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 감투 담합’ 비판하며 총공세 펴는 열린우리당 386 의원들의 정치적 노림수는?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지난해 말 개혁입법 관철 실패에 따른 지도부 총사퇴 이후 이른바 ‘중진그룹’의 발언권과 역할이 급속히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던 열린우리당에서 급기야 ‘중진정치’ 논란이 벌어졌다. 특히 그동안 ‘정무적 문제에 관한 침묵 원칙’을 고수해온 노무현 대통령의 직계 386 의원들이 이 논쟁에 뒤늦게 불을 붙이고 나서면서, 그 정치적 의도와 노림수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7인회의’는 실제로 존재하는가
논란은 계파간 권력분배 성격을 띤 임채정 의장 중심의 집행위원회 출범과 원내대표를 정세균 의원 중심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중진 7인방’이 사실상 담합을 했다는 의혹에서 출발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386 모임인 의정연구센터 소속 의원들, 정청래 의원 등 국민참여연대 핵심인사, 장영달 의원 등 재야파가 이런 의혹을 제기하는 쪽이다. 이들의 문제제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문희상·이강래·배기선·임채정·원혜영·김한길·정세균 의원이 참여한 ‘7인회의’라는 중진 모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둘째, 7인회의가 지난 1월4일께 문희상 의원이 위원장인 국회 정보위원장실에 모여 당 임시지도부 구성, 원내대표 경선, 4월 당 의장 선거 등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해 사전에 합의한 뒤 다른 의원들이 그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구도로 몰아가면서 3김시대의 줄세우기 정치로 당을 퇴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내 386 의원들이 주도하는 ‘의정연구센터’모임 소속 이화영, 한병도, 서갑원(뒷줄 왼쪽부터)의원이 강신호 전경련 회장과 환담하고 있다. 당내 젊은 의원들은 중진선배들과 날을 세우고 있다. (사진/ 연합)
이번 논쟁은 재야파의 대표주자로 한때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고려하던 장영달 의원쪽에서 먼저 제기했다. 그는 지난 1월8일 “토끼몰이식 파당정치 음모 분쇄”를 역설했다. 그러나 당 안팎에서 별다른 세가 붙지 않자 당권 도전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실상 논란이 정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직계 386 의원 모임인 의정연구센터 소속 의원들이 이틀 뒤인 지난 1월15일부터 중진들의 비민주적 권한 행사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이 모임 간사인 이화영 의원은 이른바 ‘중진 기획’에 의한 사전 담합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면서 “장영달 의원 등이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대화를 통해 공론화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계파 의원들과의 연대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17일에는 의정연 소속 이상민 의원이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추대 형식의 원내대표 경선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당 지도부 중도 사퇴라는 사상 초유의 중대 사태에 대해 치열한 반성도 없이 원내대표는 누가, 당 의장은 누가라는 식으로 마치 감투 나누기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구태정치의 표본”이라며 “전체 의원들이 모여 당 운영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앞날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토론을 거쳐 합일된 방안을 마련한 이후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 구성에 대한 논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사실상 의정연 차원의 총공세에 나선 것이다.
의정연 소속 의원들이 뚜렷한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 뒤늦게 공세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을 두고 여당 안에서는 의정연의 당 장악 의도였다는 분석이 유력하게 나오고 있다. 당내 사정에 정통한 한 중진 의원은 “당이 총체적 위기상황인 만큼 중진들이 그 정도 논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의정연 고문인 김혁규 의원을 당 의장으로, 강봉균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만들어 자신들이 당을 장악해보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담합 의혹을 받고 있는 ‘중진 7인방’. 왼쪽부터 문희상, 이강래, 배기선, 임채정, 원혜영, 김한길, 정세균 의원.
