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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김용갑, 소장파가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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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3-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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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보수 이미지’에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 통과…소장파 의원들 공세가 심사위원 심기 건드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2월27일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의 공천 사실을 발표한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의 표정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어두웠다. 가까스로 꿰맨 상처가 다시 터질까봐 두려웠을까. 김 의원의 공천 배경에 대한 설명은 길었다.

“오랫동안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고 표결도 했다. 우리 당에는 이념적인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우리당의 주류는 건전하고 합리적인 자유주의자인데 김 의원의 이미지가 극단적이어서 부담되지 않겠느냐는 문제제기가 적지 않았으나, 그것이 탈락 사유가 되느냐는 논란이 있었다.”

실제 이날 오전 15명의 공천심사위원이 참여한 가운데 이뤄진 표결에서는 공천 찬성이 8명, 반대가 7명으로 팽팽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지가 극단적이라는 문제제기가 적지 않았으나, 그것이 탈락 사유가 되느냐는 논란이 있었다.” 공천 탈락 위기에서 기사회생한 김용갑 의원(왼쪽에서 세 번째).(이용호 기자)

소장파가 꼬리 내린 까닭은

공천심사위의 내부 사정에 밝은 한나라당의 핵심관계자는 “발표 2~3일 전까지만 해도 김 의원의 낙마 분위기가 강했는데, 2월25일 남경필 의원 등 소장파 의원들이 수구보수 세력과의 전면전을 선언하면서 반전됐다”고 말했다. 소장파 의원들의 공세가, 오히려 보수 성향이 강한 공천심사위원들의 심기를 건드려 역효과를 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공천심사위가 김용갑 의원의 무소속 출마를 가정해 여론조사를 해볼 정도로 분위기가 괜찮았지만, 강혜련·이문열·안강민 위원 등 최 대표가 선임한 외부 인사들이 소장파들의 움직임에 불쾌감을 표시한 뒤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젊은 애들이 너무 설친다” “김용갑·정형근 의원을 배제하면 공천심사위가 소장파들의 압력에 굴복한 것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가 된다”는 얘기가 오갔다는 것이다.

김용갑 의원 공천 이후 소장파들의 대응 움직임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감지된다. 원희룡 의원은 2월29일 기자회견에서 “몇몇 분에 대한 공천심사 간접 요구 부분에 대해 외부 인사들이 간섭으로 받아들여 곤혹스럽고 안타깝다”며 “공천심사위의 재검토와 당사자들의 현명한 결단을 기대한다. 공천심사위의 독립성과 자존심 등 미묘한 문제 때문에 곤혹스러우나 사태 추이를 지켜보면서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며칠 전 “시대착오적 색깔론 공세를 펴는 세력은 당에서 떠나야 한다. ‘충치’가 뽑히지 않으면 그냥 갈 수 없다”던 기세등등함과는 거리가 먼 태도다.

소장파들의 ‘온건한’ 대응은, 김용갑 의원의 공천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인식에 뿌리를 둔 것 같다. 절차상 김 의원의 경쟁자들이 재심 요구를 할 수 있고, 당의 의결기구인 운영위원회의 확정 절차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공천심사위의 결정을 뒤집은 전례가 없고, 소장파들이 그 결정을 뒤집을 만한 정치적 반향을 당내에서 일으킬 수 있느냐가 숙제로 남는다. 게다가 당내 분란 과정에서 일관되게 ‘공천심사위 보위 투쟁’을 벌여왔던 소장파들이, “공천 개혁의 시금석”이라는 이유로 되돌리려할 때는 예기치 않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김 의원이 ‘본선’에서 살아남더라도 재창당과 총선 이후에는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든 만큼 상대적으로 지엽적인 문제보다는 한나라당 개혁이라는 큰 프로그램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병렬 재기와 연결짓기도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김용갑 의원의 공천을 ‘최병렬 대표의 재기’와 연결짓는 해석도 나온다. 영남 중진 10여명과 함께 ‘친최’ 진영을 주도적으로 꾸려 “최병렬 퇴진”이라는 도도한 흐름에 제동을 걸었던 김 의원에게 진 빚을 이번에 갚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 대표가 임시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불명예 퇴진을 하겠지만, 그 이후 재기를 위해서는 김 의원 같은 행동대장이 절실할 것이라는 그럴듯한 분석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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