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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딴집 살림” 청산한 연청의 행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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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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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당시 DJ의 ‘별동대’, 민주당사에 둥지 틀고 당의 공조직으로서 새로운 활로 모색

(사진/지난 11월6일 청와대 연무관에서 열린 새시대정치연합청년회 간부 추청 다과회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발표된 지난 10월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5가 모자빌딩 3층 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연청·중앙회장 김덕배 의원) 사무실은 “와∼” 하는 환호성과 함께 박수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연청 명예회장인 김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과 김덕배 중앙회장을 비롯한 연청 간부 30여명이 모여 TV를 시청하다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발표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다. 이내 김홍일 의원은 연청 간부들과 일일이 축하인사를 주고받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주의와 통일 웅비를 위해 노력해온 연청으로서는 97년 대선 승리에 이어 또 한번 맛본 성취였다. 모두들 크게 고무됐다.” 연청의 한 관계자는 그날의 감격을 이렇게 전했다.

당내 목소리를 키우려는 것 아니냐

DJ의 대표적 ‘전위조직’인 연청 중앙회가 10월18일께 공식적으로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로 사무실을 옮긴다. 이번 민주당사 입주는 연청이 80년 5월 김홍일 의원의 주도하에 ‘민주연합청년동지회’로 출범한 뒤 20년 동안 줄곧 유지해온 ‘딴 살림’을 청산하고 실제적인 공식 당기구로서 자리매김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연청은 이미 97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 사조직 논란’이 제기되자 당시 국민회의(민주당 전신)의 공식기구로 편입됐지만, 여전히 당과는 별도의 사무실과 조직을 유지해왔다.


이 때문에 민주당 안팎에서는 김홍일 의원을 뒷배경으로 막강 파워를 행사해온 연청이 본격적으로 당내 목소리를 높이려는 게 아니냐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연청은 이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김덕배 중앙회장은 “당의 공식기구인데 더이상 외곽에서 맴도는 모습은 이미지에도 좋지 않다. 당연히 당에 들어와 공개적으로 당과 총재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당사 입주에 너무 과민반응할 필요없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또 “당사에 빈 사무실이 남아 있는데도 당 공식기구가 따로 사무실을 꾸릴 필요는 없지 않느냐. 당에 들어온다고 해도 당과는 별도로 여전히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며 독립성을 유지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연청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것은 연청이 김홍일 의원을 통해 김 대통령과 직접 연결돼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사실 연청의 역사는 이런 인식이 터무니없는 게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연청은 그동안 김 대통령의 대권을 위해 ‘별동대’로 활동해왔다. 김 회장은 “수많은 연청 사람들이 80년대 엄혹한 시기에도 모진 고초를 당하며 김 대통령을 위해 헌신해왔다. 97년 대선에서는 18개 시도지부와 300여개의 지회를 통해 30만 회원이 뛰었다. 당을 비롯해 외부로부터 전혀 지원도 받지 않았다. 자발성과 헌신성만으로 모금도 하고 선거운동도 했다”고 말했다.

연청의 이런 숨은 공로는 정권교체 뒤 인정받았다. 98년 2월의 ‘대선승리 연청 기념식’, 같은해 12월의 ‘대선승리 1돌 기념식’, 99년 2월의 ‘대통령 취임 1돌 기념식’, 2000년 2월 ‘국민의 정부출범 2돌 기념식’ 등에서 연청간부 1천여명이 김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장과 표창장을 받았다. 또 지난 11월6일에는 연청간부 560여명이 청와대로 초대돼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받기도 했다. 국영기업체 등 정부산하 단체 진출도 대거 이뤄졌다. 김성수(경기도 정무부지사), 신극정(한국공항공단 감사), 안영칠(한국전자통신연구원 감사), 김춘호(전자부품연구원 원장), 장남진(농업기반공사 감사), 김영춘(서울지하철 공사 감사), 배기선(전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배기운(전 보훈복지공단 이사장)씨 등이 논공행상의 수혜를 받았다.

