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김홍신 의원이 되돌아보는 2000년 국회와 새로운 정치문화의 싹
이제 새 천년 첫해도 저물어가고 있다. 4·13총선 결과로 구성된 2000년 16대 첫 국회는 새로운 정치문화 창출이라는 국민적 기대와는 달리 정치적 대립과 갈등으로 파행을 거듭하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또 의약분업 등을 계기로 사회 이익집단간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사회적 분란이 적지 않았지만 여야 정치권은 사회적 지도력을 잃은 채 이해집단의 눈치만 보는 무능력을 드러내 국민의 정치적 불신을 더욱 부채질했다. <한겨레21>은 김영환 의원(민주당)과 김홍신 의원(한나라당)의 대담을 통해 2000년 한해 정치권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정치문화의 싹을 모색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대담은 12월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김영환 의원실에서 이뤄졌다.
김홍신 의원=16대 국회 첫해를 마감하는 마당에 국민들의 정치불신이 여전하다는 점에 정치인으로서 깊은 자괴감과 책임감을 느낀다. 국민들의 정치불신은 16대 들어와서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국민들의 비판은 여야 구분이 없이 정치권 전체를 겨냥하고 있다. 마땅히 비판을 받아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매주 산행을 하는데 산행길에 시중 여론을 자주 듣는다. 사람들 모이는 자리가 있어서 얘기를 들어보면 “정치권이 여야로 갈려 싸움만 한다”,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데 당리당략만 앞세운다”고들 한다. 의약분업 때도 그렇고, 여야가 승강이 끝에 국회가 파행을 겪으면서 더욱 신랄하다. 사람들이 “당신은 빼고…”라고 하지만 그것은 내 면전에서 체면을 봐준 것일 뿐이다. 항상 변명할 말이 없었다. 이게 국민의 소리다.
의원들이여 기득권을 버리자
김영환 의원=김 의원의 말에 공감한다. 사실 16대 국회 개원 이후 국회가 파행운영의 연속이었다는 것은 부끄러운 사실이다. 여야 대치로 개원국회부터 늦어지지 않았느냐. 지난주 막을 내린 이번 정기국회만 해도 100일간의 회기중에 국회법 개정안과 검찰수뇌부 탄핵소추안 처리 등을 둘러싼 여야 대치로 45일간을 허송세월했다. 또 1963년 헌법 개정 뒤 회기 내 새해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한 첫 정기국회라는 오명도 남겼다. 법안 처리도 34건에 불과해 평균 151건을 처리한 14대 정기국회나 평균 114건을 처리한 15대 정기국회에 비해 극도로 낮은 효율성을 보였다. 정치권 전체가 당리당략에 휩쓸린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국민들의 정치권 불신은 정치권이 할 일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권이 모두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김홍신=당리당략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나를 포함한 의원들 개인의 의지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16대 국회는 과거보다 생산적 의정활동을 위한 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상시국회, 예결위 상설화, 소위원회 공개원칙 등 여러 제도들도 더 생산적이고 투명한 의정활동을 위해 16대 들어 처음 도입된 것 아니냐. 그러나 이런 제도들이 실현되지 못했다.
김영환=사실 이런 제도들은 마지못해 정치권에 도입된 것이다. 그러니까 정치권 내부의 합의가 덜 된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의지가 부족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천이 잘 안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김홍신=이 제도들이 정치권의 자각보다는 시민단체와 국민여론 등 외부압력이 크게 작용해 도입된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런 상태에서 실천하려고 해보니까 과거 관행으로 봐서 의원들의 기득권이 침해되는 부분도 있고, 또 타성에 젖은 의원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들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의원들 개개인이 기득권을 과감히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한꺼번에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버려야 한다. 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한 시민과 언론의 감시, 국민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제는 이런 목소리를 수용하지 않으면 정치권이 견뎌내기 어렵다. 가능하면 떠밀려서 하지 말고 스스로 수용해서 하는 태도가 아쉬운 대목이다.
국회 전체가 ‘무파행’선언을 해야
김영환=사실 16대 국회 들어와서 특별히 국민들로부터 욕을 더 먹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점은 있는 것 같다. 4·13총선에서 국민들이 정치권에 주문한 것은 여야가 싸우지 말고 나라를 위해 일을 열심히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 싸우게 된 것이다. 국회 파행은 거듭되고 여야 대치와 날치기, 강행저지 등이 남발하게 되자 국민들의 분노와 실망이 더욱 커진 게 아닌가 싶다. 또 하나는 국민들이 참 힘들어하는 시기다. 정치가 국민들의 짐을 덜어줬으면 하는데 짐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에서 크게 실망하는 것 같다.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이기 때문에 야당보다 더 크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국민이 생각하는 불만을 정치권이 모두 깨닫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도 개선이 안 되고 있다. 왜 개선이 안 되는지 그런 점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홍신=공감한다.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에 정치권이 부응하지 못했다.
