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총수의 탄핵소추 정국을 지켜본 한 현직 소장검사의 우울한 고백
<한겨레21>은 검찰수뇌부에 대한 탄핵소추안 상정이 불발로 끝난 뒤 현직 소장검사 한명을 직접 만났다. 검찰총장 탄핵소추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일선검사들이 느낀 소회를 솔직하게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려고 여야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는다는 평을 듣는 검사를 골랐다. 출신지역도 고려했다. 11월19일 밤늦게 기자를 만난 그는 풀이 죽어 있었다. 평소 쾌활하며 낙천적인 평소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조심스럽게 현재 평검사들의 분위기부터 물어보았다.
자민련 의원들 탓할 이유는 없어
“뭐랄까, 자조적인 분위기에다 정치권에 대한 피해의식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울화가 치밀어 못살겠다는 사람도 있고, 자포자기하는 분위기도 있고…. 논리에 닿지 않는 검찰 비판 기사가 나와도 이제는 ‘기자들도 먹고살기 위해 쓰는데 냅둬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립니다.” 이번 탄핵정국 과정에서 검찰 고위간부들은 체면이 구겨지는 것을 무릅쓰고 국회까지 달려가서 협조를 요청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낀 소감을 물어보았다. 특히 검찰쪽 부탁을 외면한 자민련에 대해 분노하는 검사들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손사래를 치며)자민련 의원들을 욕할 이유가 뭐가 있나요. 찬성표를 던진 것도 아닌데. 독자적 세력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지난 총선 때 민주당 누구는 다니면서 자민련은 곧 없어질 거라고 떠들고 다녔다는데 내가 자민련이라도 그랬겠습니다. 그리고 총수가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될지도 모른다는데 당연히 달려가야지요. 솔직히 언론사들 보면 사장이 검찰에 불려오거나 구속된다고 하면 출입기자들이 검사방에서 아예 삽니다. 봐달라고 애걸복걸하면서. 총장이 죽거나 말거나 신경 안 쓰는 게 더 문제 아닌가요. 조직의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으로 봐주었으면 해요. 사실 지금까지 총장 탄핵한다는 국회 발의가 5번 있었지만 이번만 빼놓고는 모두 쇼였습니다. 검찰이 나설 필요가 없었지요. 항상 여당쪽 수가 많았거든요. 야당도 꼭 목을 떼려고 덤볐다기보다는 정치공세 성격이 짙었어요. 그래서 검사가 과연 탄핵대상이 되는지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엔 달랐어요. 이회창씨는 진검승부를 걸어온 셈입니다. (검찰총장이) 진짜로 날아갈 수도 있었어요. 검찰로서는 탄핵정국 초기부터 강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어요.” 여당 편들기 수사는 원천적으로 불가능 그의 목소리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한나라당의 선거사범 편파수사 주장에 대해 모든 검사들이 정말로 떳떳하다고 말할까. 양심의 가책은 조금이라도 없는 것일까. “현행 선거법은 당선자와 당선권에 드는 후보자들이 어길 수밖에 없게 돼 있어요. 그래서 걸린 자와 걸리지 않은 자가 느끼는 편파에 대한 느낌은 엄청나게 다를 겁니다. 낙선한 원외위원장들이 아주 강경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느 신문칼럼이 비유했듯이 국회의원 선거는 아프리카 영양 ‘누’가 건기 때 물이 풍부한 곳으로 이동하려고 큰 강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강가로 몰려든 누떼는 악어가 득실득실한 강물에 일제히 뛰어들지만 전체 종족을 살리려면 10%는 어쩔 수 없이 희생돼야 합니다. 누가 죽는 게 걸리는 대로 먹은 악어(검찰)의 잘못입니까. 지금의 검찰구조로는 기본적으로 여당 편들기 수사를 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호남 출신 검사가 박박 우기면서 여당 봐주자고 하면 그 사람은 동료들한테 턱없는 소리 하는 사람으로 찍힙니다. 왕따가 되는 겁니다. 적어도 이미 드러난 사건에서 여당을 봐주는 일은 없고 드러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야당을 파헤치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한나라당이 숫자 가지고 자꾸 따지는데 당선자 기소는 15대 때 모두 9명이었는데 이번에는 25명입니다. 선거법 수사로 (검찰은) 너무 적만 잔뜩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사실 이번에 민주당 안의 반란표를 제일 걱정했습니다. ‘검찰총장 그 XX, 봐줄 이유가 뭐 있어’ 하면서 눈깔 뒤집고 덤비는 사람 있을까봐요. 솔직히 이번에 편파해줄 만한 지역이 어디 있었나요. 영남은 야당이 싹쓸이하고 호남은 여당이 다 먹었지 않았나요. 