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차기주자급들이 토해내는 ‘4년 중임 정·부통령제’… 이회창의 강력한 반대 뛰어넘을까
“개헌론은 현재 휴화산이다. 활화산으로 변화하면 엄청난 폭발력을 내보일 것이다. 그러나 때와 조건을 만나지 못하면 사화산으로 그냥 끝날 수 있다.”(민주당 관계자)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 개헌론이 물밑 탐색을 거듭하고 있다. 주로 여야 차기주자급들이 현행 5년 단임의 대통령제를 4년 중임의 정·부통령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간단없이 쏟아내며 개헌론의 공론화를 서두르고 있다. 정치권이 개헌론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개헌론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정계개편 등 정치권에 미칠 폭발성 때문이다.
이인제 최고위원의 줄기찬 주장
그동안 개헌론은 주로 여권에서 제기해 왔다. 특히 이인제 최고위원의 경우 틈만 나면 4년 중임의 정·부통령제를 주장해 왔다. “5년 임기의 대통령 단임제를 포함한 현행 헌법을 사회발전에 맞춰 수정·발전시켜야 한다. 정치환경이 현행헌법을 만들었던 87년과 다르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5년과 4년으로 다른 데서 발생하는 문제도 고쳐야 한다. 4년 중임제 및 정·부통령 러닝메이트제 도입을 위해 개헌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최고위원의 지론이다. 최근에는 측근 의원들까지 개헌론을 공개적으로 들고 나오는 등 조직적으로 개헌을 공론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11월13일 정기국회에서는 이 최고위원의 측근으로 알려진 원유철 의원이 대정부질문을 앞두고 사전에 배포한 원고에서 “대통령 중임제로 바꿔 국가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문석호 의원도 “동서화합과 후계자 양성을 위해 정·부통령제 개헌을 해야 한다”고 밝혀, “이 최고위원의 의중이 실린 개헌론이 아니냐”는 말들이 당 안팎에서 나돌았다. 8월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당선된 뒤 활발한 행보를 해온 김중권 최고위원도 개헌론에 합류했다. 김 최고위원은 10월17일 전·현직 언론인과 정·재계 인사들의 모임인 ‘좋은 이웃 토론모임’ 초청강연에서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는 지역대결 구도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행 헌법에 따라 이미 3차례 대선을 치름으로써 1인 장기집권에 대한 우려도 사라졌으므로 지역감정 극복을 위해 제도적 개선을 검토해야 한다”며 ‘정·부통령의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실 이들의 개헌 주장은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 상당히 공감을 받고 있다. 각종 조사는 여야를 막론하고 개헌의 필요성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원 63%가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개헌 찬성 의원들 가운데 90.6%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앞서 5월 <문화일보>의 16대 당선자 의식조사에서도 당선자의 64.3%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개헌선 확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그러나 개헌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사실 여권은 정·부통령제 개헌이 이뤄지면 이회창 총재의 대권보루인 영남권의 배타적 영향력을 허물어뜨릴 방법이 마련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개헌론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다. ‘호남 대통령-영남 부통령’ 또는 ‘영남 대통령-호남 부통령’ 등의 카드를 내세울 경우 영남권에서도 표를 얻어 정권재창출이 더 손쉬워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를 테면 영남권의 김중권 최고위원과 노무현 장관, 충청권의 이인제 최고위원, 호남권의 한화갑 최고위원, 수도권의 김근태·정대철 최고위원 등 차기주자들의 지역별 연대에 따른 다양한 정·부통령 짝짓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밑그림을 크게 그릴 경우 민주당 차원을 넘어 무소속의 정몽준 의원을 비롯해 박근혜 부총재, 김덕룡 의원 등 한나라당 비주류까지 짝짓기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등 광범위한 연합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여권으로서는 큰 힘 안 들이고 사실상 정계개편을 통해 강력한 ‘반이회창 연대’를 실현하게 돼 정권재창출의 확실한 기반을 마련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여권의 셈법인 셈이다.
