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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정찬용의 미스테리 자살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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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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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요즘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눈과 귀는 ‘행담도’로 쏠려 있다. 서남해안 개발 명목으로 진행된 한국도로공사의 행담도 개발 사업에 대통령 직속 동북아시대위원회,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까지 직접 관련된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언론은 연일 시스템 국정운영을 공언했던 노 대통령이 업무 분야가 전혀 다른 정찬용 전 인사수석에게 이를 지시한 사실을 집중 비판한다.

청와대는 일부 실수가 있었지만,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정부가 나선 것은 당연하다는 태도다. 청와대가 더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노 대통령과 정 전 수석의 내밀한 대화 내용이 언론에 모두 폭로됐다는 것이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핵심 참모는 그 누구라도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숨기는 게 본능이다. 그것은 참모의 주요 자질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2003년 정 전 수석에게 일을 맡아달라고 설득·지시한 사실을 <중앙일보>에 알려준 여권의 핵심 소식통이 바로 정찬용 전 수석 본인이라는 게 청와대 조사 결과 밝혀졌다.
청와대 핵심 참모들은 5월31일 <중앙일보>에 대통령 지시 사실이 보도되자, 여권 내부에서 깊숙이 조율됐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근거는 두 가지였다. 이런 중요한 내용을 언론에 무작정 공개할 만큼 어리석은 참모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이 첫째다. 노 대통령이 정 전 수석에게 “국토 균형발전의 요체는 낙후된 호남의 발전인 만큼 호남 출신인 정찬용 수석이 맡아달라”고 말했다는 점이 두 번째 근거였다. 부담이 있겠지만 노 대통령이 호남에 얼마나 깊은 애정이 있는지 보여줄 팩트라고 판단한 여권 핵심들이 면밀한 손익계산 끝에 공개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청와대의 바람일 뿐이었다는 게 곧 드러났다. 김우식 비서실장, 문재인 민정수석, 조기숙 홍보수석 등 핵심 참모들 가운데 그 누구도 이런 고급 정보가 언론에 흘러나간 경위를 몰랐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뒤늦게 정 전 수석을 지목했다. 대통령과 오간 내밀한 대화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그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정 전 수석은 상당한 시간 동안 청와대 핵심참모들의 전화통화 시도에도 응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정 전 수석이 유일하게 응답하는 것으로 알려진 민정수석실 전화로 정 수석과 연결됐고, 자신이 그 소식통임을 실토받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 전 수석이 ‘나도 그게 그렇게 기사화될 줄은 몰랐다’고 해명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여전히 충격에 빠져 있다. 정 전 수석은 대통령을 원칙대로 보좌하는 최고의 참모로 평가받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정찬용 수석이 왜 그런 자살골을 넣었는지, 정말 미스터리하다”고 입을 모은다. 추측만 무성하다. 정 전 수석 자신은 행담도 의혹에서 한점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구명 차원에서 벌인 일이라는 시각부터 언론의 생리를 잘 모른 데 따른 실수, 참모가 아닌 시민단체 출신의 한계 등이 지적되고 있다. 물론, 진실은 정 전 수석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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