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파 포용하는 인간적 모습’으로 변신한 이회창 총재, 대선 앞으로 돌격
“총재님이 정치입문 4년여 만에 드디어 정치가 뭔지 아신 것 같다.”(한나라당 수도권 한 재선의원) “정치는 많은 것 가운데 옳은 것 하나를 가리는 게 아니라 많은 부족한 것들을 모아서 옳은 쪽으로 가도록 하는 것인데, 총재는 지금까지 자기 잘난 맛에 사느라 그걸 몰랐다. 이제야 깨닫기 시작했다.”(이회창 총재의 한 측근 인사)
작은 비판에도 얼굴색이 변했는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 대한 보편화된 대중적 이미지는 ‘대쪽’과 ‘원칙’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이 총재를 말할 때면 ‘편협’ ‘귀족주의’ 등 부정적 단어가 자주 따라붙는다. 원칙을 내세우며 비판세력을 배척하고, 제손에 ‘흙’묻히기 싫어하는 이 총재의 습성이 현실정치에 어울리지 않다는 비판이다. 특히 자신을 겨냥한 작은 비판에도 얼굴색이 변하는 그의 모습에 측근들조차 “대권을 생각하는 사람의 표정이 저래서야…”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그런데 최근 이 총재가 이런 한계를 스스로 벗어던지고 대중정치인으로 ‘자기 변신’에 나섰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일까. 측근들은 일단 이 총재가 비주류 등 당 안팎의 비판세력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고 입을 모은다. 11월29일 오후 5시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이 총재는 비주류의 좌장격인 김덕룡 의원 후원회 행사장에 나타나 찬사를 잔뜩 늘어놨다. “김 의원은 우리당의 주춧돌을 놓은 ‘파운딩파더’다. 나는 늦게 우리 당에 들어와 (김 의원이) 각고의 노력으로 가꾼 정당에서 생활했다. 김 의원이 우리당을 지켰고, 김 의원이 있어서 가시밭길을 헤쳤다.” 이 총재의 이 발언에 몇몇 여야의원들은 “창이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라고 웅성거렸다. 비판세력을 ‘냉대’하고 ‘배척’했던 이 총재가 가장 적극적인 ‘반이회창 노선’을 견지한 김 의원을 높이 추켜세우는 게 뜻밖이라는 분위기였다. 더욱이 김 의원은 바로 전날인 28일에도 이 총재를 강하게 비판한 터였다. “이 총재가 먼저 국회등원을 결정해 언론에 발표하고, 나중에 의원총회를 하는 것 등이 모두 한나라당이 ‘이 총재 1인의 지배당’이라는 증거다. 당 내부도 민주화하지 못하는 정당에 국민들이 어떻게 민주정치를 기대하겠느냐.” 이 총재로서는 분개할 만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후원회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 총재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김 의원을 토닥이려 애썼다. 이 총재의 이런 변화는 자신에게 반기를 든 박근혜 부총재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총재는 지난 11월21일에는 박 부총재를 신라호텔 중식당에서 만났다. 박 부총재는 지난 9월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을 “국민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하며, 대구집회에 불참한 뒤 이 총재와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런데 이 총재는 최근 박 부총재를 끌어안기 위해 몸을 던졌다. 11월12일 “음악회에 함께 가자”며 화해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다시 만남을 요청해 결국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박 부총재는 이날도 “총재가 당을 독선적으로 운영하는 게 아니냐”,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등의 공격적 질문을 내뱉었다. 그러나 이 총재는 “박 전 대통령이 민족의 역량을 집중시킨 것은 잘된 일이다. 앞으로도 자주 만나 이야기하자”며 박 부총재를 달랬다. 이들뿐이 아니다. “이회창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인간도 아니다” 등의 극언을 퍼부으며 ‘반창’의 기치를 치켜올린 YS와의 화해에 잔뜩 공을 들이고 있다. “여야 생존게임 이젠 안 해도 된다” 측근들은 이 총재의 이런 전방위 포용전략을 반기면서 ‘협량’과 ‘비타협’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색하고 ‘따뜻하고 아량있는 대쪽’이라는 새 이미지가 창출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솔직히 이 총재는 자신이 설정한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 멀리하고 내쳤다. 때문에 비주류는 물론 언론과 국민에게까지 속좁은 인물로 각인됐다. 이제 이 총재가 ‘법대로’ 이미지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반대파를 포용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전략적 변신을 시작했다.”