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문백태 지방의회 자질향상 프로젝트 부상… 정치권은 정당공천 환영, 지방의회는 유급제 등 ‘당근’에 관심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인천 시의회·구의회 의원들의 잇따른 폭행 사건, 서울 동대문구의회 의원들의 한의약전시관 특혜 분양 의혹, 전북 정읍시의회 전·현직 의장 사이에 코피까지 터진 주먹다짐…. 출범 15년차를 맞은 지방의회 의원들의 추문과 구태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1991년 첫 기초·광역 의원 선거 당시 지방의회는 자치 활성화, 지역 인재의 발굴 등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질 기대주로 각광받았다. 실제 단체장의 전횡을 성실히 견제·감시하는 지방의원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지방의회에서 벌어진 각종 추문과 부정부패, 이권 개입 사건은 ‘지방의원=토호세력’이라는 불명예도 함께 떠안겼고, 국민들 사이에 자질 향상 요구도 확산되고 있다.
기초의원 사실상 정당 내천 이런 가운데 최근 국회와 여야 정치권, 행정자치부, 자치의회 등이 너나 없이 지방의회 활성화와 의원들의 자질 향상을 위한 다각적인 제도개혁 방안을 모색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2006년 지방선거 전에 제도 개선을 끝내자는 공감대 속에 제법 속도가 붙는 양상이다. 이른바 ‘지방의회 자질향상 프로젝트’는 △기초의회 정당공천 및 비례대표제 도입 △지방의원 유급제 및 정수 축소 △지방의회 권한 확대 등 크게 세 범주에 집중되고 있다. 국회와 정치권은 기초의원 정당공천과 비례대표제 도입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4월22일, 김원기 국회의장 직속 민간자문기구인 정치개혁협의회(정개협·위원장 김광웅)는 시·군·구 기초의원에 대해 정당공천을 허용하고, 의원 정수의 30%를 비례대표로 뽑자고 제안하면서 논쟁의 물꼬를 텄다.
정개협 간사인 백승헌 변호사는 “현재 기초의원들 대부분이 정당의 내천을 받고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면서 “이런 현실에서 정당공천 금지 조항은 사실상 정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된 기초의원들이 사적 이익에 따라 의정활동을 벌일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밑바탕인 생활정치 영역에까지 정당의 정치적 이해와 정파적 논리가 개입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로 기초의원 정당공천 금지 조항을 마련했지만, 오히려 기초의원들이 공복이나 정당의 대표 일꾼이 아닌 이익집단화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꼴이 된 만큼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여야 정치권은 기초의원 정당공천에 관한 한 환영 일색이다. 열린우리당 정치개혁특위 위원인 이화영 의원은 “정당 방임형인 현행 제도는 기초의회가 지역 유지나 토호들의 이익집단화될 가능성을 높여주는 반면, 자질 있는 젊은 인재들은 지방의회 진출을 기피하고 무시하는 경향까지 발생하고 있다”며 “정당간 긴장관계 형성, 젊은 유권자들의 관심 증가, 기초부터 성장하는 상향식 정치인 발굴이 가능한 정당공천제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정당의 정쟁이 기초의회까지 확산된다는 우려 때문에 신중했던 과거와는 확 달라진 태도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도 적극적이다. 정치권이 맘먹기에 따라 기초의원 정당공천제가 열릴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정개협이 정당공천제와 사실상 패키지로 도입을 제안한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는 이해가 엇갈린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비례대표제’ 도입에 찬성한다. 젊고 자질 있는 인재, 특히 여성들이 기초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유보적이다. 한나라당 정개특위 간사인 박형준 의원은 “현재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는 광역 시·도 의회에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것은 고려해볼 수 있지만, 의원이 몇명 되지도 않는 시·구·군 의회까지 비례대표를 도입하는 것은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유급제 실시 땐 의원정수 줄이자”
중앙 정치무대에서 지방의회에 대한 외과적 수술 문제를 논의하는 것에 대해 이해당사자인 지방의회 의원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전국시군자치구의회 의장협의회 회장인 이재창 강남구의회 의장은 “정당공천과 비례대표제에 대해 아직 정해진 방침이 없다”며 “오는 5월25일 234개 시·군·구 의회 의장들이 모여 이 문제를 공식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일한 대응 방식이 설정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지방의원 유급화, 지방의회의 자율권 확대, 의원 정수 축소 등 자신들의 실질적 이해관계가 달린 문제에 훨씬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한규 시군자치구의회 의장협의회 전문위원은 “기초의회 