김영환=국회 안에 평화유지군처럼 평화유지의원단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할 때 긴장완화하고 파국을 막을 완충세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 대담이 시작되기 전에 끝난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의원들의 5분발언을 안 하기로 했다. 5분 발언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언론문건 추가 폭로와 청와대 총기사건 공방이 예상됐는데 여야가 한발씩 물러선 것이다. 그러자 여야 가릴 것 없이 다들 잘됐다고 반겼다. 이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김홍신=김 의원께서 평화유지의원단 얘기를 했는데, 평화유지군도 힘있는 나라들이 참가해서 해야 한다. 힘이 없으면 오히려 분란을 일으킨다.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게 세속적인 권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민의 지지와 호응을 받으면 힘이 되는 것이다.
김영환=그렇기 때문에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의원들이 여야가 파행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나갈 필요가 있다. 어쨌든 사람의 문제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자기 위치에서 제목소리를 갖는 게 필요하다.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당을 어느 개인이 일사분란하게 못 끌고간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잘못된 판단에 저항하는 게 정치개혁의 출발점이다. 개인적으로도 정국이 파행으로 가곤 했던 것에 대해 사후약방문격이 아니라 미리 내 의사를 표현하고 노력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는 반성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던 상황논리도 있었다. 지금은 개혁과 급격한 남북관계 개선이 격동하는 시기다. 그러나 소수여당의 한계를 절실히 느낀다. 총선이 끝나고 국회가기가 싫었다. 너나없이 상생의 정치를 얘기했지만 그러려면 당리당략을 버려야 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되겠느냐. 최근 한나라당이 무조건 등원을 선언하는 등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것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이 됐을 것이다. 한나라당의 대권전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희망을 놓고 경쟁하는 정치가 됐으면 좋겠다.
낙천·낙선운동 좋은 효과 거둬
김홍신=나도 스스로 좌절을 많이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내가 정치를 계속하는 게 좋을지도 생각해본다. 나중에 늙어서 내가 정치했다는 게 잘한 일이었을까 후회하지나 않을지 하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서 글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그럼에도 열심히 해보자는 결심을 하는 것은 글을 써서 얘기하면 공감은 얻지만 실현이 안 된다. 그러나 정치는 실현된다. 그래서 지난번에 못한 것을 해보겠다는 욕심도 가져본다.
김영환=국민을 위해서 이제 국회전체가 무파행선언을 해야 한다. 국회정지를 무기로 하는 것은 끝내야 한다. 안에서 토론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파행에 엄정한 국민심판이 필요하다. 미국 대선과정에서 플로리다 의회가 대선 선거인단 선출하려 하는 것을 봤다. 그런데 민주당이 힘으로 막지 않고 공화당도 날치기 안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게 민주적 절차 아닌가.
김홍신=하나 더 얘기하면 이제 정치권이 파행의 근원을 제공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다행히 여당의 개혁적 의원들이 문제제기를 해서 다행이다. 그래서 생산적인 국회의 가능성도 있다. 당론을 거부하는 의원들이 보여줬다. 민주주의 틀에서 보면 당리당략을 버려야 한다. 무엇이 국민을 위한 정치냐만 정하면 파행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돌이켜보면 16대 국회가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새로운 정치의 싹이라고 할까, 희망의 싹이라고 할까 그런 것도 찾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김영환=두 가지 측면이 다 있는 것 같다. 희망의 씨앗도 볼 수 있었다. 이번 16대 국회는 낙선·낙천운동의 소나기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로 구성됐다. 그래서 15대 때보다 정치개혁에 대한 의욕이나 열정이 남달랐다. 그래서 386세대로 지칭되는 그룹들이 집단적으로 의견표출도 했다. 초선의원들의 과감한 의사표현이 여야 모두에서 다 활발하게 나타났다. 일단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새로운 활력이라고 할까, 국민요구를 반영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런 모습이 당개혁 요구로 나타나기도 하고 국회의 잘못된 관행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내가 소속된 과기정위에서는 무파행선언을 하기도 했다. 실행면에서 보면 아직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움직임이나 노력은 평가하고 싶다. 그런 노력들에서 희망을 본다. 그러나 총선결과 집권당이 더욱 소수로 전락한데다 공조가 흔들거리면서 국회법 강행처리, 검찰총장 탄핵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와 비정상적인 행태도 보였다. 크게 보아서 국회가 오랜 파행과 꼴불견의 대치를 반복하는 상태가 됐다. 상당히 부정적인,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이 양 측면이 다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앞의 개혁적 요인들이 안착됐으면 좋겠다는 게 바람이다.