감히 말하지만 80년대는 논외로 하고, 내 경험상 90년대 들어 가장 부정이 심했던 선거는 96년 15대 총선이었습니다. 관권선거가 판을 쳤고 당시 신한국당은 정치자금을 실탄형식으로 많이 지급했습니다. 그 결과 수도권에서 여당이 압승하는 단군 이래 최초의 사건이 벌어졌지요. 그때 여당쪽 잡아넣겠다고 보고 올리면 대검에서 꿩 구워먹었는지 어떻게 하라는 지시가 없었어요. 분위기도 무척 살벌했지요. 안기부에서는 선거사범 수사 관련해서 검사장 씹는 정보보고를 수시로 올리고…. 당시의 부정선거는 가장 공정했다고 평가받았던 6·27지방선거에서 신한국당이 참패한 뒤 이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검사들 대부분이 알고 있었어요. 한나라당이 제시한 탄핵사유를 보면 총풍사건 검사가 선거담당 주무과장으로 일했다는 것도 집어놓았는데 말이 안 됩니다. 너무 치졸합니다.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말로는 독립성 운운하지만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결정된다고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 이뤄질까요? 더 깊은 수렁에 빠질 게 뻔합니다. 정치권의 독단이자 위선일 뿐입니다. 적어도 검찰을 위하는 마음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회창씨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요. 법조 선배로서 검찰의 독립을 말하는 게 100% 식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른 방법으로 다투는 게 맞습니다. 다음 대선 직전 검찰이 총풍이나 세풍사건을 가지고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검찰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 것 같은데 그러면 안 됩니다. 검찰 안에 자기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다음 대선 구도를 그리면서 누가 총장이 되면, 또는 누가 대검차장이 되면 선거에 유리하겠다고 계산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마음처럼 잘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시도 자체가 오히려 검찰을 더 정치화시킬지도 모릅니다. 조사 대상자가 조사주체를 탄핵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언론의 얄팎한 상술… 완벽한 수사 어려워
대화가 본 궤도에 오르면서 그의 목소리는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선거수사는 그렇다쳐도 지금 야당이나 언론은 한빛은행 사건, 동방금고 사건, 옷사건 등도 검찰이 축소·왜곡수사했다고 말한다. 자업자득이라든가 업보라는 얘기는 검찰 안에서 전혀 없는가”라고 물어보았다.
“한빛사건이나 동방사건 수사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됐다는 건데…. 글쎄, 의원이 무책임하게 KKK라고 하고 검찰수사에서 그게 안 드러났다고 해서 탄핵사유라는 게 말이 되나요. 지금 국면을 보면 마치 YS 때 김현철 잡아넣으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김현철도 깃털론이 확산되면서 구속된 것 아닌가요. 권력실세 못 잡으면 검찰이 매도당하는 시대입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예요. 의혹을 제기해놓기만 하고 나중에 검찰이 그 의혹을 풀지 못하면 무조건 봐줬다고 합니다. 수사팀이 무능력하다는 논리로까지 비약하는 데는 기가 막힙니다.
국민들이 DJ에 대해 갖는 느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지자들은 환자이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노벨평화상을 받아도 치를 떱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른바 KKK를 시원하게 패대기쳐줬으면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관련됐다는 사건만 나오면 시원한 결과는 없었습니다. 언론이 검찰을 비난하는 데는 반DJ정서에 터잡은 국민정서에 영합으로써 신문을 팔아먹겠다는 얄팍한 상술도 한몫 하는 것 아닌가요. 물론 검찰이 사건마다 모두 완벽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그게 곧바로 은폐·왜곡·축소로 이어지면 곤란하다는 게 검사들 생각입니다.
한빛은행 사건은 한빛과 신보 두 사건을 동시에 수사해서 국민들이 혼동한 측면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파봐야 아무것도 없는 사건인 것 같았습니다. 동방사건의 경우에는 검사의 눈으로 보자면 시간이 무지하게 많이 걸리는 사건입니다. 정현준이 펀드가입자가 700명이라고 하는데 그들 중에 누가 권력실세 돈이냐고 물으면 ‘예’ 하고 대답하겠어요? 못 밝혔다고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성급합니다.
