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탄핵안 봉쇄로 위기에 몰린 민주당… 정국 주도권 얻은 한나랑의 노림수
“야당의 불순한 의도는 막았지만 어쩌다 우리당 소속 국회의장을 우리 손으로 감금하는 상황까지 왔는지…. 정말 어이가 없다. 앞으로 여당이 국회에서 뭘 할 수 있겠냐.”(민주당 호남지역 한 3선의원) “정치적 목적은 달성했겠지. 하지만 경제가 개판이고 서민들은 아우성인데, 계속 몰아쳐서 어쩌자는 건지 잘 모르겠다. 자칫하면 이회창 총재도 책임을 함께 뒤집어쓸 수 있다.”(이회창 총재의 한 측근의원)
민주당이 이만섭 국회의장을 의장실에 감금해 박순용 검찰총장과 신승남 대검차장에 대한 탄핵소추안 처리를 무산시킨 직후인 11월18일 오전 0시10분께, 여의도 국회의사당 2층 의장실 주변에서는 이런 뜻밖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10여분 전까지도 여야간 욕설과 몸싸움을 거듭하며 ‘의장 쟁탈전’을 벌였지만, 앞으로 요동칠 정국과 밀려올 ‘후폭풍’을 생각할 때 양쪽 모두 속이 개운치만은 않았던 것이다.
희대의 촌극은 또다른 재앙의 씨앗
‘의장감금’이라는 희대의 촌극을 펼친 민주당의 마음은 천금만금 무겁기만하다. 민주당 최고위원들이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에서 이 의장의 출근을 저지하던 18일 오후, 원내 사령탑인 정균환 총무는 괴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의안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데 소수정권이라 방법은 없고…. 우리 당이 일시적 상처를 입더라도 막는 게 정국에 더 도움이 된다. 앞으로도 똑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다.” 탄핵안이 상정·가결됐을 때 닥칠 검찰권 공백과 김대중 대통령의 레임덕 가시화 등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면 어쨌든 현재의 고통과 비난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의장감금’ 전략은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아니라 더 큰 재앙의 씨앗이었다. “안일한 대응으로 일관하다 결국 단기적 승리를 위해 장기적인 정국운영 전략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이제 계속 밀릴 수밖에 없다.”(민주당 한 핵심당직자) 당장 탄핵안 처리는 미뤘지만 민주당과 여권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결국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는 진단이다.
실제 민주당은 정국운영에 심각한 부담을 떠안게 됐다. 언론은 “국회법 절차와 다수결 원칙을 무시한 정치 쇼”라며 여당의 도덕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회 의사일정 전면거부, 탄핵안 재제출, 이만섭 의장의 의작직 사퇴 촉구 등 초강경 대응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야가 11월23일 처리키로 합의했던 40조원의 공적자금동의안은 물론 2001년 예산안 심의도 처리시한인 12월2일까지마무리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해졌다.
‘후폭풍’의 위력은 단지 국회파행 수준이 아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상당부분 이번 사태를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책임공방과 함께 내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 안에서는 벌써부터 초기에 파장이 적은 형태로 수습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지도부가 상황을 오판하고 검찰의 저항에 굴복해 사태를 이 지경까지 끌고 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처음 탄핵안을 낼 때는 선거법 위반에 걸린 의원들의 분노를 수습하는 수준이었다. 더욱이 우리는 자민련과의 공조 성공여부도 불투명한 상태였다. 때문에 법사위에 회부해 푸닥거리를 하면서 시간도 벌고 야당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면서 해결하는 게 최선이었다. 최고위원회의 등 당 안에서도 그런 방안이 제시됐고, 당시 한나라당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본회의에서 탄핵안을 처리하는 모험을 선택했다.”(민주당 수도권 한 3선의원) “법사위는 여야 의석 수가 7 대 7로 동수다. 자민련 법사위원인 김학원 의원은 JP의 통제가 직접 미칠 수 있는 사람이다. 얼마든지 법사위에서 막을 수 있었는데, 왜 수습도 못할 일을 저질렀는지 이해가 안 된다. 지도부가 책임져야 한다.”(수도권 한 재선의원)
여권의 안이한 정국인식이 화를 키웠다
그렇다면 여권은 도대체 왜 이런 악수를 뒀을까. 한 고위 당직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 지도부가 검찰을 설득했지만, 검찰은 총장이 법사위 증언대에 나올 수 없다고 저항했다. 또 자민련이 이렇게 세게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당론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표결 상황으로 가면 우리편을 들어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다. 15일 오후 10시25분 탄핵안이 국회에 보고된 뒤 강창희·이재선·이완구·정우택 의원 등 이른바 ‘자민련 내 독립군’들이 자유투표를 고집하고 나선 것이다. 당황한 민주당 지도부는 “자민련이 요구해온 교섭단체 요건 완화안을 공동상정할 수 있다”는 카드를 내밀면서 본회의장 공동퇴장 등을 설득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이만섭 의장의 탄핵안 상정의지를 막을 수도 없고, 자민련과의 공조를 통해 부결시키는 방법마저 자신할 수 없게 되자 끝내 ‘의장감금’이라는 최하책을 결행한 것이다.
