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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궁색한 진보정당 일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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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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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 집권전략위원회 위원장 인선 끙끙 앓다 대표가 직접 맡는 해프닝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민주노동당이 집권전략위원회 구성 문제를 놓고 끙끙 앓고 있다. 집권전략위원회는 2012년 집권 목표와 그 중간 단계로 설정한 2007년 대선, 2006년 지방선거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기구다. 여느 기구 이상의 중요성이 담겼다는 데 당내 이견이 거의 없다. 이 문제는 김혜경 대표의 지난해 6월 당대회 경선 공약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상적인 스케줄대로라면 이미 가동해 중간보고서를 낼 법도 하다. 그러나 최고위원회에선 위원회 구성 문제가 8개월째 공식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던 끝에 김혜경 대표가 직접 위원장을 맡아, 3월 중·하순께 열릴 중앙위원회를 통해 구성하기로 최근 가닥이 잡히고 있다. 김 대표쪽의 한 당직자는 “대표가 직접 위원장을 맡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정파대립 부작용에 가위눌려

경위는 이렇다. 당지도부 인사 가운데선 최규엽 최고위원이 일찍부터 집권전략위원장 자리에 뜻을 두었다. 그는 전국연합 정책위원장, 국민승리21 집행위원장 등을 지내 나름대로 정책·전략 마인드를 갖췄다고 자부한다. 당지도부의 다수를 차지한 자주계열을 중심으로 대체적인 공감대도 형성됐다.

그러나 김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대신에 김 대표는 권영길 의원에게 맡아볼 뜻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의원이 고사하자 천영세 의원을 비롯한 다른 인사들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주대환 정책위의장, 김종철 최고위원, 이덕우 변호사를 비롯해 주로 평등계열 또는 친평등계열 인사들이 물밑에서 거론되다 가라앉길 되풀이했다. 그래도 영 적임자가 떠오르지 않자 김 대표가 직접 위원장을 맡는 ‘궁여지책’에 이른 것으로 당직자들은 설명했다.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의 모습. 김혜경 대표(맨 왼쪽)의 일처리 방식을 둘러싸고 말들이 나오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정효 기자)

김 대표쪽의 한 당직자는 “(최규엽 최고위원을 비롯해 그동안 거론된 인물들이 대부분) 당내 특정한 경향을 대변하는 사람”이라며 “집권전략위 활동이 후임 지도부(내년 6월 당대회 선출)로 이어지며 연속성을 가지려면 당내 여러 의견 그룹들에서 비토가 없는 사람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런 차원에서 대표가 직접 위원장을 맡아 무게를 싣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표가 이 기구의 위원장을 맡는 것은 여러모로 궁색해 보인다. 정책과 선거분석, 정치컨설팅 전문가들의 견해를 두루 수렴해 전략을 입안하는 ‘실무형 기획단’ 성격이 집권전략위원회에 강하기 때문이다. 대표는 말 그대로 당을 대표해 대외 일정에 참석하기도 바쁜 편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최근 당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 홍준표 의원을 기용했다.

‘보수정당’보다 효율성 떨어지네

좀더 근본적으로는 민주노동당의 활동 기풍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정파간 대립의 부작용에 지나치게 가위눌리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김혜경 위원장’은 ‘일 우선’보다는 ‘당내 싸움이 붙지 말아야’가 좀더 고려된 카드로 보인다.

정파와 노선 대립은 기성 정당, 진보 정당을 가릴 것 없이 정당정치의 보편적인 양상이다. 다만, 기성 정당들은 특정 깃발을 내걸고 지도부가 당선되면 임기 동안 그 노선에 따라 소신껏 활동하고 결과에 책임지도록 하는 기풍이 정립된 편이다. 그런 가운데 때로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강성 비주류’인 홍준표 의원을 중용하는 등의 ‘파격’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와 비교해 민주노동당의 ‘집권전략위원장 인선 문제’는 몇 가지 생각해볼 점들을 남긴다. ‘진보 정당’을 표방하면서도 기성 ‘보수 정당’보다 ‘속도전’과 ‘일의 효율성’이 떨어져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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