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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빠를 위해 두들겨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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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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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영/ <국민일보> 정치부 기자 dynam@kmib.co.kr

국회 개원일 17대 국회의원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탤런트 이덕화씨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이 악수하자고 손 내밀면, 지금은 새파란 아이들도 ‘그럼 열심히 하세요’하고 돌아서지만, 옛날에는 두손으로 잡았어”라고 말했다. 이씨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국회의원 ‘값’이 떨어진 지 오래다. 국회의원 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원의 자녀들도 이에 못지않게 설움을 겪는다.

열린우리당 중진 ㄱ의원은 요즘 중학생 아들을 캐나다로 유학 보낼 것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아들이 학교에서 자주 싸우기 때문이다. ㄱ의원의 억장이 무너지는 것은, 그 이유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ㄱ의원은 현재 재판 중이다. 그런데 ㄱ의원 아들 학교 학생들은 “너희 아버지 곧 국회의원 잘린다며?”라고 놀리고, 아들이 참지 못해 대들면서 싸움이 시작된다고 한다.

열린우리당 재선 ㄴ의원은 어느 날 아침 식탁에서 초등학생 딸로부터 “아빠, 왜 사람들이 아빠를 돌대가리라고 욕해”라는 질문을 받았다. ㄴ의원은 “정말 황당했다. 내가 요즘 인터넷에서 욕을 많이 먹고 있는데 이 얘기가 딸에게까지 들어간 것이다. 딸에게 상처를 안 주려고 설명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전했다.


충청권의 열린우리당 초선 ㄷ의원은 올해 초 지역구의 집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중학생인 아들이 학교에서 친구와 싸우다가 다쳤는데 병원에서 CT촬영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ㄷ의원은 “더 황당한 것은 맞은 이유였다”고 말했다. ㄷ의원의 아들은 “처음에는 그 친구와 주먹을 주고받았는데, 갑자기 ‘내가 얘를 때리면 아빠한테 문제가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두번 때린 다음부터는 계속 맞기만 했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ㄷ의원은 “한편으로는 아들이 어른스러워졌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못할 짓을 한다는 생각도 교차했다”며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역시 열린우리당 수도권의 중진 ㄹ의원은 “초등학생 아들 발톱이 다 꺾였다”고 하소연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ㄹ의원의 아들은 뛰기를 좋아하는데, 아래층에서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ㄹ의원의 부인은 “뛰지 말라”고 워낙 교육을 철저히 했더니 아들은 발끝으로 걷는 게 버릇이 됐고, 결국 발톱이 뒤로 많이 꺾여버렸다. ㄹ의원은 “안 되겠다 싶어 지역구에 집을 지으려 했는데 그것도 주변에서 눈총 줄까봐 그냥 산다”고 했다. 최근 의원직을 상실한 ㅁ 전 의원도 아들 문제로 속을 썩인다. ㅁ의원의 아들이 학교에서 자주 싸우며 말썽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말썽의 이유는 역시 “너네 아버지 이제 끝났다며?”라고 놀리는 동료 학생들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한나라당의 중진 ㅂ의원은 요즘 싱글벙글이다. 대학에 다니던 아들이 자진해서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결핵을 앓아 방위근무를 했던 ㅂ의원은 사석에서 “아들이 아버지 도와주려고 그랬는지 몰라도 대견하긴 하다”며 은근히 자랑이 한창이라는 후문이다.

국회의원이라고, 의원 자녀라고 특권을 바라는 시대는 갔다. 오히려 ‘역차별’도 어느정도 있다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투닥이는 문제에 끼어들 필요는 없겠다. 다만 한 가지, 국회의원 자녀들의 ‘수난 에피소드’는 우리 사회가 상류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와 책임)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징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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