자민련의 반란은 소수당인 민주당이 그나마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119석의 민주당은 그동안 17석을 가진 자민련과의 공조틀을 유지하며 총선 이후 정국을 어렵사리 이끌어 왔다. 그러나 이제 JP나 이한동 총재, 김종호 총재권한대행 등 자민련 상층부와 공조를 약속해도 의원들이 모두 따라오지는 않는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물론 정균환 총무와 박병석 대변인 등은 “자민련 의원 개개인의 성향과 불만이 일시적으로 표출됐을 뿐, 공조가 끝난 게 아니다”고 말하고, 자민련 명예총재인 JP도 민주당과의 협력유지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 자민련 일각에서는 “이제 민-자 연대에 의한 한나라당 포위의 시대는 가고, 오히려 이번 반란 세력과 한나라당의 한-자 동맹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는 비관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태로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정국구상 자체도 흔들리게 됐다. 청와대는 등돌린 민심 수습을 위한 특단의 돌파구로 ‘전방위 사정’을 내걸고 내년 2월까지 금융·기업·공공·노동 등 4대 부문 개혁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여권 핵심관계자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김 대통령이 4대 개혁을 통해 민심을 얻지 못하면 곧 레임덕이 시작된다는 비감한 상황 판단 아래 개혁에 대한 저항을 물리치는 핵심 기제로 ‘전방위 사정’을 내걸었다”면서 “간단히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검찰권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고 ‘사정’의 칼날은 무뎌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민주당은 결국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정국을 이끌 힘과 수단, 명분을 모두 잃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다. 동교동계 한 최고위원은 “일선 검사들은 아예 움직이려 하지 않고, 공무원들은 ‘날고 기는 검찰도 당하는데 우리가 나서서 뭘 할 수 있겠냐’고 복지부동한다”면서 “한계상황”이라고 한탄했다.
모두 잃은 최악의 상황… 확실하게 달라져야
민주당과 여권은 과연 이 난국을 어떻게 풀 것인가. 서영훈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일단 ‘민생과 경제 중시 노선’과 개혁법안 제출을 통해 국면전환을 꾀하고 있다. 서 대표가 19일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4대 개혁이 마무리되는 내년 2월까지는 정쟁을 중단하자”고 촉구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민주당 안에서는 이 정도로는 난국을 타개할 수 없다며 거국내각 구성 등 정국운영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 ‘감동의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다. “단순히 원내총무 등 지도부 몇명을 교체해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제 국민의 신망을 받는 모든 인사를 모아서 정부와 청와대, 민주당까지 진용을 다시 짜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강력한 사정과 함께 정계개편을 시도해야 한다.”(동교동계 한 의원) “한나라당의 협조없이 민주당이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증명됐다. 이제 공조 파트너를 자민련에서 한나라당으로 교체하는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한다.”(민주당 한 핵심당직자)
그러나 이런 엄청난 발상조차 실현할 힘이 없다는 데 민주당의 고민이 있다. “이론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 총재는 적어도 김 대통령에게 차기대권에 대한 보장이나 최소한 중립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민주당 내 잠재적 대권주들이 (김 대통령과) 다른 행보를 할 것이다. 결국 여권이 선택할 수 없는 카드다.”(민주당 한 최고위원) 거국내각 구성이나 민-한 공조에는 이 총재의 협조가 절대적인데 조건없이 협조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그 조건을 들어주면 여권이 분열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셈이다.