차원에서 현재 행정자치부와 지방의원에 대한 유급제 도입, 지방의회 운영 및 인사 자율권 확대 문제를 집중 협의하고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하는 지방분권이 이뤄지고, 교육 및 경찰 자치권이 지방정부로 넘어오면 집행기관이 커지는 만큼 감시자인 의회의 권한도 상대적으로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기초의회 의장단, 지방의회 의원들은 행정자치부와 중앙 정치권을 상대로 △기초 80일, 광역 120일로 돼 있는 지방의회 회기 자율조정 △의원 정수 13명 이상 의회에만 상임위를 설치하도록 한 규정 폐지 △자치단체 부단체장 수준의 연봉제로 유급화 △유급 의원 보좌관 채용 △자치단체가 갖고 있는 지방의회 인력에 대한 독자적 인사권 확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은평구의 한 구의원은 “지방의원들은 현재 회기에 참여한 날마다 기초의원 7만원, 광역의원 8만원을 주는 회기수당제 대신 구의회 의원은 연 3800만원, 시의회 의원 5200만원 정도의 연봉을 받는 완전유급제를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방의원들의 이런 요구에 국회 정개협과 여야 정치권은 좀 시큰둥하다. 정개협 간사인 백승헌 변호사는 “기초의원 정당공천 및 비례대표제는 무급제 유지를 전제로 마련한 것”이라며 “관련 법규에서 이미 지방의회를 무보수 명예직으로 규정한 ‘무급제’ 조항이 삭제된 만큼 유급화 여부는 자치단체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지방의원 유급제가 실시된다면 국민 부담이 느는 만큼 의원정수도 줄이는 게 당연하다”며 “정개협이 현재 정수를 늘리지 않는 한도 안에서 30% 비례대표제를 제안한 것도 사실상 30%의 지역구 기초의원 정수 감축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지방의원 전면 유급제는 정수 축소, 정당공천, 비례대표제 등 자질향상 방안과 연동된 ‘패키지 상품’이라는 태도다. 열린우리당 정개특위의 강기정 의원은 “현재 기초의원들은 시·군·구 등 기초 자치단체 감시라는 본 취지에서 벗어나 있고, 자기 개발도 부족하다”면서 “동별로 1명씩 뽑는 기초의원 선출지역을 광역화해 의원 정수를 줄이는 것 등을 전제로 유급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유급화는 신중하게, 정수 축소는 행정구역 개편 등과 맞물려야 한다는 쪽이다. 한나라당 정개특위 간사인 박형준 의원은 “현행 행정구역을 그대로 놔둔 채 지방의원 몇명 줄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면서 “행정구역을 전면적으로 개편할 경우 구의회 등 기초단위 의회를 아예 없앨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급제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지만 지방의원 보좌관제까지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중앙·지방 의원들, 원칙 공유에도 동상이몽
중앙 정치권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지방의회 활성화와 의원 자질 향상’ 원칙에는 동의하면서도 과녁은 서로 다른 동상이몽 상태인 것이다.
지방의회 의원들은 당장 정수 축소 등 ‘채찍’과 지방의원 유급제 및 지방의회 자율성 확대라는 ‘당근’을 놓고 고심하는 눈치다. 이재창 강남구의회 의장은 인구가 많은 강남구와 인구 1만명 이하의 군소 도시의 차이를 예로 들면서 “인구가 적은 군의회 등은 몇개 군을 묶는 등 많이 변화시키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며 변화를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서울시의 한 구의회 의원도 “패키지론에 완전히 찬성하지는 않지만, 정수를 축소해서라도 기초의회 유급화와 자율성 확대가 이뤄진다면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군자치구의회 의장협의회의 다른 관계자는 “지방의원들이 유급제에는 모두 찬성하면서도 인구, 면적, 행정수요 등 업무량, 재정상태 등에 따라 차별화를 요구하고, 정수 축소 문제도 도시와 농촌 의원이 이해가 다르다”며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기초의원 사실상 정당 내천 이런 가운데 최근 국회와 여야 정치권, 행정자치부, 자치의회 등이 너나 없이 지방의회 활성화와 의원들의 자질 향상을 위한 다각적인 제도개혁 방안을 모색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2006년 지방선거 전에 제도 개선을 끝내자는 공감대 속에 제법 속도가 붙는 양상이다. 이른바 ‘지방의회 자질향상 프로젝트’는 △기초의회 정당공천 및 비례대표제 도입 △지방의원 유급제 및 정수 축소 △지방의회 권한 확대 등 크게 세 범주에 집중되고 있다. 국회와 정치권은 기초의원 정당공천과 비례대표제 도입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4월22일, 김원기 국회의장 직속 민간자문기구인 정치개혁협의회(정개협·위원장 김광웅)는 시·군·구 기초의원에 대해 정당공천을 허용하고, 의원 정수의 30%를 비례대표로 뽑자고 제안하면서 논쟁의 물꼬를 텄다.

추문과 구태로 얼룩진 지방의회를 개선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주최로 열린 지방자치제도 개선 토론회. (사진/ 박승화 기자)

지방의회 의원들은회기 자율조정, 연봉제로 유급화, 독자적 인사권 등을 요구한다. 사진은 서울시 중구의회 제119회 임시회의 모습. (사진/ 서울시 중구의회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