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위기감 속 한나라당 · 민주당 수면에 떠오른 탄핵철회…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수도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탄핵안을 발의하기 전인 지난 3월5일, ‘뉴스 비틀기’로 네티즌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 <미디어몹>(www.mediamob.co.kr)의 ‘헤딩라인 뉴스’는, “노무현 대통령이 사의를 표명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아니 물러나란다고 그냥 물러나는 그런 무책임한 정치가 어디 있느냐’며, ‘노무현 대통령은 즉각 대통령직에 복귀해야 하고 만약 복귀하지 않으면 탄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상 야당 속보였습니다.”
한나라당 대표 경선 틈타 쟁점화
야당의 탄핵 주장이 ‘공포탄’에 그칠 가능성이 큰 가운데 나온 우스갯소리였는데, 실제 탄핵 이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3월12일 탄핵안을 가결시킨 지 채 열흘도 지나지 않아 한나라당과 민주당 일각에서 탄핵 철회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탄핵 표결에 불참했던 설훈·정범구 의원이 탄핵 정국을 주도한 지도부의 사퇴를 주장했고, 한나라당은 대표 경선에 나선 김문수 의원과 수도권 소장파 의원·공천자 27명이 중심에 서 있다. 탄핵철회론은 여론의 역풍 속에 별다른 쟁점 없이 조용히 진행돼온 한나라당 대표 경선의 막판 이슈로 떠올랐다.
김문수 의원은 일단 “탄핵 재검토”라는 완곡한 표현을 쓰고 있지만, 탄핵 철회에 가깝다. 김 의원은 “탄핵 철회가 원칙과 정도가 아니라고 하는데 앙상한 명분만 일관되게 따르는 것이 좋다고 보지는 않는다. 일관성만 지키느냐 아니면 국민의 뜻을 받드느냐 중에 선택하자면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게 옳다”며 “탄핵의 정당성을 잘 홍보하기만 하면 (민심이) 돌아올 것이라고 안이하게 상황을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수도권 공천자들은 “탄핵소추가 사전에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고, 탄핵 소추 과정은 물론 사후에도 국민의 이해를 충분히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김 의원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에서 탄핵철회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탄핵반대 여론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다, 3월20·21일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서울 강남과 경기 분당·과천 등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꼽히는 지역에서조차 열린우리당 후보들에 비해 열세인 것으로 드러나 총선에서의 위기감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임시 전당대회라는 권력 교체기의 특수성이 가미됐다. 탄핵안 표결 직전 “당론을 따르지 않을 경우 출당과 공천 박탈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최병렬 대표가 탄핵철회론이 불거진 뒤인 3월21일 “한나라당을 더 이상 궁지에 몰지 말고 당을 떠나는 것이 도리”라고 재차 경고했지만, 이들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곧 ‘끈 떨어질’ 대표가, 게다가 비례대표 공천도 불확실한 최 대표의 말이 더 이상 현실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탄핵 철회’ 법 규정 자체가 없어
3월17일 안상수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를 전제로 한 ‘조건부 탄핵 철회’를 제기했을 때만 해도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사안이나 현실성이 있는지 검토해봐야 한다”고 유보적 태도를 취했던 김문수 의원이, 안 의원보다 더 적극적으로 탄핵철회론을 들고 나온 것도 전당대회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 대의원 표결 결과와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절반씩 합산해 대표를 선출하기 때문에, 홍사덕·박근혜 의원의 2강 구도에 바짝 따라붙기 위해서는 여론조사 표를 등에 업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나라당이 당 지도부의 장악력이 느슨해진 가운데 탄핵철회론이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조순형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완강히 버티면서 파열음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탄핵 추진을 반대했고 표결에 불참했던 설훈·정범구 의원은 3월21일 “국민의 분노는 노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이 잘못됐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지도부는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고 물러나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설 의원은 다음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무기한 삭발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이낙연·김효석·전갑길 의원 등 호남권 공천자 7명은 3월20일 조순형 대표와의 면담에서 “국민들의 분노에 당이 적절히 화답하지 않을 경우 공천 반납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탄핵 정국 이전에 검토했다가 총선 일정 등 시일의 촉박성을 이유로 보류했던 ‘집단탈당 이후 민주당 출신 무소속 연대’ 방안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조 대표 등 지도부 사퇴-추미애 선대위원장 체제’로 탄핵 이후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쇄신파는, 3월20일 한국방송이 보도한 서울지역 여론조사에서 추 의원이 정치 신인인 열린우리당의 김형주 후보에게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큰 충격에 휩싸였다. 