그러나 여권 내에서도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개헌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이 우세하다. 우선 이회창 총재 등 한나라당쪽의 반대가 명백한 상황에서는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한 개헌선 확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회창 총재가 현재 구도라면 ‘대권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마당에 그 구도를 흐트러뜨리려는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결코 손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또 개헌론이 제기되면 자민련쪽에서는 내각제 개헌 약속을 지키라고 들고 나올 텐데 그러면 그 혼란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이런 사정 때문에 개헌을 하려면 상당히 무리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김대중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못한다고 봐야 한다. 더욱이 당장 경제난 극복이 발등에 떨어진 불인데다 그 밖에도 할 일이 태산인 상황 아니냐.”(민주당 관계자)
또 개헌이 늘 정권에 악용돼 왔다는 역사적 경험 때문에 국민들의 태도가 부정적이라는 점도 개헌의 현실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실제 지난 7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코리아리서치가 성인 5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7%가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4년 중임 대통령제로의 개헌’에 대해 반대했으며 찬성은 41%에 그쳤다. 이인제 최고위원쪽 관계자는 “개헌을 강력하게 주장하려 해도 주위에서 오해를 많이 하는 게 부담이다. 그동안 역사적으로 개헌이 당리당략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로 지금 권력구조에 문제는 없는지, 있다면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면밀히 논의해야 할 때다. 그렇지만 논의의 생산성을 위해 학계, 시민단체 등 정치권 밖에서 먼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직적 추진세력이 없다
개헌 추진세력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개헌론이 공론화하기 어려운 배경으로 꼽힌다. 실제 지금까지 개헌론은 개인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인제 최고위원이 측근 의원들을 동원하고 있으나 이들의 힘만으로 개헌을 추진하기에는 벅차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이인제 최고위원이나 김중권 최고위원 등은 대권 후보로서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통령제 개헌은 매력적인 카드다. 그러나 개헌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른 의원들이나 세력들의 뒷받침을 받고 있지 못하지 않느냐. 내가 아는 한 여권 차원에서는 아직 조직적으로 개헌을 추진하기 위한 어떤 움직임도 없다”고 말했다.
반면 개헌론에 대한 이회창 총재 등 한나라당쪽의 태도는 명백하다. 개헌론에 대해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던 이 총재는 최근 잇달아 ‘개헌논쟁=여권의 정계개편 음모’라며 명백한 반대입장을 밝혔다. 12월4일 <문화일보> 인터뷰에서는 “개헌을 계기로 정계개편을 논의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며, 지금 이 시점에서 개헌 논의는 전혀 적절치 않다”고 밝혔고, 사흘 뒤 전북 익산 원광대 특강에서는 “지금 제기되고 있는 개헌론은 다분히 개헌을 빌미로 한 정계개편을 염두에 둔 것이다. 정략과 당략을 위한 개헌론에 반대한다”고 못박았다. 어휘가 조금 다를 뿐 이 총재 발언의 핵심은 위기에 몰린 여권이 개헌론을 정계개편의 지렛대로 악용할 소지가 있는 만큼 현재로서는 개헌논의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인 것이다.
한때 이회창 총재쪽은 이 총재의 대권 승리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 따라 4년 중임제 개헌에 대해서는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당선만 되면 8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지난해 제2창당방안 마련을 책임진 뉴밀레니엄위원회(위원장 김덕룡 의원)에서 중임제 개헌을 제기했을 때 주류의 상당수가 이에 공감하면서도 자칫 개헌론을 제기할 경우 당시 잠복하고 있는 내각제 개헌 논란에 불길을 댕길 것을 우려해 공식화를 유보했다. 그러나 이 총재는 지난 4월18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단임제는 레임덕 현상 등 부작용을 낳기 때문에 중임제 개헌을 논의해야 할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말했고, 당시 이 총재 몇몇 측근들이 “정·부통령제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중임제까지 배제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밝히면서 이런 복잡한 속내가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총재의 발언 직후 정치권과 학계에서 개헌론의 불이 지펴질 듯한 분위기가 감지되자 이 총재쪽은 개헌론 자체에 대해 극도로 발언을 자제해 왔다. 개헌논쟁이 본격화할 경우 여권이 개헌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정·부통령제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나라 비주류 심상치 않다
최근의 한나라당 주류의 분위기는 여권이 개헌론을 꺼낼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에 상당히 느긋한 편이다. 극심한 경제난과 여권 내부의 균열상 등을 감안할 때 여권이 강력한 개헌 드라이브를 거는 일은 없을 것으로 자신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치판에서 이 총재는 하나의 ‘종속변수’였다. 올해 중반 남북관계가 급진전하면서 솔직히 이를 매개로 여권이 개헌론으로 판을 뒤집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러나 이제 남북관계의 효과는 반감되고 경제는 어려워졌고 여권이 내홍에 휩싸이면서 여권의 정국주도권은 상실됐다. 이 총재가 ‘상수’가 된 것이다. 이제 이 총재가 최악의 실수로 개헌의 빌미를 주지 않는 이상 개헌론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희박하다.”(이 총재의 측근 인사)
