해주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금산법 개정안을 확정해 7월5일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가슴이 답답했다. 정부 법안은 5% 초과 지분을 이미 처분한 다른 그룹들과 삼성간 형평성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는 애초부터 정부의 금산법을 삼성을 봐주는 “반쪽짜리 법”으로 여겼지만, 이 문제에 “결정권이 없다”고 스스로 밝힌 정부가 문제점으로 지적된 법안의 내용을 수정하지 않은 채 밀어붙이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문화방송 기자 출신인 그가 왜 재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일까. 언뜻 와닿지 않는다. 노동운동에 몸담았던 심상정·단병호 의원 등이 삼성을 비판하면, 으레 민주노동당은 재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니까 그러려니 하겠지만, 박 의원의 경우는 다소 의외로 비친다. 지금 그의 모습은 하루아침에 급조된 이벤트가 아니다. 그가 재벌 금융사들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은 20여년 동안 주로 경제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보고 들은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싹텄다. 옛 금융·증권·보험감독원 등을 출입하면서 보이지 않게 빚어지는 재벌 금융사들의 부당거래 행위 등 숱한 문제점을 직접 목격한 것이 지금의 문제의식을 키워낸 것이다. 삼성생명의 태생적 문제나 지배구조의 문제점도 오래전부터 인식해왔다. 그러면서 거창하지는 않지만 경제정의 차원에서 “언젠가는 바로잡아야 한다”는 나름의 철학도 영글었다.

그는 금산법을 발의한 뒤 주변에서 “당신이 삼성의 대단한 걱정거리라고 하더라”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동료 의원이나 지인을 통해 ‘삼성의 뜻’을 간접적으로 전달받는 셈이다. 그는 한 동료 의원에게서 “삼성과 싸워서 이긴 사람이 없다는데, 겁없이 왜 덤비냐”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제가 그렇게 근심을 안겨주는 사람이라면 죄송하네요”라는 말로 넘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이) 뭔가 나를 압박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삼성을 ‘스니키’(sneaky·비열한)하다고 그가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경제정의라는 그물망을 만들려고 하는데 유독 삼성만이 그물에다 돌을 하나 더 얹어서 그물이 얼마나 센지를 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이 공정거래법을 놓고도 국회의원들에게 많은 압력을 넣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지난해 열린우리당이 공정거래법을 국회 정무위에서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삼성으로부터 굉장한 압력이 있었다. 당사자인 의원들이 공정거래법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한테서 여기저기 불려다니면서 ‘그냥 잘 해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왜 재벌문제를 그냥 넘길 수 없는가

그는 삼성에 맞서는 자신을 강단 있는 여성으로 보는 주위 시선에 “그냥 가치관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떻게 보면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싸움이 될지 모른다”고도 말한다. 언론인 출신인 그는 당장 자신이 뭐라고 주장하든 언론사가 광고를 틀어쥔 삼성의 기사를 쉽게 내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주장은 주요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그리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이제는 덜하지만 재벌, 특히 삼성을 비판하는 것을 금기시해온 정치권 분위기도 여전하다. 지난해 그가 재벌의 변칙 상속·증여 문제를 국정감사 테마로 잡아 비판한 것에 대해, 당시 천정배 원내대표한테서 “지금까지 국회에서 재벌의 이름을 직접 거론해 비판하면서 국정감사를 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박 의원은 작년 국정감사에서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재벌을 비판했다. 2004년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최광 국회예산정책처장 면직동의안에 대한 표결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황석주 기자)

그가 기업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 기여한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재벌의 왜곡된 문제를 그냥 넘길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글로벌화 과정에서 세계 브랜드로 성장하려면 과거 재벌에게 돌아간 특혜 부분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재벌 때문에 우리의 경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그가 금산법을 발의한 것도 밑바탕에 이런 고민이 깃들어 있다. 또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재벌 2세, 3세의 경영세습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자신이 발의한 금산법의 미래를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 국회 재경위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 대부분의 서명을 받아놨다는 것은 희망이다. 하지만 9월 정기국회 때부터 심의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을 어떻게 설득할지가 과제다. 삼성이 어떻게 나오느냐도 변수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너무 공격적으로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빼놓지 않았다. 삼성에 밉보이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자칫 너무 뚜렷하게 전선이 형성되면 법안 통과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금산법을 발의해 삼성과 싸우고 있으면서도 “삼성과 싸우는 것은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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