민주당의 간판인 추 의원이 뒤지는 상황이라면 총선은 해보나 마나라는 푸념이 터져나오고 있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도 “탄핵안 가결은 대통령을 좀 혼내주자는 것이지 끌어내려 짓이기자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탄핵까지 가서는 안 된다”고 탄핵철회론에 가세했다.
그렇다면 야당 일각에서 제기하는 노 대통령 탄핵 철회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우선, 탄핵 철회에 관한 법 규정 자체가 없다. 국회법에는 탄핵소추의 발의와 의결 등에 관한 조항만 있을 뿐, 이를 철회할 수 있는 조항은 없다. 일부 헌법학자들은 탄핵 심판의 경우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므로 검사가 공소를 취하하는 것처럼, 검사 역할을 하는 국회가 탄핵을 철회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김승환 전북대 교수(헌법학)는 “헌법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한 때는 대통령은 계엄을 해제하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 및 긴급명령의 해제요구권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지만 이 경우에도 국회는 일반안건 발의권과 의결권에 의해 긴급재정경제명령과 긴급명령의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헌법 및 국회법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다. 탄핵소추 발의와 해제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해제 의결정족수는 헌법이나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을 때 적용되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면 된다는 것이다. 다급해진 한나라당 서명파들은 “법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탄핵 철회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탄핵소추 해제 의결이든, 탄핵 철회에 관한 법 개정이든 국회의원 과반수 이상이 이에 동의해야 할 텐데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탄핵 철회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의원들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합쳐도 최대 20명 안팎이다. 그나마 탄핵철회론이 확산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김문수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가 되는 것인데 그럴 가능성이 낮고 설령 대표가 되더라도 영남권 의원 등 상당수 의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를 관철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한나라당 서명파쪽의 한 관계자는 “실제 국회 의결을 통한 철회 가능성보다는 정치적 선언의 의미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선언’만으로 총선에 효과 있을까
따라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탄핵철회론은, 지난 3월17일 공천자 여론조사 형식을 빌려 ‘조건부 탄핵철회론’을 제기했다가 반나절 만에 거둬들였던 안상수 의원의 경우처럼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탄핵 정국에서 일관성을 지킨 몇몇 의원을 제외한다면, 나는 혹은 우리는 원래 탄핵 추진에 반대했었다는 정치적 선언의 효과가 이번 총선에서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불투명하다.

설훈 민주당 의원은 3월22일 정치권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삭발단식 농성에 돌입했다.(이용호 기자)
야당의 탄핵 주장이 ‘공포탄’에 그칠 가능성이 큰 가운데 나온 우스갯소리였는데, 실제 탄핵 이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3월12일 탄핵안을 가결시킨 지 채 열흘도 지나지 않아 한나라당과 민주당 일각에서 탄핵 철회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탄핵 표결에 불참했던 설훈·정범구 의원이 탄핵 정국을 주도한 지도부의 사퇴를 주장했고, 한나라당은 대표 경선에 나선 김문수 의원과 수도권 소장파 의원·공천자 27명이 중심에 서 있다. 탄핵철회론은 여론의 역풍 속에 별다른 쟁점 없이 조용히 진행돼온 한나라당 대표 경선의 막판 이슈로 떠올랐다.

탄핵 철회 주장으로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는 김문수 의원.(이용호 기자)

천막 농성 중인 한나라당 수도권 공천자들.(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