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물 다시 보기 | 송영길 의원]
386 대표선수 자격으로 열린우리당 당권도전하는 송영길 의원… 각 후보 진영서 연대의 손짓 보내는 이유는?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80년대 시대정신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생존을 책임지는 정당을 만들겠다.” 재선의 송영길 의원은 지난 2월24일 386 초·재선 의원의 대표주자로 선출직 상임중앙위원에 진출하겠다며 열린우리당 4월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당 안팎에서는 뒤늦게 뛰어든 송 의원을 좀 뜨악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386 의원들은 송영길 의원을 자신들의 대표주자로 추대하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오히려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면서 송 의원은 출마 선언과 동시에 4월2일 전당대회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3개월 옥살이에 7년동안 노동운동 투신
당장 출마 기자회견장에는 임종석·김영춘·우상호·이종걸·이인영·이화영·강기정 등 열린우리당의 대표적 386 의원 10여명이 참여해 “송 의원이 열린우리당 내부의 개혁적 분열주의를 극복하고, 책임 있고 능력 있는 개혁 정당으로 갈 수 있도록 할 적임자”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동안 소장파의 대표선수 자격을 놓고 송 의원과 경쟁해온 김영춘·이종걸·김부겸·임종석 의원이 모두 송 의원의 공동 선대본부장을 맡았다.
송 의원이 열린우리당 386의 대표선수로 떠오른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송 의원의 이력과 당 안팎에서 보여준 거침없는 소신 행보가 열린우리당 386 의원들의 현실적 고민과 적절히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30여명에 이르는 열린우리당 386 초·재선 의원들은 40여일 전부터 4월 전당대회에 대한 대응방법을 놓고 고민을 거듭해왔다. 이들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국민들이 ‘노무현 정부는 386 정권’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1980년대 학생운동 주역들이 여권 내부에 깊숙이 진입했지만, 지금까지 당 안에서 그런 평가나 기대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반성이 첫 번째였다. 둘째, 지난해 전당대회 때처럼 386 의원들이 특정 후보들의 밑에서 선거운동이나 하면서 안주할 경우 지난 1년여 동안 지속됐던 개혁 방향을 둘러싼 계파간 노선 갈등, 국회의원과 원외 인사들의 불필요한 감정 대립이 거듭되는 지도력 부재 상태가 재현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결국 열린우리당 40대 초·재선 의원들이 주축인 ‘새로운 모색’은 한달 전쯤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경험을 공유한 대표주자를 전당대회에 출마시키기로 합의했다. 386 의원들이 주축이 돼 원내와 원외, 각 계파 및 세대간 갈등을 치유하고 지도력을 보강하는 허리 구실을 하자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들은 누구를 대표선수로 뽑느냐는 문제에 봉착했다. 소장파 내부에서는 송영길·임종석·김영춘·이종걸 의원 등 재선 386 의원들이 한동안 각축을 벌였다. 그러나 임종석 의원이 “선배들과 경쟁이 부담스럽다”는 등의 이유로 불출마를 결심했고, 2월21일 김영춘·이종걸 의원도 “준비되고 의욕이 높은 송 의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한달여 만에 단일화에 합의했다.
송 의원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지 초·재선의 대표주자가 될 자격이 있다”면서 “다만 내가 상대적으로 당의 진로와 386 의원들의 역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왔고, 학생운동 등 우리 세대의 흐름 속에서 청산주의로 흐르지 않고 소신을 지켜온 점을 높이 평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이른바 ‘운동권 출신 변호사’다. 지난 1984년 연세대의 총학생회장이었던 그는 ‘민정당사 점거 농성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구속됐다. 3개월의 옥살이 뒤 송 의원은 인천의 대우자동차 배관용접공, 가구공장 노동자, 운수노조 노보제작부장, 전국택시노조연합 인천지부 사무국장 등으로 자리를 바꿔가며 7년 동안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80년대 총학생회장 출신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노동현장을 지킨 인물이었다.
91년 말 동구권 붕괴 이후 사법시험을 준비해 94년에 합격한 그는 변호사가 돼 다시 인천의 노동현장으로 내려와 인천개인택시조합 고문변호사 등으로 활동을 계속했다. 그는 1999년 6·3 인천 계양구 보궐선거 때 민주당 후보로 첫 정계 진출을 시도했지만 낙선했다. 1년 뒤인 2000년 16대 총선에서 민주당 국회의원이 된 그는 2001년 동교동 구파를 상대로 한 정풍운동에 앞장서 한동안 주목을 받기도 했다.
‘보안법 폐지 농성’에 쓴소리한 이유
그러나 송 의원이 본격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열린우리당 의원으로 재선에 성공하면서부터다. 그는 지난 한해 동안 청와대와 당 지도부는 물론 개혁을 주창하는 열린우리당의 재야파나 개혁당 그룹에까지 거침없이 비판의 칼날을 겨눴다. 총선 직후인 지난해 5월 노무현 대통령이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총리에 내정하자, 몇몇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수평적 당-청 관계”를 요구하며 김혁규 반대 여론을 주도했다. 그해 7월21일 임종석 의원 등과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을 발의하는 등 폐지운동을 주도한 그는 정작 9월5일 노 대통령이 “구시대 악법인 국가보안법은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하자 이를 비판했다. “당내 여러 이견을 어렵사리 조절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쪽으로 당론을 거의 수렴했고, 한나라당에서도 전향적 움직임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면서 일을 그르쳤다”는 것이었다.
