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방의 반란은 최대의 정치적 직격탄… 권위 실추 만회할 카드는 있는가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권위가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다. 도전자는 자신의 휘하에 있던 자민련 소속 소장파 의원들. 그 계기는 지난주 국회를 떠들썩하게 한 ‘탄핵소추 정국’이었다.
11월17일 밤 11시10분께 자민련 의원총회가 열린 국회내 자민련 원내총무실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한나라당이 발의한 검찰총장과 대검차장에 대한 탄핵소추안 처리문제 때문이었다. 김종호 총재대행 등 지도부는 탄핵소추안의 상정 자체를 무산시키기 위해 본회의에 불참하기로 한 민주당과 행동을 함께할 것을 요구했다. 김 대행은 “본회의 불참은 김 명예총재의 뜻이다. 후유증에 대한 검토없이 투표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어려운 때인 만큼 당을 분열시킬 일을 하지 말자”고 못박았다.
그러나 강창희 의원 등은 “무슨 소리냐, 자민련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서는 우리의 길을 걸어야 한다. 표결불참이라니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 때때로 사무실 밖으로 고성이 흘러나왔다. 그리곤 40분 뒤, 문이 벌컥 열리더니 강창희, 정우택, 정진석, 이재선, 이완구, 김학원 의원 등 6명이 지도부의 만류를 뒤로 하고 뛰쳐나왔다. “더이상 당지도부를 따를 수 없다.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하겠다.” 이들은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김 명예총재의 절대권위가 한순간에 거부당하는 순간이었다.
특유의 간접화법, 더이상 통하지 않아
김 명예총재는 탄핵소추안 처리문제와 관련해 상정 자체를 거부하는 민주당과 공조하라는 뜻을 다양한 방법으로 소속의원들에게 전달했다. 15일 밤에는 민주당이 본회의를 단독으로 열겠다고 했을 때 자민련 의원들이 모두 참석을 거부했지만 JP는 홀로 남아 본회의장을 지키며 ‘민주당과의 원내 공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날 낮 탄핵안 가결을 주장하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비등했던 의총 분위기에 대한 ‘무언의 시위’로 해석될 만한 대목이었다. 앞서 14일 본회의장에서는 이한동 총리에게 ‘소신껏 대처하십시요. 총리 뒤에는 우리가 있습니다’라는 쪽지를 전달하며 ‘공동정권 유지’의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특히 17일에는 그의 대리인격인 김종호 총재대행이 의원오찬 자리를 소집해 “오늘 김 명예총재가 ‘당이 단결하면서 때를 기다리자’고 당부했다”며 적극적으로 표결불참을 종용했다. 당관계자는 “탄핵소추안 처리와 관련해 김 명예총재가 공개적으로 가타부타를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그는 평소에도 직접 나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안 한다. 언제나 간접화법으로 넌지시 자신의 메시지를 당에 전달했고 또 관철시켜 왔다. 그게 JP의 스타일이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JP가 자신의 속마음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소속의원들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실제 대부분 소속의원들은 JP의 뜻이 표결불참쪽이었던 것으로 해석했다. 정우택 의원은 “JP의 뜻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명백했다. 김 대행이 그의 뜻을 왜곡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당을 위해서는 JP의 뜻을 따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조희욱 의원도 “16일 김 명예총재 방에서 소속의원 몇몇이 샌드위치로 점심을 함께했는데 JP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말은 안 했지만 당지도부의 표결불참 방침에 따를 것을 지시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번 ‘6인방의 반란’이 JP의 권위에 직격탄을 날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탄핵소추안 처리과정에서 누구보다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은은 JP다”, “당 장악력이 떨어진 JP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민련의 한 관계자는 “이미 자민련은 뇌사상태에 빠진 당이었다. ‘민주당과의 공조’라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희망도 전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넘겨왔다. 그런데도 김 명예총재는 아무런 비전도 보여주지 않은 채 이른바 ‘기다림과 침묵의 정치’를 해왔다. 이번 ‘6인방의 반란’은 더이상 이런 JP의 지도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사표현이다”라고 말했다. “책임은 지지 않으며 권한만 행사한다”
사실 자민련 내에서 확고부동해 보이던 김 명예총재의 권위는 4·13총선 패배 이후 여기저기서 누수현상을 보여왔다. 17명의 당선자를 내는 데 그쳐 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하면서 당의 위상 추락에 따른 불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소속의원들이 JP를 직접 겨냥하는 행동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당시 사무총장이던 강창희 의원이 김 명예총재가 이한동 총리취임에 동의한 것에 반발해 사표를 제출했고, 같은 달 열린 당선자 연찬회에서는 정우택 등 일부 의원들이 “50명이 넘는 의원을 보유했던 우리가 17명의 당선자만 내는 참패를 당했는데 누군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총선책임론을 본격 제기했다. 