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도시법에 홀로 찬성표 던진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에 별말 못하는 당 내 속사정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행정중심도시 특별법이 정치권에 기나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나라당은 법안 본회의 통과 이후 친박근혜 대표-반박근혜 진영이 맞붙어 당이 쪼개지느냐 마느냐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충청권에선 심대평 충남지사와 염홍철 대전시장이 각기 자민련과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정치인들의 이해관계 셈법도 작용했지만 행정도시법이 그만큼 민감한 국민적 관심사라는 이야기도 된다. 행정도시법 논쟁에 국민적 이해관계를 대변한 정책 논쟁의 큰 그림이 담긴 셈이다.
때늦은 대전 둔산안, 투표지침 마땅찮아
민주노동당에서도 균열의 단서는 있었다. 소속 의원 10명 가운데 조승수 의원(울산 북구)이 3월2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주·연기 12개 부처 이전’을 뼈대로 한 여야 합의안에 찬성 투표를 한 것이다. 조 의원은 여야 합의안에 반대한다는 당론을 이탈했다.
민주노동당은 소속 의원의 당론 준수 기율을 다른 당보다 훨씬 강조한다. 당헌·당규에도 당직·공직 겸직 금지 조항을 두어 당 우위를 명시하고 있다. 의원들이 개인적 욕심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당원의 뜻을 벗어날 가능성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 의원의 당론 이탈 행위는 일대 논쟁거리가 될 만도 하다. 그럼에도 외견상 민주노동당은 잠잠하다. 그 이유와 문제는 무엇일까? 민주노동당에는 어떤 일이 있는 것일까?
문제는 정부가 공주·연기에 신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지난해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 지도부는 △조건부 찬성론 △반대론 △‘우리 의제가 아니니 입장 표명 유보해야’ 등 세 갈래로 의견이 갈렸다. 그 결과 당시에는 “국가 균형발전은 찬성하지만 공주·연기 행정수도 건설은 반대한다”는 견해를 대외적으로 밝혔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이후 민주노동당은 ‘대안적 당론’을 마련하기 위한 나름의 여정에 들어간다. 당 정책위원회 주도로 6개월간 시·도당 순회 토론회 등을 거친 끝에 2월19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대전 둔산지구에 내치 담당 부처들을 이전’(대전 둔산 행정특별시안)하는 내용의 당론을 채택한 것이다.
그러나 당론 채택 과정이 당 전체적으로 뜨거운 관심사가 되진 못했다. ‘대전 둔산안’이 애초 1월 중앙위원회 안건으로 제출되었지만, 다른 안건에 밀려 논의조차 되지 못하다가 2월로 넘어간 예가 그것이다.
또 2월 중앙위원회가 열릴 당시에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간에 공주·연기에 행정도시를 만들되, 이전 대상 부처의 수를 놓고 절충이 진행 중이었다. 즉, 여야간 논의가 이미 다른 쪽으로 한창 달려가는 상황에서, ‘대전 둔산안’이라는 당론을 만들어냄으로써 ‘뒷북 치는’ 모양이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2월 말~3월 초 국회 후속대책특위가 ‘공주·연기 12개 부처 이전안’에 합의했음에도 당 최고위원회는 대응 방침을 거의 논의하지 않았다. 이어 의원단의 원내대책회의가 열려 ‘12개 부처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모았으나 그 이유는 “우리의 ‘대전 둔산안’과 다르므로…”였던 것으로 당직자들은 전했다.
어쨌든 당 최고위원회는 3월3일 전날 발생한 ‘조승수 당론 이탈 사건’을 논의한다. 그 결과 “반대 당론에 따라 투표하지 않은 의원에 대해서는 과정에 대한 해명을 듣고 이후 판단하기로 결정”(홍승하 대변인)했다.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서도 거론 안 해
3월7일에 열린 최고위원회에는 조 의원이 출석해 경과를 해명했다. 조 의원은 “행정도시법 문제가 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은 아니다”며 “지방분권을 위한 평소 소신에 따라 투표했다”고 해명했다. 이에 주대환 정책위의장은 “의원들이 당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것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또 김미희 최고위원은 “중앙위원회에서도 결정한 당론에 대해 의원단이 흔쾌히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한 것으로 당 관계자는 전했다. 이런 비판 의견을 토대로 최고위원회는 3월11일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를 다시 열어 ‘사건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3월11의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는 정작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행정도시법 통과 이후의 ‘정책적 문제’는 토론했지만 ‘조승수 신변’ 문제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추후에 문제를 종합적으로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홍승하 대변인은 밝혔다. 행정도시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이며 ‘당론 이탈’ 문제가 적어도 당 차원에선 중요한 쟁점임에도 어정쩡하게 봉합하는 인상을 남긴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기 어렵게 만든’ 그동안의 사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첫째로는 2월 말~3월 초 최고위원들은 급변하는 정국 상황에 맞는 새로운 투표지침을 논의하지 않았다. 따라서 의원단에 ‘6개월 걸려 만든 2월 중앙위원회 당론 고수’와 ‘이탈에 따른 문책’을 강하게 요구하기 어려웠던 셈이다. 중앙위는 재적 396명 규모로 ‘신속한 의사결정’이 원천적으로 어렵다.
두 번째로는 의원단 차원에서 강렬한 문제제기와 내부 행동통일 시도도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영세 원내대표는 3월7일 최고위원회에서 “반대투표 한다는 결정은 했지만 의원단이 (복잡한 현장 상황에서) 조직적으로 행동하기 어려웠던 점을 양해해달라”고 해명했다.
근본적으로는 당 활동가들의 관심사와 국민들의 눈높이 사이의 거리감도 생각해봐야 한다. 당론이 정국 흐름과 동떨어지고, ‘당론 이탈 사건’도 건강한 토론 쟁점이 되지 않는 이면에, 이런 거리감이 엿보이는 탓이다.
어쨌든 지금의 민주노동당에선 “당의 정체성과 직결된 사안은 아니니까…’라는 해명이 대충 통하고 있다. 그러나 당 밖의 대중적 차원에서도 먹힐지는 다소 궁금하다.

3월11일 최고위원-의원 회의에서도 조승수 의원(왼쪽에서 두번째)의 '나홀로 찬성'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한 민주노동당에서 의원 투표지침을 재빠르게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진/ 박승화 기자)

행정도시법 여야 합의안 국회 통과에서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제3의 후보지를 제안하는 당내의 '대전 둔산안'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 당론을 내세운 바 있다.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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