옷로비 사건은 잘못됐습니다. 그 사건은 김태정씨가 장관 있을 때라서 검찰이 수사를 맡은 것부터가 잘못된 처사였어요. 특별검사가 처음부터 와서 수사해야 했던 사건입니다. 법에 나오는 ‘제척기피사유’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또 그렇게 했으면 장관자리를 달라고 하면 안 되지 어떻게 장관에 또 가나….
국회 529호 사건도 명백한 잘못이었어요. 한나라당이 안기부 파견 나와있는 국회 사무실이 정치사찰한다고 주장했다고 해서 검찰이 한나라당 보좌관 4명 영장 친다고 했어요. 대부분 검사들이 ‘지금 제정신이냐’고 반문했어요. 결국 모두 기각되고 쪽만 팔리게 됐지요. 그런 것이 업보라면 업보일 수 있지요. 그렇지만 모든 사건을 그런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이전 정권에서는 더 심했어요. 5·18사건 불기소 결정을 했다가 대통령 뜻에 따라 다시 기소했고, 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기소할 수 있을 정도로 수사해놓고도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서 기소 못하고 결국 법원에서 재정신청 받아들여서 공소유지 변호사가 대신 기소하고 유죄 받았습니다. 그때도 불기소 이유는 전두환 정권의 위기론을 검찰이 받아들인 결과였어요.”
대화는 현 정권 출범 이후의 검찰인사 문제로 이어졌다. “여권이 자기 사람 키우려고 호남 출신들을 중용했다는 지적이 많고, 중용된 고위간부들이 여권 실세들과 친하다는 얘기는 다 알려진 사실 아닌가”는 질문을 던졌다.
검찰은 기본적으로 욕먹는 조직
“검찰간부가 정치권과 유착돼 있다면 호남이라서 문제되는 것이 아니고 정치권과 유착돼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삼아야 합니다. 검찰총장도 개인적으로는 국회의원들과 친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간격을 어떻게 유지하냐가 문제입니다.
평검사들의 경우도 예전에 비해 호남이 중용되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특수부나 공안부, 법무부와 대검의 이른바 잘 나가는 자리들에 호남 출신들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전 정권의 편중인사를 바로잡는 선을 훨씬 지나쳤다는 평가도 합니다. 하지만 이전에 TK들은 더 심했습니다. 30년을 해먹었으니까요. 평검사 때로부터 검찰총장까지 경력관리를 해줬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고 정권교체가 되자 흑싸리 껍데기들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능력을 검증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인력 풀 순위를 MK, 멍(충청도), TK, PK, K1(경기고)으로 매깁니다. 강원·제주 기타 등등은 순위에도 안 들어가고…. 전북보다는 전남이, 광주보다는 목포가 더 앞서가는 것 아닌가요. 공부 잘하는 K1들이 견제당하는 건 이회창씨 후보론 때문이겠지…. 기본적으로 권력기관인 검찰 역시 지역분할구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봐요. 그것 하려고 대통령 됐는데 그것도 하지 말라고 하면 누가 대통령 하려고 하겠어요. 다만 인사를 적재적소에 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도 능력있는 소수의 호남 검사들은 잘 나갔습니다. 사실 현재의 구도도 굉장히 신경쓴 결과입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은 추상적으로는 명확한 개념이지만, 현실에서는 그 실체가 무척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DJ는 김태정씨가 ‘비자금수사 유보’라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결정을 내린 것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DJ에게 있어 김태정은 정치적으로 가장 중립적인 검사요, 기개가 넘치는 검사이지만 한나라당에는 천하에 둘도 없는 정치검사입니다. 마찬가지로 언론사 사장을 구속하면 언론탄압이 되고 국회의원을 구속하면 정치탄압이 됩니다. 시민들도 마찬가지예요. 남들 사건에서는 검사 보고 인권을 지키라고 하면서도 자기가 고소한 사건에서 수사원칙을 지키면 검사가 약 먹었다고 합니다. 검찰은 기본적으로 욕먹는 조직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치권 관련 사건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지요. 정치권은 무슨 문제만 생기면 정치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고소서류를 들고 검찰청사에 나타납니다. 그러면 언론은 그것을 ‘9시 뉴스’에 냅니다. 코미디입니다.
