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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계엄사령관’ 홍준표의 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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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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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전당대회로 새 지도부 선출”시사 … 대선전략 논쟁 불붙이며 당내 갈등의 과녁을 정조준하다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한나라당이 당 혁신 문제로 회오리 바람에 휩싸일 것 같다. 홍준표 의원(3선·서울 동대문을)을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위원회가 곧 구성돼 활동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는 당내에서 ‘반박근혜 강성 비주류’의 핵심으로 꼽혀왔다.

문제는 지난 2월3~4일 의원 연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선진화추진위원회(위원장 허태열) 활동 결과를 추인받으려 했다. 선진화추진위는 박 대표 중심으로 꾸려온 태스크포스였다.


“한나라의 ‘글레디에이터’ 만들자”

“당대표를 관리형 인사가 맡아야 대권주자들의 공정한 경쟁이 보장된다”고 주장하는 홍준표 의원. 그는 “누구를 끌어내려는 목적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사진/ 이용호 기자)

박 대표는 그 자리에서 당명 개정을 제안했다. 박 대표는 표결로 결정하자고도 했다. 그러나 반대 의견이 와글와글 쏟아지자 박 대표는 표결 제안을 거둬들였다. 대표의 리더십에는 상처가 났다. 이런 가운데 박세일 정책위의장이 ‘혁신위원회를 만들어 당명 개정 문제 등을 다루되 위원장은 대표가 맡는’ 대안을 제시해, 연찬회에선 일단 박수로 통과됐다.

그러던 끝에 박 대표는 2월15일 홍 의원에게 “혁신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홍 의원은 뜻밖의 제안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전권을 줄 수 있느냐”고 물어 응낙받은 뒤 이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박 대표의 한 참모는 “대표는 혁신위원장을 직접 맡을 생각이 원래 없었다”며 “홍 의원이 아이디어가 많다고 하니 일을 맡겨보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홍 의원도 당을 걱정하는 순수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며 “그렇다면 위원장을 누가 맡든지 혁신 연구의 결과물은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말들을 종합해볼 때 ‘홍준표 카드’는 연찬회를 통해 비주류의 세력이 확인되자 적극적으로 ‘비주류 끌어안기’를 꾀하는 선택으로 일단 해석된다. 대표 중심의 선진화추진위원회 방식이 벽에 부닥친 마당에 우회로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또 비주류 인사에게 칼자루를 맡기더라도 박 대표의 지도력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깔린 것 같다. 박 대표는 어차피 당내 인사 가운데선 차기 대선주자로 가장 유력한 상태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박 대표로서는 자신이 대선후보는 당연히 차지하되, 이명박 서울시장이나 손학규 경기지사 같은 라이벌들이 판을 깨면서 뛰쳐나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최선”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홍 의원은 ‘박근혜의 품’에 끌어안길 생각이 현재로선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는 2월24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이회창 총재 시절 뉴밀레니엄위원회 같은 혁신기구들이 번번이 실패한 것은 총재의 ‘장식품’이라는 한계 때문”이라며 “이번 혁신위원회는 대표의 자문기구가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혁신위원회가 아닌 혁명위원회의 계엄사령관이 된 심정으로 일하겠다”고도 말한다. 필요하면 박 대표와 주저 없이 대립각을 세우겠다는 기세다.

그는 혁신의 핵심 과제로 “박근혜 대표만이 아니라 이명박 서울시장·손학규 경기지사·강재섭 의원 등 ‘빅4’를 묶어서 로마 원형경기장에 넣은 뒤 2007년 7월까지 혼전을 벌이다가 살아남은 자를 ‘글래디에이터’로 만드는 것”을 꼽았다. 그는 “새천년민주당이 2002년 봄 국민경선이라는 ‘주말 드라마’로 흥행을 성공시킨 모델을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이를 위해 당헌·당규에 대권·당권 분리를 명시하고 그 시행 시기를 되도록 앞당기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는 “당대표를 관리형 인사가 맡아야 대권주자들의 공정한 경쟁이 보장된다”고 말했다. 그는 대권·당권 분리 시기를 묻자 “당헌·당규와 당명, 당의 이념 등 모든 틀이 바뀌는 마당에 그것을 내년(7월) 전당대회에 가서야 적용한다면 설득력이 있겠느냐”라며 ‘속전속결 혁신’을 주장했다.