그렇다면 개헌론의 불씨는 정치권에서 완전히 사그러진 것으로 봐야 할까. 아직 2002년 대선까지는 많은 변수들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당장 개헌론이 공론화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민주당도 “아직 변수가 남아 있다”며 개헌론의 불씨를 되살릴 기회를 엿보고 있다. 특히 김덕룡 의원과 박근혜 부총재 등 비주류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점을 들어 한나라당 내부에서 변수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박근혜 부총재는 11월24일 대구에서 연 기자간담회를 통해 “비전을 갖고 일하려는 지도자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줄 수 있지 않느냐. 5년 단임제는 레임덕 등의 문제가 있고 대통령이 일하는 데 시간적인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며 중임제 개헌론에 호의적인 반응을 내보였다. 특히 관심을 모으는 것은 김덕룡 의원의 움직임이다. 일찌감치 개헌론을 주창했던 김 의원은 지난 11월23일 익산 원광대 특강에서 “김 대통령의 당적이탈과 4년 중임제, 정·부통령제 개헌을 통해 자연스럽게 정계개편이 이루어지면 지역대결이 아닌 정책대결로 건강한 정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개헌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등 발언수위를 한층 높였다. 김 의원은 또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사심을 버리고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한다면, 지역감정 해소를 바라는 야당 내 개혁세력들도 동참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한나라당 내 일부인사의 동반탈당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사화산이냐 활화산이냐
실제 한나라당 주류쪽에서도 김 의원 등 비주류의 개헌론이 여권의 개헌 욕구와 맞물리는 상황에 대해 신경을 쓰는 눈치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쪽도 개헌론에 찬성하는 일부 의원들이 있는 만큼 여권은 자꾸 외각에서 군불때기를 시도하며 분위기를 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개헌을 통한 정계개편의 욕심을 완전히 버리지 않은 여권의 개헌추진세력이 뜻하지 않은 돌출변수로 김 의원 등 한나라당 비주류와 결합할 경우 개헌론이 급격히 힘을 얻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밀 잠행을 거듭해온 개헌론이 과연 2002년 대선 길목에서 새로운 변수들을 만나 ‘활화산’으로 거듭날지, 아니면 ‘사화산’으로 스러지고 말지 지켜볼 일이다.
박병수 기자suh@hani.co.kr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사진/민주당의 김중권, 이인제 최고위원. 두 사람 모두 '4년 중임 정·부통령제'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개헌론은 주로 여권에서 제기해 왔다. 특히 이인제 최고위원의 경우 틈만 나면 4년 중임의 정·부통령제를 주장해 왔다. “5년 임기의 대통령 단임제를 포함한 현행 헌법을 사회발전에 맞춰 수정·발전시켜야 한다. 정치환경이 현행헌법을 만들었던 87년과 다르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5년과 4년으로 다른 데서 발생하는 문제도 고쳐야 한다. 4년 중임제 및 정·부통령 러닝메이트제 도입을 위해 개헌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최고위원의 지론이다. 최근에는 측근 의원들까지 개헌론을 공개적으로 들고 나오는 등 조직적으로 개헌을 공론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11월13일 정기국회에서는 이 최고위원의 측근으로 알려진 원유철 의원이 대정부질문을 앞두고 사전에 배포한 원고에서 “대통령 중임제로 바꿔 국가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문석호 의원도 “동서화합과 후계자 양성을 위해 정·부통령제 개헌을 해야 한다”고 밝혀, “이 최고위원의 의중이 실린 개헌론이 아니냐”는 말들이 당 안팎에서 나돌았다. 8월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당선된 뒤 활발한 행보를 해온 김중권 최고위원도 개헌론에 합류했다. 김 최고위원은 10월17일 전·현직 언론인과 정·재계 인사들의 모임인 ‘좋은 이웃 토론모임’ 초청강연에서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는 지역대결 구도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행 헌법에 따라 이미 3차례 대선을 치름으로써 1인 장기집권에 대한 우려도 사라졌으므로 지역감정 극복을 위해 제도적 개선을 검토해야 한다”며 ‘정·부통령의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실 이들의 개헌 주장은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 상당히 공감을 받고 있다. 각종 조사는 여야를 막론하고 개헌의 필요성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원 63%가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개헌 찬성 의원들 가운데 90.6%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앞서 5월 <문화일보>의 16대 당선자 의식조사에서도 당선자의 64.3%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개헌선 확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사진/원광대 특강에 참석한 이회창 총재. “정략적인 개헌론에 반대한다”고 못박았다)

(사진/여권 내에서 개헌론이 강력하게 제기될 경우 자민련은 '내각제 약속'을 들고 나오며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인터뷰/ 원유철 의원 ![]() |
인터뷰/ 맹형규 의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