검찰이 두드려맞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 때는 특무대나 헌병대가, 박정희 때는 까만 선글라스 끼고 다니던 중정 아저씨들이 비공식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다녔어요. 그때 만약 ‘공업용 미싱’ 발언이 나왔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검찰이 구차하게 모욕죄로 기소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냥 모셔가서 다리를 분질러 놓고 돈 몇푼 찔러주면 해결되었던 것 아닌가요. 전두환 때는 보안사·안기부가 악역을 맡았어요. 지금은 누가 하나요. 그 모든 악역을 검찰이 떠맡았어요. 그렇지만 검찰은 비공식적인 방식을 쓸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제도적인 보완책은 없는지, 너무 비대해진 검찰권력을 특검제 같은 것으로 분점하는 것은 어떨지를 물어보았다.“특검제는 찬성입니다. 검사들 중 절반 정도는 이것저것 다 떼주다보면 쭉정이만 남는다면서 반대합니다. 그러나 몇 안 되는 그런 사건들 때문에 검찰의 위상과 기능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봅니다. 동방사건 같은 것은 특검에 맡겨서 처리하는 게 백배 낫습니다. 검사동일체 원칙도 다시 한번 고려해 일선 검사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합니다.
“앞으로 정치권 수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법대로 해야지” 하며 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정치권의 비리를 파헤치려면 특정정파와 결탁된 검사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습니다. 이번에 자기를 찾아온 검사한테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네준 자민련 의원들이 검찰청사로 잡혀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할 것 같다는 검사들도 있어요” (웃음)
정의를 은폐하는 악당으로 매도해선 곤란
정치권에 대한 그의 반응은 여전히 냉소적이었다. “끝으로 한마디 해달라”는 부탁을 하자, 그는 모든 검사들이 비장해질 때면 항상 거론하는 ‘후배검사’ 얘기를 꺼냈다.
“후배들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정의를 지킨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10년 넘게 몸으로 때워왔는데, 이제는 정의를 은폐하는 악당 정도로 매도되는 작금의 상황이 슬픕니다. 돈버는 것도 아니고 부정비리와 관련돼 있는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렇지만 한국검찰은 외국에서는 다른 평가도 받습니다. 어떻든간에 전직 대통령 2명과 현직 대통령 아들을 구속시킨 것 아닙니까. 장관급 구속은 헤어릴 수 없어요. 단위시간당 고위직 구속자수를 따져보세요. 피노체트도 그렇게 떠들지는 못할 겁니다. 일본도 다나카 사건 하나로 그렇게 우려먹지, 다나카 사건도 기소한 뒤 8년 동안 재판을 끌다가 유죄 판결도 못 받고 다나카가 죽었어요. 국민들은 로마의 콜로세움에서처럼 사자가 검투사를 잡는 것을 보고 환호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릅니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사진/검찰수뇌부에 대한 탄핵소추안 처리 과정은 일선검사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박순용 검찰총장이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뭐랄까, 자조적인 분위기에다 정치권에 대한 피해의식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울화가 치밀어 못살겠다는 사람도 있고, 자포자기하는 분위기도 있고…. 논리에 닿지 않는 검찰 비판 기사가 나와도 이제는 ‘기자들도 먹고살기 위해 쓰는데 냅둬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립니다.” 이번 탄핵정국 과정에서 검찰 고위간부들은 체면이 구겨지는 것을 무릅쓰고 국회까지 달려가서 협조를 요청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낀 소감을 물어보았다. 특히 검찰쪽 부탁을 외면한 자민련에 대해 분노하는 검사들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손사래를 치며)자민련 의원들을 욕할 이유가 뭐가 있나요. 찬성표를 던진 것도 아닌데. 독자적 세력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지난 총선 때 민주당 누구는 다니면서 자민련은 곧 없어질 거라고 떠들고 다녔다는데 내가 자민련이라도 그랬겠습니다. 그리고 총수가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될지도 모른다는데 당연히 달려가야지요. 솔직히 언론사들 보면 사장이 검찰에 불려오거나 구속된다고 하면 출입기자들이 검사방에서 아예 삽니다. 봐달라고 애걸복걸하면서. 총장이 죽거나 말거나 신경 안 쓰는 게 더 문제 아닌가요. 조직의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으로 봐주었으면 해요. 사실 지금까지 총장 탄핵한다는 국회 발의가 5번 있었지만 이번만 빼놓고는 모두 쇼였습니다. 검찰이 나설 필요가 없었지요. 항상 여당쪽 수가 많았거든요. 