(한나라당 한 고위당직자) 이 총재는 대여관계 등 정국운영에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미지를 구축하려 애쓰고 있다. 이 총재는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김종필 총리지명자에 대한 국회동의안 처리 저지를 시작으로 지난 2년 동안 여당의 정국운영 프로그램을 사사건건 저지했다. 때문에 “발목잡는 정치인”이란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이 총재는 지난 11월24일 ‘조건없는 등원’결정 이후 ‘국가경영자로서의 이미지 극대화’에 주력하고 있다. 당시 한나라당 내 상당수 의원들이 “여당이 ‘배째라’ 하고 나오면 야당은 그냥 들어가야 하는 거냐”며 반발했지만, 이 총재는 “경제와 민생을 챙겨야 한다”며 등원론을 밀어붙였다. 더욱이 초재선 강경파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자 오전에 예정됐던 의총을 오후로 미룬 뒤 기자회견을 먼저하는 등 여론몰이까지 시도했다. 지난 9월 김덕룡, 박근혜 의원 등 비주류 4인방이 등원론을 제기할 때 강경투쟁론에 손을 들었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이 총재는 그뒤에도 한국전력 민영화를 내용으로 한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법’ 제정에 찬성하는 등 큰틀에서 여권의 국정 운영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등원결정 이틀 뒤인 11월26일부터는 시장이나 노숙자쉼터를 방문해 고충을 청취하고, 무역협회 회장단과 금융시장 불안과 환율상승에 따른 수출대책을 논하는 등 민생 및 경제 챙기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이런 변화가 맹형규, 윤여준 의원 등 당내 온건파의 조언과 현실에 대한 이 총재의 고민과 결단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말한다. “이 총재는 11월23일 오전 김대중 대통령과 전화통화 뒤 ‘대통령이 아무 대책도 없더라. 야당이 밖에서 계속 흔들면 나라가 거덜난다. 안 되겠다’며 상당히 고심했다. 그래서 등원을 진언했다.”(윤여준 의원) 때마침 맹형규 의원을 비롯한 당 기획위원회에서도 “눈앞의 이익이 없더라도 국민을 위해 대승적으로 결단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국익뿐 아니라 국가 경영지도자로서 이 총재 이미지 구축에도 도움이 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몇 차례 올렸다. 그렇다면 그동안 당 일각에서 계속된 변화요구에 쭈뼛거리며 결단을 미뤄왔던 이 총재가 최근 급속한 이미지 변신에 나선 속뜻은 무엇일까. “이 총재는 그동안 여당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위기 속에서 야당으로 살아남기 위한 혈투를 벌여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여당은 국정운영 능력을 상실했고 경제위기까지 겹쳤다. 이 총재는 여당이 더이상 야당을 죽일 힘이 없다고 판단했다. 여야간 생존게임에 몰두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이 총재의 다른 한 측근의원) 야당의 생존위협이 적어진 만큼 이제 차기대권을 염두에 두고 ‘선이 굵은’ 국가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최대한 돋보일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다. 비주류 거물들은 여전히 시큰둥
이 총재가 처한 현실적 딜레마도 이미지 변신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이 총재가 나이가 젊냐, 인터넷을 잘해 젊은층에 선풍적인 바람을 불러올 수 있겠냐. 대선 때면 68살이다. 여차하면 대권을 못 먹을 수도 있는데 뭔들 못하겠냐. 예전에는 반대세력을 멀리하고 배척하며 상종을 안 했지만 이제는 반대세력까지 모아 대선전에 적절히 재배치해야 한다. 총재도 이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이 총재의 한 최측근 인사) 여당을 궁지로 몰아세우기는 했지만 DJ와 이 총재 지지율 동반하락, 이 총재에 대한 적극적 지지가 아닌 대안부재론이 계속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당의 실책에 따른 반사이익을 향유하는 차원을 넘어선 이회창만의 독특한 그 무엇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총재의 최근 변신이 얼마나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단 이 총재의 ‘포용전략’에 대해 비주류 거물들은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덕룡, 박근혜 의원 등은 아직도 “이 총재 1인의 독선적 당 운영”을 비판하며 “정·부통령제 개헌론”을 주장하는 등 ‘기회’만 엿보고 있다. 박 부총재는 이 총재의 딜레마인 ‘박정희 기념관’에 대한 명확한 태도 표명까지 요구하고 있다. 또 당내 일부 초재선의원들은 무조건 등원을 “총재의 독단적 결정”이라고 불평하고 있다.