김홍신=젊은 초선의원들의 새로운 움직임은 사실 시민운동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시민운동이 불신받는 정치권을 바꾸자 했던 것은 우리 역사에서 좋은 경험이다. 그 바람에 좋아진 게 많다. 시민들의 압박과 감시를 정치권이 부담으로 안게 됐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사실 정치개혁은 제도만으로 안 되고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여야 가리지 않고 낙천·낙선운동은 좋은 효과를 얻었다. 또 시민단체들의 감시활동 강화로 의원들의 의정활동 태도가 달라졌다는 점도 꼽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출석률이 높아졌다. 또 동료의원들이 정부를 상대로 일문일답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좋아졌고 굉장히 파고들어간다는 게 느껴진다. 초·재선의원들뿐 아니다. 중진의원들도 열심히 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느냐. 유권자 의식도 많이 달라진 것이다. 시민운동이 성장하면서 유권자들의 평가잣대가 과거와 달라지면서 의원들도 그것을 의식하게 된 것으로 본다.
긴 호흡으로 정치하자
김영환=그렇지만 아직 정치권이 불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더욱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사실 최근의 정치불신에는 정치권의 무능도 한몫 했던 것 같다. 그동안 구조조정이니, 전방위 개혁이니, 국민들을 피로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진행됐다. 예컨대 국민연금제 도입과 의약분업 도입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있었는데 이것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은 무능력, 무방비 그 자체였다. 국민은 답답해하는데 정치는 두손 놓고 있었던 셈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 금융권과 노동권의 구조조정, 농민시위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게 다 뒤엉켜 사회가 뒤숭숭한 상태에서 정치에 대한 실망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김홍신=개혁의 외연은 넓어졌는데 내용에서 부실하고 뒷받침이 안 됐다. 의약분업의 경우는 보건복지위 위원으로 직접 관여하기도 했는데, 기본적으로 정부의 준비가 부실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책임도 일부 있다. 특히 행정부의 주요 정책사항에 대해 정치권이 감시하고 독려해야 하는데 그 책임을 다 못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의회가 행정부를 감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이해해줘야 한다. 상시 감시체제를 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장조사도 한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행정부의 답변자료만으로는 감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김영환=16대 들어서도 폭로성 의정활동이 여전했던 것도 반성할 점이다. 이제 선정적인 폭로에서 벗어나서 정책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경기남부지역 100여개 학교를 대상으로 학교도서관 살리기 운동을 했는데, 공교육 정상화, 정보화, 새로운 교육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보람을 느겼다. 의원으로서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국민들도 비전과 프로그램을 가지고 긴 호흡으로 활동하는 정치인을 기대한다.
김홍신=공감한다. 과거 15대 국회를 정리하면서 16대 때는 대안없이 폭로성 질의를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정했다. 그러나 정책대안을 찾는 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언론의 보도태도다. 정책대안보다는 폭로성 기사를 선호하는 보도태도는 의원들에게 폭로성 선정주의에 빠지게 한다. 언론이 책임을 가져야 한다.
김영환=내년에는 여야간 희망의 정치를 기대한다. 다만 내년은 2002년 대선정국으로 가는 길목이어서 정치적으로 예각화할 수 있는 시기라는 점이 우려된다. 정치권에 있는 사람이 정치개혁을 위해 더욱 노력할 시기다. 앞으로 야당의원의 후원회에 자주 가려고 한다. 야야간 갈등 극복을 위해서는 자그마한 노력을 쌓아야 할 때다. 큰판의 대치 갈등을 막기 위해서도 인간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김홍신=좌절도 겪었지만 희망도 있었다. 희망의 싹이 있기 때문에 희망을 싹틔우는 작업에 동참하려는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동료나 남의 반성을 요구할 때는 스스로 먼저 반성해야 하는 것은 기본일 것이다.
정리=박병수 기자suh@hani.co.kr



(사진/성실한 의정활동으로 평가받고 있는 김홍신 의원(왼쪽)과 김영환 의원.그들은 여야간 반목과 대결로 점철된 정치풍토에서도 희망의 정치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