야당도 꼭 목을 떼려고 덤볐다기보다는 정치공세 성격이 짙었어요. 그래서 검사가 과연 탄핵대상이 되는지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엔 달랐어요. 이회창씨는 진검승부를 걸어온 셈입니다. (검찰총장이) 진짜로 날아갈 수도 있었어요. 검찰로서는 탄핵정국 초기부터 강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어요.” 여당 편들기 수사는 원천적으로 불가능 그의 목소리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한나라당의 선거사범 편파수사 주장에 대해 모든 검사들이 정말로 떳떳하다고 말할까. 양심의 가책은 조금이라도 없는 것일까. “현행 선거법은 당선자와 당선권에 드는 후보자들이 어길 수밖에 없게 돼 있어요. 그래서 걸린 자와 걸리지 않은 자가 느끼는 편파에 대한 느낌은 엄청나게 다를 겁니다. 낙선한 원외위원장들이 아주 강경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느 신문칼럼이 비유했듯이 국회의원 선거는 아프리카 영양 ‘누’가 건기 때 물이 풍부한 곳으로 이동하려고 큰 강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강가로 몰려든 누떼는 악어가 득실득실한 강물에 일제히 뛰어들지만 전체 종족을 살리려면 10%는 어쩔 수 없이 희생돼야 합니다. 누가 죽는 게 걸리는 대로 먹은 악어(검찰)의 잘못입니까. 지금의 검찰구조로는 기본적으로 여당 편들기 수사를 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호남 출신 검사가 박박 우기면서 여당 봐주자고 하면 그 사람은 동료들한테 턱없는 소리 하는 사람으로 찍힙니다. 왕따가 되는 겁니다. 적어도 이미 드러난 사건에서 여당을 봐주는 일은 없고 드러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야당을 파헤치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한나라당이 숫자 가지고 자꾸 따지는데 당선자 기소는 15대 때 모두 9명이었는데 이번에는 25명입니다. 선거법 수사로 (검찰은) 너무 적만 잔뜩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사실 이번에 민주당 안의 반란표를 제일 걱정했습니다. ‘검찰총장 그 XX, 봐줄 이유가 뭐 있어’ 하면서 눈깔 뒤집고 덤비는 사람 있을까봐요. 솔직히 이번에 편파해줄 만한 지역이 어디 있었나요. 영남은 야당이 싹쓸이하고 호남은 여당이 다 먹었지 않았나요. 감히 말하지만 80년대는 논외로 하고, 내 경험상 90년대 들어 가장 부정이 심했던 선거는 96년 15대 총선이었습니다. 관권선거가 판을 쳤고 당시 신한국당은 정치자금을 실탄형식으로 많이 지급했습니다. 그 결과 수도권에서 여당이 압승하는 단군 이래 최초의 사건이 벌어졌지요. 그때 여당쪽 잡아넣겠다고 보고 올리면 대검에서 꿩 구워먹었는지 어떻게 하라는 지시가 없었어요. 분위기도 무척 살벌했지요. 안기부에서는 선거사범 수사 관련해서 검사장 씹는 정보보고를 수시로 올리고…. 당시의 부정선거는 가장 공정했다고 평가받았던 6·27지방선거에서 신한국당이 참패한 뒤 이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검사들 대부분이 알고 있었어요. 한나라당이 제시한 탄핵사유를 보면 총풍사건 검사가 선거담당 주무과장으로 일했다는 것도 집어놓았는데 말이 안 됩니다. 너무 치졸합니다.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말로는 독립성 운운하지만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결정된다고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 이뤄질까요? 더 깊은 수렁에 빠질 게 뻔합니다. 정치권의 독단이자 위선일 뿐입니다. 적어도 검찰을 위하는 마음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회창씨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요. 법조 선배로서 검찰의 독립을 말하는 게 100% 식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른 방법으로 다투는 게 맞습니다. 다음 대선 직전 검찰이 총풍이나 세풍사건을 가지고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검찰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 것 같은데 그러면 안 됩니다. 검찰 안에 자기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다음 대선 구도를 그리면서 누가 총장이 되면, 또는 누가 대검차장이 되면 선거에 유리하겠다고 계산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마음처럼 잘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시도 자체가 오히려 검찰을 더 정치화시킬지도 모릅니다. 조사 대상자가 조사주체를 탄핵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언론의 얄팎한 상술… 완벽한 수사 어려워

(사진/대통령과 검찰의 만남.김대중 정부의 호남출신 중용이 편중인사를 바로잡는 선을 넘어섰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사진/검찰의 정치적 중립선언은 정권이 바뀔때마다 되풀이 되지만 구호에 머물고 만다.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검사장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