또 9월29일 당무회의에서는 강창희·이재선 의원 등 일부 강경파들이 “명예총재-총재-총재대행으로 구성된 기형적인 지도체제로는 더이상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며 전당대회 소집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한영수 부총재는 “김 명예총재는 1%의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100%의 권한을 행사하려 한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이번 ‘6인방의 반란’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동안 반발은 당내 문제였다. 또 위태로울 때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JP의 권위로 넘겨왔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직접 행동에 나섰고 의정활동이라는 공개적 자리였다. 게다가 그 대상이 민주·자민련의 공조라는 당의 입지와 관련된 것 아니냐. 사실상 JP의 지도력에 대한 첫 경고장인 셈이다.”(자민련의 한 재선의원). “이번에 JP가 자신의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은 간접화법을 좋아하는 스타일 때문만은 아니다. 직접 나서도 ‘반란’을 진압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공연히 나섰다가 공개적으로 망신당할 이유가 없다는 현실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니까 뒤에 숨어서 지도부만 다그친 것 아니겠느냐. 그만큼 당내기류가 심상치 않았다.”(자민련의 핵심 당직자)
그렇다면 상처입은 김 명예총재의 권위는 이대로 추락하고 마는 것일까. 자민련 관계자들은 기회는 있다고 말한다. 그가 은둔과 간접화법의 구태의연한 행보를 벗어던지고 직접 전면에 나서 정치력을 발휘할 때 JP 자신과 당이 모두 살길이 열릴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자민련은 충청도를 기반으로 한다. 충청권에서는 아직 JP를 대신할 만한 맹주가 없다. 표결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JP를 거부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에 끌려다니기보다 우리 당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충정이었다. 최선의 카드는 JP가 전면에 나서 당을 이끄는 것이다.”(정진석 의원) “이번 사태는 JP 특유의 리모트컨트롤 정치에 대한 파산선고다. 더이상 대리인을 내세워 배후에서 원격조정하는 방식으로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 이번에 이런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당 고위관계자)
위기는 지속돼도 급격한 와해는 없을 듯
문제는 그가 전면에 나서려 하겠느냐는 것이다. 당관계자는 “김 명예총재는 절대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봤다. “그는 스스로 나서 난국을 돌파하고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아등바등거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저 바다 한가운데 낚시대를 드리운 채 무엇인가 물기만을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이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정치생명을 유지해온 사람이 교섭단체도 안 돼 전망이 불투명한 당을 직접 떠맡고 나서겠느냐.” 다른 소장파 의원도 “JP는 목표를 정하고 강력하게 추진하는 YS나 DJ와는 다르다. 오로지 끝까지 기다리다가 기회가 오면 절묘한 운신으로 몸값을 높이는 사람”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치적 변화의 시기에 몸값을 높일 결정적 순간을 기다릴 뿐이지 지금 당장 당을 위해 팔을 걷어붙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기다림의 정치’를 고집할 경우 이미 허점을 보인 권위의 실추는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JP의 딜레마다. “김 명예총재는 2002년 대선정국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충청권을 무시할 대권주자가 있겠느냐. JP는 그때 다시 한번 크게 베팅하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때는 이미 그의 힘이 빠져 기회를 활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자민련 소장파 의원) JP가 이른바 ‘결정적인 순간’에 베팅을 하려면 자민련 소속의원 17명의 적극적 지지와 결속이 전제돼야 하지만, 그때까지 일사분란한 체제가 유지되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한 핵심당직자는 “김 명예총재가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자민련의 앞날은 외부요인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과 이회창 한나라 총재 등 여야의 유력 대권주자들이 모두 충청권 출신이 아니냐. 대선정국에서 이들이 자민련 의원들을 상대로 각개격파에 나설 때 더이상 전망이 없는 JP 곁에 남아 있을 사람들이 있겠느냐”.
그렇다고 당장 김 명예총재의 권위가 급격하게 와해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강경파 의원들로서도 당장은 김 명예총재 이후의 대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완구 정진석 등 일부 의원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항명으로 비쳐지자 “김 대행이 자신의 희망사항을 JP의 뜻으로 강요했다”고 화살을 김 대행에게 돌린 것도 이런 까닭이다. “강경파 의원들도 딜레마다. JP의 그늘에서 벗어나 충청권에서 정치적으로 살아남을지 아직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테면 JP를 버리자니 아직은 아닌 것 같고, 무작정 따르자니 앞날이 불투명하고, 딱 부러진 대안이 없는 것이다. 김용환·강창희 의원 등이 거론되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부담이 있는 것 같다.”(자민련의 다른 관계자)
이빨 빠진 JP, 최후의 선택은?
