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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소장파가 박근혜에게 던진 수류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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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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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혁신위, 당권·대권분리와 지도체제 개편 뼈대로 한 혁신안 제출
내년 1월 전당대회 개최 주장하지만 반대 만만치 않을 듯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한나라당 내부 사정이 꽤 복잡하다. 아직 갈등이 표출되지는 않았지만 긴장감이 잔뜩 흐르고 있다. 차기 대권을 향한 판짜기를 어떻게 하냐를 놓고 셈법이 다들 다른 탓이다. 그동안 의원들의 머릿속과 수사에 그쳤던 대권 게임의 법칙에 대한 이해 충돌이 지난 6월21일 당 혁신위(위원장 홍준표 의원)의 혁신안 발표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혁신안의 온전한 통과와 이를 위한 내년 1월 조기 전당대회를 지지하는 소장개혁파와 박근혜 대표와의 대립각이 뚜렷해질 태세다.

박근혜 “내 사전에 재신임은 없다”


김무성 한나라당 사무총장(왼쪽)이 박근혜 대표에게 뭔가를 조용히 보고하고 있다. 박 대표가 혁신안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당 안팎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사진/ 한겨레 황석주 기자)

혁신안의 뼈대는 당권·대권 분리와 지도체제 재편에 있다. 혁신안은 대선 출마 후보 희망자가 공정한 경쟁을 위해 선거일 1년6개월 전에 사퇴하도록 했다. 또 9인의 최고위원회의가 당내 최고의사 결정기구로서 기능하는 집단지도 체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다양한 계파가 최고위원회에 참여해 특정 후보에게 쏠리지 않는 공정한 경선을 치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결국 혁신안은 차기 정권 창출을 위한 한나라당의 시스템을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는 방법론에 다름 아니다. 많은 의원들이 혁신안의 집행 시기와 이를 위한 전당대회 개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혁신위는 당 혁신과 변혁을 꾀한 뒤 새로운 지도 체제로 지방선거를 치르자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의 공천이 마무리되는 3월 이전, 즉 내년 1, 2월에는 전당대회를 개최해 혁신위 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홍준표 의원은 “전당대회 날짜를 박지는 않았지만, 혁신위의 의견은 사실상 1월에 전당대회를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혁신위 안을 놓고 의원총회나 운영위원회를 통과하는 데 한두달의 시간이 걸리고, 오는 9월부터 정기국회가 시작되기 때문에 내년 1~2월쯤이 전당대회를 열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혁신안이 의원총회나 운영위원회를 그대로 통과하고, 내년 1월에 전당대회가 개최될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표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박 대표는 “내 사전에 재신임은 없다”고 말할 만큼, 내년 7월까지인 자신의 임기를 채우고 싶어한다. 대표로서는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다시 대표에 선출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봤자 본전인 셈이다. 괜히 잘못됐다가 리더십에 손상을 입을 수 있는 정치적 변수만 하나 더 만드는 꼴이다. 이 때문에 박 대표쪽은 조기 전당대회론을 리더십 흔들기로 보는 시각도 강하다. 또 혁신안의 내용인 집단지도 체제에 대해서도 이미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어, 만에 하나 혁신안 내용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온전히 수용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박 대표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성공리에 치른 뒤에 그 여세를 몰아 대권후보 대세론을 더욱 굳힐 수 있다는 계산도 고려될 수 있다. 특히 보이지 않게 공천권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라는 자리가 지방선거를 계기로 당 안팎의 지지 기반을 더욱 공고화할 수 있다. 박 대표는 “혁신안은 의원총회나 운영위에서 결정하는 것”이라는 원칙론적인 의견만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소장개혁파나 비주류 의원들은 박 대표가 혁신안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소장개혁파의 결의는 분명하다. 박 대표가 혁신안이나 조기 전당대회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파국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소장개혁파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남경필 의원은 “박 대표가 혁신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1~2월 조기 전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당이 쪼개지는 심각한 상황으로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안을 부분적으로 손질하는 쪽으로 끌고 가더라도 충돌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장개혁파들은 혁신위 안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만큼 어느 하나를 거부하면 전체을 손질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혁신위원회 홍준표 위원장이 지난 4개월여 동안의 활동 결과인 당 정강 · 정책 · 구조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당내 한목소리로 당 쇄신을 외치며 출범했으나, 그 결과를 놓고는 분열과 갈등이 예고되고 있다. (사진/ 한겨레 황석주 기자)

소장파 지지할 원군은 어디에 있을까

소장개혁파들은 혁신안은 대선을 위한 공정한 게임의 법칙이자 한나라당이 정권 창출을 위해 반드시 수용해야 될 쇄신 방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남경필 의원은 “당에 누구든 들어와서 승부를 걸어볼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놔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왜 고건 전 총리가 한나라당에 들어오겠냐. 이명박 시장이나 손학규 경기지사가 딴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혁신안과 조기 전당대회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곧 공정한 대권 경쟁 구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또 박 대표가 지난 2월 충북 제천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혁신위를 제안해놓고 혁신위가 내놓은 안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모순을 범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 때문에 이성권 의원은 “박 대표가 혁신안을 안 받게 되면 거기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장개혁파들은 혁신안을 놓고 친박(친 박근혜), 반박(반 박근혜) 구도로 짜이기를 원치 않는다. 당내 침묵하는 대다수 의원들은 친박, 반박 구도에서 친박쪽에 편승해왔기 때문이다. 대권 예비후보로서 꿈을 접지 않은 강재섭 원내대표가 어디에 붙냐도 관심거리지만, 소장파의 편에 서지는 않을 전망이다. 강 대표의 측근은 “강 원내대표는 박 대표가 당 운영 등에 중대한 잘못을 하지 않은 이상 당헌·당규에 따라 임기를 채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장개혁파들이 혁신안을 놓고 박 대표와 맞붙더라도 힘이 될 만한 원군을 얻어내기 쉽지 않아 보이는 대목들이다.

그러나 박 대표가 먼저 나서 혁신안을 어떤 조항들을 반대한다거나 조기 전당대회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태도를 명확히 할 것 같지는 않다. 박 대표가 자신의 임기를 고집한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승민 대표 비서실장은 “대표 혼자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혁신안에 대한 결론이 나면 거기에 따라 전대가 필요하냐 안 하냐를 다시 결정하는 것이지, 미리부터 전대를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혁신안과 조기 전당대회를 받아들인다면 소장파와의 당내 갈등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혁신안의 내용과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놓고 소장개혁파와의 깊은 인식차를 드러내고 있다. 이 때문에 의원총회 등에서 혁신안을 놓고 토론이 본격화할수록 양쪽의 갈등은 표면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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