이런 분석은 △원내대표로 추대된 정세균 의원이 의정연에서 밀고 있는 강봉균 의원이 자신과 같은 전북 출신이라며 수도권의 원혜영 의원을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으로 선정하고 △문희상 의원이 당권에 도전할 경우 당내 기반이 없는 김혁규 의원이 고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고 있다. 실제 의정연은 지난 5일 집행위원회 구성을 앞두고 임채정 의원에게 4월 전당대회 의장 출마를 권유했다. 또 이광재 의원 등이 문희상 의원을 상대로 강봉균 의원과 짝을 이뤄 원내대표에 출마할 것을 거듭 설득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를 거부했다. 특히 문 의원이 의정연의 원내대표 출마 제안을 거부한 뒤부터 이들이 ‘중진정치’ 논란을 제기한 것은 이런 분석에 힘을 더해주고 있다.
‘마땅한 인물’이 없는 복잡한 당내 현실
그러나 의정연 소속 의원들은 △지난 한해 동안 당정분리 원칙을 고수하며 열린우리당의 자생적이고 민주적인 리더십을 확보하려던 끈질긴 시도가 일부 중진들에 의해 퇴보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 △참여정부의 성패를 가늠할 중요한 시점에서 중진들의 담합에 의해 지도부가 구성될 경우 대야 협상력 약화와 당 분열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한 문제제기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의정연 간사인 이화영 의원은 첫째 논리를 펼쳤다. 이 의원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중진들끼리 앉아서 이건 너 해라, 저건 누구 해라 식으로 정한 뒤 자신들의 결정과 논리에 따라 맞추라고 한 것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대상화하는 것”이라며 “지난 1년 동안 열린우리당 안에서 다양한 논쟁과 시련을 거치며 시도해온 민주적 리더십 실험에 대한 명백한 후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한해를 뜨겁게 달궜던 여당의 역할, 노선, 과제 등에 대한 진지한 고뇌나 모색 없이 당권 경쟁과 대선을 겨냥한 계파간 기획에 의한 줄서기가 진행되고 있는 점은 심히 우려스럽다”면서 “과거 보스정치 시절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정무비서관 출신인 서갑원 의원은 두 번째 논리에 가깝다. 서 의원은 “올해는 당과 정부, 청와대가 일체를 이루고, 야당과의 관계에서도 명확한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는 리더가 나와야 할 아주 중요한 시점”이라며 “원내대표 경선 문제에 대해 논쟁도 없이 정리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경선을 통한 의원 전체 투표로 선출된 천정배 원내대표도 안팎에서 시달렸는데, 투표도 없이 추인된 원대대표가 무슨 정통성을 갖고 당을 힘있게 이끌겠냐”면서 “의원들이 우리에게 기회도 주지 않았는데 뭘 따르라고 하냐고 의문을 제기한다면 뭐라 말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당 의장-원내대표’로 이원화된 투톱 체제는 오히려 여당의 발목을 잡고 불협화음을 증폭하는 부작용을 노출시켰다. 이부영 전 의장(왼쪽)과 천정배 전 원내대표. (사진/ 한겨레 황석주 기자)
여당의 50대 젊은 리더십을 주도했던 김근태 복지부 장관, 정동영 통일부 장관, 이해찬 국무총리가 모두 내각에 포진하고, 천정배 원내대표와 신기남 의장마저 낙마한 뒤 발생한 권력 공백을 채울 만한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하는 열린우리당의 복잡한 현실을 반영한 고민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문제제기 의도가 무엇이든 일단 권력 공백 상태에 빠진 열린우리당 안에서 일부 중진들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는 추세를 어느 정도 차단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정보위 사무실에서 열린 7인회의를 통한 담합 의혹을 받고 있는 중진 의원들은 역풍을 막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임채정 의장의 한 핵심 측근은 “그런 모임이 있었지만, 어떤 중진들이 언제 어디서 모였는지 알지 못하고 임 의장도 사후에 결과만 통보받은 것으로 안다”면서 “하지만 임 의장은 집행위 의장 수락은 본인의 결단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진들이 모여 지도부 문제를 의논한 것은 사실이지만, 담합에 따른 의장직 수락은 아니라는 것이다.