한나라당 뜻밖의 대박… 사정 칼날도 무디게
‘적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 되는 법. 민주당이 자괴감에 시달리며 수렁에서 벗어나려고 바둥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나라당은 뜻밖의 ‘대박’에 즐거워하고 있다. 이 총재를 비롯한 당직자들의 겉모습은 강경론 그 자체다. 탄핵안 재제출을 다짐하고,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는 등 잔뜩 각을 세우고 있다. “정치검찰을 국민에게 돌려주려는 충정이 실현될 때까지 몰아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내는 강공을 계속할 때 닥칠 수 있는 역풍을 면밀히 계산하며 성과를 온전히 체화하는 데 더 신경쓰는 분위기다. 이 총재의 최측근 인사는 “솔직히 정치적 목표를 150% 초과달성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강공에는 부담이 따르는 만큼 적절한 명분과 시기를 택해 정치적 터닝포인트를 잡을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 이 총재와 한나라당은 탄핵정국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 일단 민주당이 의장감금이라는 ‘하지하책’을 씀으로써 예산안 처리 등 앞으로의 국회운영에서 명분상 우위를 점했다. 또 자민련과 민주당을 갈라놓는 부수적 효과도 얻어내 사실상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확고한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이회창 총재 주변에서는 이 총재의 대권가도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할 위험이 있는 검찰의 손을 묶은 것에 잔뜩 고무돼 있다. “검찰이 앞으로는 서툰 짓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탄핵안을 통해 얻은 최대성과는 바로 그것이다.”(이 총재의 한 측근의원) 한나라당은 사실 신승남 대검차장까지 탄핵대상에 포함한 데 따른 비판여론을 의식해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김 대통령과 같은 목포고 출신인 신 차장이 내년 5월에 임기가 끝나는 박순용 검찰총장의 바통을 이어받는 것을 최악의 상황으로 상정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총장후보 1순위인 신 차장에게 상처를 입힘으로써 김 대통령이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지 않는 한 그를 검찰총수에 임명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이 총재는 당내 다양한 세력들의 불만과 대립을 하나로 묶어 세움으로써 지도력을 더욱 확고히 했다. 측근의원들은 “영남지역은 물론 소속 의원들 사이에 ‘창은 역시 다르다. 뭔가 확실히 한다’는 이미지를 심어 ‘영남권 후보론’이 불거질 가능성을 상당히 줄였다”고 자평했다.
물론 한나라당이라고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투를 치르다보면 승자에게도 약간의 상처는 남게 마련이다. 먼저 선거사범을 편파적으로 수사했다는 다분히 자의적인 이유로, 그것도 검찰총장뿐 아니라 대검차장까지 포함시켜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것은 정략적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일선 검사들 사이에 “법관 출신이라는 이 총재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국가권력의 핵심기관인 검찰까지 이용했다”는 불만이 확산되고 있는 점은 여간 부담스런 대목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애초부터 이런 역풍을 피하기 위해 검찰 수뇌부를 전체 검사들로부터 분리시켜 비난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반발정서를 완전히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검찰은 내부적으로는 수뇌부를 비난하다가도 외부에서 ‘흔들기’가 시작되면 뭉치는 습성이 있다. 벌써 이를 악물고 우리에게 보복할 방법을 찾는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이 총재의 다른 한 측근의원) 대화와 타협의 정치인이라는 대안적 이미지를 심으려는 그동안의 노력에 흡집이 생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총재의 지지도는 장외투쟁에 나설 때는 떨어지고 영수회담을 여는 등 타협의 모습을 보일 때는 높아지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이번 사태가 이 총재 개인의 이미지에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을 수 있다.”
여·야, 파행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관심의 초점은 이 총재가 성과와 한계가 이렇게 혼재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정국을 운영할 것이냐는 점이다. 일단 계속 강공으로 밀어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심각한 경제상황은 이 총재가 모처럼 조성된 유리한 국면을 마음껏 향유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경제가 계속 나락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탄핵안 무산을 이유로 여당을 계속 몰아치며 민생현안 처리를 마냥 뒤로 미룰 경우 ‘국회무용론’이 확산되면서 여야가 공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총재도 이 부분을 상당히 신경쓰는 모습이다. “경제가 너무 나쁘고 민생이 도탄에 빠져 있기 때문에 야당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여권이) 노리고 있다”(18일 의총장에서 이 총재) 한나라당 일각에서도 “이 총재가 대표연설을 통해 경제난 해소를 위해 공적자금 문제를 우선처리하겠다고 밝혀놓고, 상황이 좀 유리해졌다고 이를 갑자기 뒤집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이번 사태를 장기파행으로 이끌기보다는 관련법 개정을 통해 검찰중립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여권의 사과 수준에서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다. 19일 목요상 정책위의장과 안상수 인권위원장 등이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 원칙과 기소독점주의 개선 등을 내용으로 한 검찰청법개정안과, 검찰총장 등 이른바 ‘4대 권력 기관장’을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나선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맹형규 의원(기획위원장)도 “예산안과 공적자금 문제 등 민생 현안은 부담이 큰 있는 만큼 적절한 시기에 해결책을 찾을 것으로 본다”고 밝혀 이런 전망을 뒷받침했다.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사진/민주당은 탄핵정국에서 씻을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여야가 국회의장실에서 이만섭의장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탄핵안 표결 처리를 위해 국회의장을 기다리는 한나라당과 일부 자민련 의원들)

(사진/지난 19일 서영훈 민주당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어 정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한나라당은 탄핵정국의 전리품을 챙기고 있다.이회창총재와 당 지도부가 '의장감금'에 대한 대책을 숙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