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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조순형의 튀는 ‘보수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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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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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공천 갈등 속에 민주당 정체성 논란… 잇따라 보수적 색깔 드러내며 한나라당 닮아가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개혁공천 문제로 조순형 민주당 대표와 당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추미애 상임중앙위원이 조 대표의 정책 노선상 보수성 문제를 제기했다. 추 위원은 2월19일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은 온건진보를 추구해왔다. 그런데 당의 최근 행보는 껍데기만 민주당이고 선택한 것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조순형 대표가 깨끗한 이미지이지만, 보수적이다”라고 주장했다.

“자주외교 같은 쓸데없는 소리 말라”


추 의원은 이날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놓고도 보수 대 개혁의 컬러를 내세울 수 있었지만, 그렇게 못했다”며 문제제기의 배경을 간략히 언급했다. 자신이 FTA 비준 반대를 주장한 반면에 조 대표는 찬성 의견을 밝혔기 때문으로 보였다.

나도 알고 보면 보수파? 조순형 대표는 민주당 정책 노선을 놓고 추미애 의원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한겨레 윤운식 기자)
사실 조 대표는 정치 행태 면에선 청렴하고 올곧지만, 정책 노선에서는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진작부터 있었다. 다만, 비주류 시절에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던 그의 정책 노선이 당대표가 되면서 부각되기에 이른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이런 맥락에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 외교부간 자주외교 논란이 일던 끝에 윤영관 장관이 경질된 무렵의 조 대표 행적을 사례로 꼽곤 한다. 조 대표는 1월16일 당상임운영위원회를 주재한 자리에서 “우리가 스위스 같은 영세중립국이냐. 자주외교가 무슨 소리냐. 요즘 같은 국제시대에 어디 자주외교 같은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 한-미 동맹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생존에 가장 기본이다. NSC의 월권과 횡포를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 대표의 발언은 ‘김대중 노선’의 정통 계승자를 자처하는 민주당의 입장이라고 보기에는 좀 어색했다.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출신인 김성재 총선기획단장의 같은 날 발언(“국민의 정부 때 DJ는 대미 관계를 자주적으로 하면서 실익도 얻었지만, 노무현 정부는 실리도 없고 자주만 주장한다”)이 훨씬 김대중 노선에 가깝게 들렸다.

조 대표의 발언은 거꾸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며칠 뒤 국회 연설(“자주외교론이 거론되는데 자주를 표방한 나라치고 성공한 나라가 없다. 자주와 동맹이라는 이분법적 코드를 버리고 경제적 국익을 기준으로 미국에 대해 용미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과 흡사했다. 조 대표가 야당 지도자로서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되, 민주당의 전통적 시각보다는 한나라당의 그것과 비슷한 보수적 견해를 취함으로써 정체성에 의문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이유 있는 조갑제의 추천… ‘DJ 노선’ 시들

이런 흐름을 진작부터 읽은 탓인지, 반핵반김청년본부와 육·해·공군·해병대예비역대령연합회, 민주시민네티즌연대 등 30여개 보수단체로 구성된 ‘2004 대한민국을 위한 바른선택 국민행동’은 2월2일 조 대표와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 등 2명을 당선운동 대상자로 선정해 발표했다. 조 대표는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했다는 점을, 정 의원은 송두율 교수를 대남공작원으로 규정했다는 점을 선정 이유로 꼽았는데, 어쨌든 뒷맛은 미묘했다. 보수우익의 대표 논객으로 꼽히는 <월간조선>의 조갑제 발행인이 지난해 말 재신임 정국에서 노 대통령이 퇴진할 경우 조 대표를 후임 대통령으로 밀어볼 만하다고 주장한 적도 있다.

추 위원 대 조 대표, 수도권 소장파 대 호남 중진을 대립각으로 하는 민주당 내부 갈등의 가장 큰 쟁점은 물갈이 공천과 한나라당­민주당 공조 문제이다. 그러나 조 대표의 개인적 보수성이 ‘김대중 노선’(추 위원은 ‘온건 진보’라고 표현)의 정통성과 들어맞는지 여부도 만만찮은 논란을 빚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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