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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안영근 개과천선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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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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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석규 기자/ 한겨레 정치부 sky@hani.co.kr

이름 때문에 오해를 많이 산 '안개모' (사진/ 김경호 기자)

정치에서도 ‘네이밍’(이름짓기)이 삼할은 먹고 들어간다. 쥐뿔도 없지만 잘 지은 이름 하나로 폼 잡기도 하고, 뼈빠지게 노력해도 ‘그놈의 이름 때문에’ 늘상 늪에서 허우적대기도 한다.

열린우리당에 있는 ‘안개모’(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들의 모임)라는 모임은 이름 때문에 고생을 좀 하는 경우다. 지난해 출범할 때부터 이름 때문에 적잖이 수모를 당했다. ‘안개 속에 쌓인 모임’이라는 놀림은 점잖은 편이다. ‘안영근 의원을 개과천선시키기 위한 의원모임’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국민참여연대’라는 조직은 6월6일 ‘안개모’를 비판하는 성명에서 ‘안개 같은 행위를 일삼는 움직임을 면밀히 추적할 것’이라고 을렀고, ‘안개성 미몽에서 깨어나기 바란다’고 놀렸다.


성씨가 같아서인지 지금도 ‘안개모’ 간사는 안영근 의원이라고 박박 우기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간사를 열심히 하고 있는 박상돈 의원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오죽하면 박 의원이 ‘안개모를 주도하는 안영근 의원’이라고 표현한 언론사 기자에게 정정보도를 요구했을까.

얼마 전 ‘안개모’ 소속인 안영근, 정장선 의원이 발언 관련 구설로 모임을 탈퇴하자, 모임 내부에서도 개명을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박상돈 의원은 “아무래도 이름을 잘못 지은 것 같으니 한번 바꿔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몇 가지 구체적인 대안이 제기됐다. 국민 의견을 으뜸으로 섬기고 당과 국민을 연결하는 창구라는 뜻에서 ‘프라임’, 민주적이고 열린 토론을 하는 모임이라는 의미에서 ‘아고라’, 국민의 뜻에 초점을 맞추자는 취지로 ‘더 포커스’, 국민과 약속한 것들을 실천하자는 다짐으로 ‘프라미스’ 따위가 거론됐다.

하지만 ‘안개모’ 회장인 유재건 의원이 “고우나 싫으나 안개모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으니 그냥 가자”고 반대했고, ‘안개모’ 개명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안개모’ 관계자는 “뭔가 댄디한 느낌을 주는 이름으로 바꿔보자는 생각이었는데 반론도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천·신·정’은 천정배 전 원내대표와 신기남 전 당의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함께 부르는 이름이다. 기자가 <한겨레21>에 있을 때 지었고, 지금의 고경태 편집장이 표지 제목으로 달아 정치권에 널리 퍼졌다. 2003년 당시 이 세 사람은 ‘탈레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기자가 보기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고, 아프가니스탄의 ‘원조 탈레반’들도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신·천·정’ ‘정·신·천’도 검토했으나 어감이 좋아서 ‘천·신·정’이라고 작명했다.

그 뒤 한나라당에서도 ‘천·신·정’의 ‘후예’들이 등장했으니, ‘남·원·정’이다.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의원을 일컫는 조어였다. ‘유사품’까지 등장한 것을 보면 ‘천·신·정’이라는 작명이 그런대로 괜찮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름보다는 내실이다. 16대 때 결성돼 지금도 활동 중인 ‘바른정치실천연구회’라는 국회의원 모임이 있다. ‘바른생활맨’을 떠올리게 하는 촌스럽기 짝이 없는 이름이지만 열심히 활동해 ‘모범적 의원모임’으로 선정됐고, 소속 의원 대부분이 재선에 성공했다. ‘국민정치연구회’ ‘참여정치연구회’ ‘신의정연구센터’ 등의 고색창연한 이름을 가진 의원모임들도 꽤 되는 편인데, 이름 덕을 크게 본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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