김용갑 의원의 ‘조선노동당 2중대 발언 파문’ 이후 불거진 당내 이념갈등도 큰 변수다. 이 총재가 이미지 변신을 극대화해 대권까지 거머쥐려면 현재 당의 몸집을 유지해야 하는데 균열이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김원웅, 안영근, 서상섭, 김홍신 의원 등이 이 총재의 뜻과 당론을 거스르며 민주당 의원들과 국가보안법 폐지법안을 낸 것은 당 안팎의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을 잘 드러내준 사건이다. 이 총재가 과거 몇 차례 유사한 변신을 시도하다 당내 강경파들의 반발과 대권을 향한 자신의 입지강화를 위해 퇴각한 경험이 있어 당 일각에서는 최근 변신에 대해 냉소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해 4월 ‘제2창당’을 선언한 뒤 뉴밀레니엄위원회(위원장 김덕룡 의원)를 설치해 다양한 당 쇄신과 방안을 마련했지만 별로 수용된 것이 없다. 한 비주류 중진은 “이 총재가 최근 외연을 넓히고 포용력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과연 그 속마음까지 변할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권을 향한 일시적인 외양의 변화가 아니라,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통 큰 지도자란 이미지 구축에까지 이를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사진/서울 구로구 오류시장 상인들을 찾은 이회창 총재. 민생 및 경제 챙기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일까. 측근들은 일단 이 총재가 비주류 등 당 안팎의 비판세력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고 입을 모은다. 11월29일 오후 5시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이 총재는 비주류의 좌장격인 김덕룡 의원 후원회 행사장에 나타나 찬사를 잔뜩 늘어놨다. “김 의원은 우리당의 주춧돌을 놓은 ‘파운딩파더’다. 나는 늦게 우리 당에 들어와 (김 의원이) 각고의 노력으로 가꾼 정당에서 생활했다. 김 의원이 우리당을 지켰고, 김 의원이 있어서 가시밭길을 헤쳤다.” 이 총재의 이 발언에 몇몇 여야의원들은 “창이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라고 웅성거렸다. 비판세력을 ‘냉대’하고 ‘배척’했던 이 총재가 가장 적극적인 ‘반이회창 노선’을 견지한 김 의원을 높이 추켜세우는 게 뜻밖이라는 분위기였다. 더욱이 김 의원은 바로 전날인 28일에도 이 총재를 강하게 비판한 터였다. “이 총재가 먼저 국회등원을 결정해 언론에 발표하고, 나중에 의원총회를 하는 것 등이 모두 한나라당이 ‘이 총재 1인의 지배당’이라는 증거다. 당 내부도 민주화하지 못하는 정당에 국민들이 어떻게 민주정치를 기대하겠느냐.” 이 총재로서는 분개할 만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후원회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 총재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김 의원을 토닥이려 애썼다. 이 총재의 이런 변화는 자신에게 반기를 든 박근혜 부총재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총재는 지난 11월21일에는 박 부총재를 신라호텔 중식당에서 만났다. 박 부총재는 지난 9월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을 “국민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하며, 대구집회에 불참한 뒤 이 총재와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런데 이 총재는 최근 박 부총재를 끌어안기 위해 몸을 던졌다. 11월12일 “음악회에 함께 가자”며 화해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다시 만남을 요청해 결국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박 부총재는 이날도 “총재가 당을 독선적으로 운영하는 게 아니냐”,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등의 공격적 질문을 내뱉었다. 그러나 이 총재는 “박 전 대통령이 민족의 역량을 집중시킨 것은 잘된 일이다. 앞으로도 자주 만나 이야기하자”며 박 부총재를 달랬다. 