그렇지만 강경파들의 공세가 수그러들 전망은 별로 없다. 자민련 내부에서는 정기국회가 끝난 뒤 강경파들 의원들이 전당대회 소집 요구로 본격적인 포문을 열 것으로 보고 있다. 전당대회의 소집 여부는 이미 정기국회를 앞두고 ‘전당대회 불가피론’을 피력하는 강경파 의원과 ‘전당대회 무용론’을 주장하는 당지도부 사이에 한 차례 논란을 빚었었다.
전당대회 소집 여부가 쟁점이 된 것은 전당대회가 열리면 자연스럽게 총재경선 등 지도부 구성 문제가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당대회가 소집될 경우 총재직 경선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김 명예총재가 경선에 나서겠느냐. 그렇다고 경선 총재체제는 곧 JP의 2선 후퇴를 의미하는 것일 텐데, JP가 그런 상황을 방치하겠느냐. 어느 쪽이든 JP가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지금 그의 입장에서는 둘 다 곤란한 것 아니냐”(당 고위관계자) 한 소장파 의원은 “당헌에 2년마다 열리도록 돼 있는 전당대회가 97년 이후 3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전당대회를 열어 지도체제를 정비해 난국을 돌파해야 한다. JP가 전면에 나서 당을 이끌든지, 아니면 새로운 능력있는 인물을 내세워 자민련의 살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40년 정치역정을 헤쳐온 원동력인 ‘기다림의 미학’으로는 더이상 실추된 권위를 만회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JP. 그의 선택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박병수 기자suh@hani.co.kr

(사진/김종필 명예총재의 권위가 '6인방의 반란'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이한동 총리와 자리를 함께한 김 명예총재)
김 명예총재는 탄핵소추안 처리문제와 관련해 상정 자체를 거부하는 민주당과 공조하라는 뜻을 다양한 방법으로 소속의원들에게 전달했다. 15일 밤에는 민주당이 본회의를 단독으로 열겠다고 했을 때 자민련 의원들이 모두 참석을 거부했지만 JP는 홀로 남아 본회의장을 지키며 ‘민주당과의 원내 공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날 낮 탄핵안 가결을 주장하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비등했던 의총 분위기에 대한 ‘무언의 시위’로 해석될 만한 대목이었다. 앞서 14일 본회의장에서는 이한동 총리에게 ‘소신껏 대처하십시요. 총리 뒤에는 우리가 있습니다’라는 쪽지를 전달하며 ‘공동정권 유지’의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특히 17일에는 그의 대리인격인 김종호 총재대행이 의원오찬 자리를 소집해 “오늘 김 명예총재가 ‘당이 단결하면서 때를 기다리자’고 당부했다”며 적극적으로 표결불참을 종용했다. 당관계자는 “탄핵소추안 처리와 관련해 김 명예총재가 공개적으로 가타부타를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그는 평소에도 직접 나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안 한다. 언제나 간접화법으로 넌지시 자신의 메시지를 당에 전달했고 또 관철시켜 왔다. 그게 JP의 스타일이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JP가 자신의 속마음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소속의원들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실제 대부분 소속의원들은 JP의 뜻이 표결불참쪽이었던 것으로 해석했다. 정우택 의원은 “JP의 뜻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명백했다. 김 대행이 그의 뜻을 왜곡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당을 위해서는 JP의 뜻을 따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조희욱 의원도 “16일 김 명예총재 방에서 소속의원 몇몇이 샌드위치로 점심을 함께했는데 JP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말은 안 했지만 당지도부의 표결불참 방침에 따를 것을 지시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번 ‘6인방의 반란’이 JP의 권위에 직격탄을 날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탄핵소추안 처리과정에서 누구보다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은은 JP다”, “당 장악력이 떨어진 JP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민련의 한 관계자는 “이미 자민련은 뇌사상태에 빠진 당이었다. ‘민주당과의 공조’라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희망도 전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넘겨왔다. 그런데도 김 명예총재는 아무런 비전도 보여주지 않은 채 이른바 ‘기다림과 침묵의 정치’를 해왔다. 이번 ‘6인방의 반란’은 더이상 이런 JP의 지도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사표현이다”라고 말했다. “책임은 지지 않으며 권한만 행사한다”

(사진/김종필 명예총재는 민주당과의 공조를 바랐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소속의원들의 이탈에 대해 논의하는 자민련의원들)

(사진/골프장에서 세월을 기다린다?JP는 지난 18일에도 전남의 한 골프장에서 광주지역 유지들과 골프회동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