막강한 힘만큼 반발의 목소리도

(사진/연청 명예회장인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가운데)의원.정치적으로 연청은 사실 막강한 세력이다)
정치적으로 연청은 사실 막강한 세력이다. 우선 문희상, 김옥두, 정균환, 김충조, 김영환 의원 등 전·현직 중앙회장을 포함해 16대 국회에 20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당내에서도 중앙회장 출신이 사무총장 등 주요당직을 역임했다. 또 98년 6·4지방선거에서는 정흥진 서울종로구청장 등 전국적으로 120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연청의 이런 힘은 당내 역학관계에도 투영되고 있다. 지난 8월30일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은 연청의 실력을 보여주는 실례로 거론된다. “당시 전당대회에서 연청 출신 대의원이 500여명이었다. 전체 대의원 9300여명의 5%가 넘는다. 따라서 최고위원 후보들 사이에 이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다툼이 치열했다. 당시 막판 판세는 한화갑 후보가 이인제 후보의 추격을 받는 상황이었다. 이때 김홍일 명예회장이 회원들에게 한화갑 후보의 지지를 부탁했다. 연청은 유대감과 응집력이 강해 이탈표가 거의 없다. 한화갑 후보가 이인제 후보를 넉넉하게 따돌리고 1위를 한 데는 연청의 힘이 컸다.”(연청 고위관계자). 앞으로 치열하게 벌어질 대선후보 선출과정에서 연청의 행보가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막강한 힘과 강한 유대감은 당내 반발을 불러오는 요소이기도 하다. 민주당 관계자는 “연청이 정권교체를 위해 고생도 많이 하고 공적도 적지 않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집권 뒤에도 당과 별도로 운영되는, 사조직 성격의 기구가 따로 유지될 필요가 있느냐. 당내 갈등요인이 될 수 있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특히 일부 지역구에서는 지구당 간부들과 해당 지역 연청간부들이 마찰을 빚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청 사정에 밝은 수도권의 한 의원은 “연청 지회의 경우 지구당과 별도로 운영된다. 따라서 같은 당원이면서도 연청은 자기들끼리만 따로 어울려 활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응집력이 강한 만큼 배타적인 면도 있다. 그래서 지구당의 공조직과 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선거 때는 무리하게 공천 몫을 요구해 마찰을 빚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덕배 회장도 “극히 일부 그런 일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과정에서 간혹 생기는 일이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헌신성과 자발성을 갖고 당의 일을 돕고 있다. 회원들에게 항상 ‘초심을 잊지 말자.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그동안 고생해온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지난해 7월에는 한국수자원공사 감사 염동연씨와 한국토지공사 감사 민상금씨 등 연청간부 출신이 이권과 인사청탁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돼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사실 정권교체 이후 연청은 새로운 진로모색에 고심해왔다. 연청은 지난 7월 발간한 전국대표자대회 자료책자에서 “80년 김홍일 동지의 후원 아래 후광(김 대통령의 아호) 노선의 청년 전위조직으로 출범했다”고 밝히고 있다. 간단히 말해 ‘DJ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본목적은 17년 만에 97년 대선을 통해 달성됐다. 때문에 새로운 존립 근거를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연청은 ‘YS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민주산악회와 비교되기도 한다. 최근 YS가 재건을 선언한 민주산악회의 경우 YS가 대통령이 된 뒤 와해의 길을 걷기 시작한 선례가 있다. 지난 7월 전국대표자대회에서 김덕배 신임 중앙회장이 “이제는 2차 도약을 통해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시점”이라며 “연청 21년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남북한 화합과 평화공존의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전국조직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도 연청의 이런 고민을 표현한 것이다.

공조직의 위상을 실제적으로 공식화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연청의 민주당사 입주를 조직의 새로운 방향설정을 위한 모색의 하나로도 받아들이고 있다. “연청이 정권교체 이전처럼 더이상 당 밖에서 외곽조직 형태로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진 것 아니냐.”(당 관계자) 이제는 당 공식조직으로서의 활로와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며, 이번 당사 입주도 당에 명실상부하게 뿌리내리기 위한 노력이라는 시각이다. 실제 연청은 그동안 사무실의 당사 입주를 꾸준히 요청해왔다. 최영식 연청 수석부회장은 “연청으로서는 당사 입주를 고무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번 당사 입주는 기구표상으로 민주당 공조직으로 돼 있던 연청의 위상을 실제적으로 공식화한 것이다”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냉혹한 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산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강한 생명력으로 20년 정치역정을 헤쳐온 연청, 이제 당내 공식기구로 뿌리내리려는 노력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며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되고 있다.

박병수 기자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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