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서 ‘조작’ 논란 뜨거운 여론조사 공천… 선거판 생리상 ‘깨끗한 승복’ 어려운 방식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경선 부작용을 막고 민심에 근접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한 여론조사 경선이, 조사 방식의 허술함과 조작 시비 등으로 탈락자의 재심 요구와 소송, 무소속 출마가 잇따르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광주 북을, 서울 종로 등 10여 군데 공천에서 탈락한 민주당 후보들은 3월8일 ‘민주당 공천여론조사조작 대책위’를 구성해 “조작된 여론조사 공천을 철회하고 강운태 사무총장 등 관련자들을 처벌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수신 가능한 전화기 사용했다” 이런 움직임이 의례적인 공천 탈락자들의 반발 성격도 있지만, 여론조사 공천의 문제점을 시사하는 대목도 적지 않다.
광주 북을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여론조사라면 일어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조사기관이 발신 전용 전화기 대신 수신이 가능한 전화기를 사용해 특정 후보쪽에서 조사기관에 전화를 걸어 조사를 자청한 사례가 발생한 것이다. 여론조사 공천에서 탈락한 지대섭·이춘범·최진 후보 등은 조작 의혹을 제기했고, 지 후보는 여론조사 기관과 민주당 여론조사 담당자를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해당 조사기관은 일부 수신이 가능한 전화기로 ‘역류’한 사례는 있었으나 표본에서는 제외했다고 밝혔고, 설령 포함됐다고 하더라도 지 후보가 공개한 사례는 4건에 불과해 조사 결과에 끼친 영향은 미미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게다가 공정성과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국내 굴지의 여론조사 기관이, 몇몇 정치인 혹은 정당의 의뢰를 받아 ‘조작’에 가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작은 ‘불씨’가 순순히 승복하기 어려운 여론조사 경선 탈락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이런 ‘불씨’는 다양하다. 광주 북갑 탈락 후보들은 후보자들간 사전 합의를 어기고 설문 항목에 나이를 뺀 채 인지도 조사 형식의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면접원이 특정 후보 지지를 유도한 의혹이 있다면서 재심을 요구했다. 서울 종로에서 탈락한 양경숙 후보는 “중앙당이 3월2일 여론조사용 경력을 제출하라고 해놓고 실제로는 그 전날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3월3일 발표했다”고 말했다. 경기 광주시에서는 탈락한 이상윤 후보가 여론조사 초반 자신의 실명 대신 ‘한상운’이라는 이름으로 조사가 이뤄졌다고 주장했고, 서울 은평갑에서 탈락한 황정연 후보는 “내가 앞선 것으로 조사된 결과는 반영하지 않고 2차 조사 결과를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진상 조사를 요구했다.
경선 방식도 불복 사례 잦은데…
한나라당은 탈당과 무소속 출마 선언으로 파장이 더 크다. 영남 중진 물갈이 논란 등 정치적 쟁점에 묻혀 부각되지는 않고 있지만, 결국 이들도 여론조사 공천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2월 말 탈당한 박승국 의원은 “내가 한 여론조사는 가짜이고 믿을 수 없는 회사라고 하면서, 상대방 여론조사에서 배로 차이난다며 여론조사 결과도 보여주지 않고 어느 회사인지도 밝히지 않고 나를 잘랐다”며 “최병렬 대표가 700여명의 공천 신청자를 모아놓고 사기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순봉 의원 등 공천에서 탈락한 다른 중진의원들도 “여론조사는 기획공천을 감추는 포장일 뿐”이라며 여론조사 방식의 공천에 불만을 표시했다.
물론 이들에겐 “게임의 룰에 합의해놓고 결과에는 승복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뒤따를 수 있다. 한표 차이라도 결과가 명백히 드러나는 경선 방식도 경쟁자들의 불복 사례가 잦다. 여론조사 공천 방식은 이보다 훨씬 많은 불복 사유의 씨앗을 품는다는 점에서 한계를 안고 있다. 결국 여론조사 방식의 공천은 당사자들이 결과에 깨끗이 승복할 때만이 빛을 발할 수 있는데 생사를 걸고 달려드는 선거판의 생리상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수신 가능한 전화기 사용했다” 이런 움직임이 의례적인 공천 탈락자들의 반발 성격도 있지만, 여론조사 공천의 문제점을 시사하는 대목도 적지 않다.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한 여론조사 경선 방식이 몸살을 앓고 있다. 3월8일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들이 여론조사 공천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