장영달 · 김원웅 의원의 으름장
원내대표 추대 의혹을 받고 있는 정세균 의원도 “당이 워낙 위기상황이라 정보위원장실에 모여 비대위 문제를 논의한 것은 사실이지만 원내대표나 4월 전당대회 당 의장 선출에 관한 얘기는 전혀 없었다”면서 “비대위 논의도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배기선 의원은 개인적 친분에 따라 나에게 양보했고, 김한길 의원은 천정배 원내대표가 중도 하차한 자리에 나서는 걸 부담스러워했다”면서 “이런 양보 정신을 높이 사야지 과거식 담합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진모임에서 배제된 장영달·김원웅 의원 등이 4월 전당대회에서 이 문제를 주요 화두로 제기하겠다는 태도를 보여 파문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원웅 의원은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인사들이 오히려 새 지도부 구성에 관해 밀실 논의 구조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몇몇 실세들이 당의 주요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던 구태 정치의 오염으로부터 당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임채정 의장은 과도기적 관리자로 남아야지 그 이상의 역할을 할 경우 밀실야합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엄정 중립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동안 숨을 고르던 장영달 의원도 “소수 중진 의원들이 잘못된 계파를 형성해나가는 것은 당 발전에도 이롭지 못하고, 집권여당도 결국 중대한 국민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미리 각본을 짜는 계파는 뒤에 있고, (의원들은) 내용도 모르고 줄서기하는 3김식 정치 관행을 반드시 분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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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톱체제’불협화음 개선되나 ‘중진정치’ 논란과 함께 올 한해 열린우리당을 괴롭힐 주제는 당 의장과 원내대표 사이의 불협화음 해소 문제다. 열린우리당은 지난해 ‘원내 정책정당’을 지향하며 원내대표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당헌·당규를 마련했다. 원내대표 통제 아래 당 정책위를 배치하고 대야 협상과 원내 문제에 관한 당무까지 모두 원내대표 권한으로 명시한 것이다. 과거 원내대표와 정책위를 사실상 통괄해온 당 의장의 권한은 당무 전반에 대한 조정·감독, 중앙위원회 등 각종 회의 주재, 원외정책위원 지명 등으로 축소됐다.
그러나 ‘당 의장-원내대표’로 이원화된 ‘투톱 체제’는 오히려 여당의 발목을 잡고 불협화음을 증폭하는 부작용을 극명하게 노출시켰다. 특히 여권의 핵심 개혁과제 중 하나인 국가보안법 폐지 당론 관철을 놓고 이부영 당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가 사사건건 갈등하면서 협상력만 약화시켰다. 특히 원내 업무에서 배제된 이 의장과 일부 중진 의원들이 별도의 대야 협상팀을 꾸려 한나라당과 대체입법안 협상을 벌이고, 이를 수용하도록 압박하는 등 사실상 원내대표의 권한을 침해했다.
열린우리당은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지난 1월14일 유기홍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당무개선위원회에서 개선책을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각자의 정치적 입지에 따라 이견이 노출되는 등 난관이 예상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 유력한 정세균 의원은 “충분한 고민 없이 고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원내 정책정당으로 가기로 했다면 당헌·당규에 따라 진득하게 운용하면서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권한 축소는 올바른 해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무개선위원회의 한 핵심 인사도 “당 의장과 원내대표의 권한은 정확히 구분돼 있는데, 당 의장이 과거 관습대로 일거리와 권한이 많아 보이는 원내대표의 영역에 과도하게 개입해온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앞으로 234개 시군구별 당원협의회가 활성화될 것인 만큼 당 의장은 바닥을 챙겨 당을 활성화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당 의장 권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4월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을 준비 중인 한 중진 의원은 “지난 1년 동안 천정배-이부영 체제를 가동해본 결과 원내 중심 정당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 정치 관행과 현실 여건에서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 확인됐다”면서 “당 의장 등 당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무 당직자들 역시 당권 강화를 희망하는 기류가 강하다. 핵심 당직자는 “야당과의 협상력 강화는 물론, 당 운영의 일사불란함 등을 감한할 때 당권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한해 동안 거듭된 ‘투톱 체제’ 개선 논란이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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