이들뿐이 아니다. “이회창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인간도 아니다” 등의 극언을 퍼부으며 ‘반창’의 기치를 치켜올린 YS와의 화해에 잔뜩 공을 들이고 있다. “여야 생존게임 이젠 안 해도 된다” 측근들은 이 총재의 이런 전방위 포용전략을 반기면서 ‘협량’과 ‘비타협’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색하고 ‘따뜻하고 아량있는 대쪽’이라는 새 이미지가 창출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솔직히 이 총재는 자신이 설정한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 멀리하고 내쳤다. 때문에 비주류는 물론 언론과 국민에게까지 속좁은 인물로 각인됐다. 이제 이 총재가 ‘법대로’ 이미지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반대파를 포용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전략적 변신을 시작했다.”(한나라당 한 고위당직자) 이 총재는 대여관계 등 정국운영에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미지를 구축하려 애쓰고 있다. 이 총재는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김종필 총리지명자에 대한 국회동의안 처리 저지를 시작으로 지난 2년 동안 여당의 정국운영 프로그램을 사사건건 저지했다. 때문에 “발목잡는 정치인”이란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이 총재는 지난 11월24일 ‘조건없는 등원’결정 이후 ‘국가경영자로서의 이미지 극대화’에 주력하고 있다. 당시 한나라당 내 상당수 의원들이 “여당이 ‘배째라’ 하고 나오면 야당은 그냥 들어가야 하는 거냐”며 반발했지만, 이 총재는 “경제와 민생을 챙겨야 한다”며 등원론을 밀어붙였다. 더욱이 초재선 강경파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자 오전에 예정됐던 의총을 오후로 미룬 뒤 기자회견을 먼저하는 등 여론몰이까지 시도했다. 지난 9월 김덕룡, 박근혜 의원 등 비주류 4인방이 등원론을 제기할 때 강경투쟁론에 손을 들었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이 총재는 그뒤에도 한국전력 민영화를 내용으로 한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법’ 제정에 찬성하는 등 큰틀에서 여권의 국정 운영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등원결정 이틀 뒤인 11월26일부터는 시장이나 노숙자쉼터를 방문해 고충을 청취하고, 무역협회 회장단과 금융시장 불안과 환율상승에 따른 수출대책을 논하는 등 민생 및 경제 챙기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이런 변화가 맹형규, 윤여준 의원 등 당내 온건파의 조언과 현실에 대한 이 총재의 고민과 결단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말한다. “이 총재는 11월23일 오전 김대중 대통령과 전화통화 뒤 ‘대통령이 아무 대책도 없더라. 야당이 밖에서 계속 흔들면 나라가 거덜난다. 안 되겠다’며 상당히 고심했다. 그래서 등원을 진언했다.”(윤여준 의원) 때마침 맹형규 의원을 비롯한 당 기획위원회에서도 “눈앞의 이익이 없더라도 국민을 위해 대승적으로 결단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국익뿐 아니라 국가 경영지도자로서 이 총재 이미지 구축에도 도움이 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몇 차례 올렸다. 그렇다면 그동안 당 일각에서 계속된 변화요구에 쭈뼛거리며 결단을 미뤄왔던 이 총재가 최근 급속한 이미지 변신에 나선 속뜻은 무엇일까. “이 총재는 그동안 여당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위기 속에서 야당으로 살아남기 위한 혈투를 벌여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여당은 국정운영 능력을 상실했고 경제위기까지 겹쳤다. 이 총재는 여당이 더이상 야당을 죽일 힘이 없다고 판단했다. 여야간 생존게임에 몰두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이 총재의 다른 한 측근의원) 야당의 생존위협이 적어진 만큼 이제 차기대권을 염두에 두고 ‘선이 굵은’ 국가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최대한 돋보일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다. 비주류 거물들은 여전히 시큰둥

(사진/이회창 총재는 지난 11월24일 ‘조건없는 등원’ 결정 이후 ‘국가경영자로서의 이미지 극대화’에 주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