그는 개혁 입법을 다루는 당 지도부의 무능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지난해 7월 미국을 방문한 신기남 당의장이 한-미 동맹을 지나치게 강조하자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도 지켜달라”면서 숭미라고 공박했다.
개혁을 주창하는 동료 의원에 대해서도 그는 거침없다.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송 의원은 지난 연말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치며 240시간 농성을 주도한 재야파와 개혁당 그룹에 대해 쓴소리를 퍼부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는 개혁을 주장했고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농성장에 있었고 누구는 타협했다’고 면피용, 알리바이용으로 떠드는 게 아니라 야당을 설득하고 국민들이 명분에 동의하도록 만들어 개혁 과제를 성사시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모두 무능했다.”
그의 이런 태도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너무 건방지다” “무분별한 비판이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송 의원은 자신의 이런 스타일을 “황소형 리더십”으로 규정하며 “과반 여당에 걸맞은 능력있 는 리더십을 갖추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생긴 것도 그렇고 이미지 정치로 반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남다른 콘텐츠와 옳은 것을 진지하게 끝까지 밀고 나가 인정받는 황소 같은 정치 스타일이 최선이다. 나를 무뚝뚝하고 건방지고,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달리 보면 꾸밈없고, 이해타산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천 없이 개혁만 떠들고, 지도 가게도 아닌데 로드맵만 자꾸 만들면서 길은 가지 않는 것 보다는 욕을 먹더라도 일관되게 옳은 주장을 펼치고 비판하는 게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정치이며 자산이다.”
문희상- 송영길 연대 시나리오?
열린우리당의 386 의원들도 송 의원의 이런 황소 같은 리더십과 일관성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이종걸 의원이 2월24일 “우리는 열린우리당을 창당함으로써 정치적 다수가 됐지만 아직 사회적으로는 소수에 머무르고 있는데, 송 후보가 사회적 다수가 되는 리더십을 가졌기 때문에 함께하기로 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김영춘 의원 역시 “송 의원은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여러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해결하는 중요한 접점에 있는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극찬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송 의원이 열린우리당에 능력 있는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동안 당 지부도에 속한 인사들은 예외 없이 개혁 지속과 능력 있는 일처리를 자신해왔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송 의원은 자신이 당의 허리를 보강하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주요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것은 원내 전략의 미숙함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보다는 훈련이 덜된 리더십으로 세대간, 계파간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면서 108명에 이르는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들의 개혁 동력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386 재선 의원들이 초선과 3선 이상의 중진들 사이에서 경험과 인식을 공유하는 가교로 허리 역할을 해낸다면 충분히 지도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송 의원은 이를 위해 여권내 각 계파들 사이에 가장 민감한 문제인 국가보안법 폐지 당론 관철 시기를 올 연말로 미루겠다고 밝혔다. “북핵 문제가 교착상태인 상황에서 국민 설득에 한계가 있다”며 “6자회담 진척 등 북핵 문제에 돌파구가 생기는 시점에서 직접 국민 설득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당권 도전에 나선 각 후보들은 386 대표선수인 송 의원의 득표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연대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문희상-송영길 연대설’ 등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나돌고 있다. 송 의원은 그러나 “당선을 위해 인위적으로 주고받는 방식의 세력간 연대를 시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후보자들간의 토론 과정에서 유사한 흐름들이 수렴되는 후보가 있을 경우 연대 문제는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386 대표선수 자격으로 열린우리당 당권도전하는 송영길 의원… 각 후보 진영서 연대의 손짓 보내는 이유는?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80년대 시대정신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생존을 책임지는 정당을 만들겠다.” 재선의 송영길 의원은 지난 2월24일 386 초·재선 의원의 대표주자로 선출직 상임중앙위원에 진출하겠다며 열린우리당 4월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당 안팎에서는 뒤늦게 뛰어든 송 의원을 좀 뜨악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386 의원들은 송영길 의원을 자신들의 대표주자로 추대하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오히려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면서 송 의원은 출마 선언과 동시에 4월2일 전당대회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3개월 옥살이에 7년동안 노동운동 투신
당장 출마 기자회견장에는 임종석·김영춘·우상호·이종걸·이인영·이화영·강기정 등 열린우리당의 대표적 386 의원 10여명이 참여해 “송 의원이 열린우리당 내부의 개혁적 분열주의를 극복하고, 책임 있고 능력 있는 개혁 정당으로 갈 수 있도록 할 적임자”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동안 소장파의 대표선수 자격을 놓고 송 의원과 경쟁해온 김영춘·이종걸·김부겸·임종석 의원이 모두 송 의원의 공동 선대본부장을 맡았다.

“나를 무뚝뚝하고 건방지고,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달리 보면 꾸밈없고, 이해타산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송 의원은 자신의 스타일을 ‘황소형 리더십’이라 규정했다. (사진/ 이용호 기자)

지난 2월24일 386 초·재선 의원들과 함께 열린우리당 4월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는 송영길 의원. 출마 선언과 동시에 4월2일 전당대회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사진/ 오마이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