박근혜쪽의 당혹감과 의구심

이런 말은 앞으로 몇달 뒤 의원총회나 운영위원회 의결로 혁신안이 통과되면 임시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 경우 박 대표는 내년 7월까지인 임기 중도에 하차하게 된다.

그러나 박 대표쪽은 당혹감과 의구심을 내비친다. 홍 의원이 그렇게까지 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분위기다. 한 참모는 “대권·당권 분리는 당연하다”며 “박 대표는 어차피 내년 7월 대표 경선에 출마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근혜는 대표에서 손을 떼야 한다? 국회 대표실에서 박근혜 대표와 함께 한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주자들. 왼쪽 두번째가 손학규 의원, 맨 오른쪽이 이명박 서울시장.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그는 “그러나 대권·당권 분리를 당헌에 명시해, 그것도 지금 당장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대선이 2년 이상 남은 시점에서 누구누구는 대권 도전 가능성이 있다고 ‘공민권’을 제한하면, 과연 당대표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이야기다. ‘박 대표 끌어내리기’에 대한 경계심이 묻어나는 반응인데, 이에 홍 의원은 일단 “누구를 끌어내려는 목적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이런 흐름을 보면 한나라당에선 뜻밖에도 빠른 시점에 대선전략 논쟁이 불붙을 것 같다. ‘홍준표 혁신호 선장’이 당내 갈등의 핵심 과녁을 정조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런 논쟁을 통해 분열이 심해질지, 아니면 관전자를 끌어모으는 흥행유발 효과가 클지 궁금해진다.


“특권정당 이미지론 정권탈환 불가능”

홍준표 의원은 한나라당의 문제점을 “부패정당, 수구정당, 특권정당, 무능정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에 덧씌워져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이런 이미지가 국민에게 각인된 상태에서 정권 탈환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홍 의원은 특권정당 이미지를 벗기 위해 ‘원정출산방지법’을 최근 국회에 발의했다. 그는 “한해 5천여명의 부유층 인사들이 미국 시민권을 얻고 병역을 면탈하려고 원정 출산을 감행한다”며 “원정 출산을 해도 병역 의무는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장치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편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고귀한 자의 의무) 기풍을 확립하고, 한나라당이 서민의 곁으로 가자는 생각에서다. 한나라당은 같은 맥락에서 최근 기부행위 활성화 관련법도 추진 중이다.

홍 의원은 여러 정책현안에서도 기존 당론과 달리 전향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열린우리당이 제안한 사립학교법 개정을 한나라당이 반대해온 것은 옳지 않다”며 “기업도 개방형 이사제로 가는 마당에 사립학교에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자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공정거래법이나 집단소송법 등 경제정책에서도 한나라당이 재계 입장만 옹호하던 태도를 벗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보안법, 과거사법과 관련해 국회 심의 지연 전략을 쓰는 당 지도부의 태도에도 그는 비판적이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그는 “가까스로 5·6공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마당에 박근혜 대표 한 사람 때문에 당이 3공 이미지로 회귀할 가능성을 우려”해온 편이다. 따라서 그는 “박 대표 스스로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어떻게 벗을 수 있나’라는 방법론을 물으면 “생각은 있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한다.

당내에선 최근 ‘호텔방 묵주 소동’에 연루된 정형근 의원 문제도 물밑 관심사다. 이와 관련해 그는 “아직까지 (소동의 실체가 무엇인지) 사안이 확정되지 않은 만큼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혁신위원들이 인선되면 의견을 두루 들어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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