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의원 KKK 발언에 발끈한 민주당… 자체정화를 통해 해결하는 성숙한 국회는 멀었나
(사진/지난 11월2일 'KKK관련설'을 제기하는 한나라당 이주영의원(맨위). 이 의원의 발언에 민주당 의원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정치권에 또다시 ‘면책특권’ 논란이 불붙었다. 이주영 의원(한나라당)이 지난 11월2일 국회 법사위에서 제기한 ‘KKK 관련설’이 문제된 것이다.
민주당은 “증거도 없이 권노갑 최고위원 등 4명의 실명을 거론하며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 연루 의혹을 제기한 것은 면책 범위를 넘어선 행위”라며 법 논리를 총동원해 한나라당을 공격하고 있다. 판사 출신 추미애 의원이 최선봉에 섰다. 공격 무기는 ‘면책특권 제한론’. “의원의 면책특권은 막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는 신성불가침의 특혜가 아니며, 국내 헌법학자들 사이에도 정규절차를 통한 발언일지라도 명예훼손적이거나 모욕적 언사는 명예훼손죄나 모욕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보는 게 다수설”이라는 것이다. 추 의원은 특히 “독일기본법에도 ‘국회 내 행위라고 하더라도 모욕적이거나 명예훼손적인 경우에는 면책되지 않는다’(제46조 1항 단서)고 규정돼 있다”면서 이런 제한이 ‘국제적 관례’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런 논리에 따라 지난 11월4일 이 의원을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했고, 지난 9일 9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냈다.
총공세 나선 민주당, 느긋한 한나라당
민주당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10일에는 당 안팎의 논객들을 모두 동원해 ‘면책특권, 무제한인가?’라는 주제의 공청회를 열었다. 민주당은 이날 공청회에서 논리를 하나 더 추가했다. 이 의원의 행위는, 면책특권에 대한 제한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헌법학자들조차 면책특권 대상에서 제외하는 데 동의하는 ‘중상적 명예훼손’(형법 제307조 제2항)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 의원 스스로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자인한 것처럼 아무런 객관적 증거나 근거가 없어 진실이 아님을 충분히 인식하였음에도 허위사실을 적시했다. 더욱이 박순용 검찰총장이 ‘(3K의)펀드가입 사실이 드러난 게 없다’고 답했는데도 계속 다그쳤다. 발언 당일 각종 정황증거를 볼 때 사실무근의 악명을 씌워 남의 명예나 위신·지위 등을 손상시키는 중상적 명예훼손죄에 해당되며, 당연히 면책대상이 아니다.”(이석형 변호사·주당 은평을 지구당위원장) 민주당의 이런 총공세에 대해 한나라당은 “이 의원은 국회의원 직무와 관련해 할 도리를 했을 뿐”이라며 법리논쟁에 휘말려들지 않으려 하고 있다. 헌법 제45조에 면책특권이 명시돼 있고, 이 의원의 발언은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확인하는 수준인 만큼 법리논쟁 ‘꺼리’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의원 등은 오히려 “민주당이 그동안 이니셜을 밝히라고 야단하지 않았느냐. 떠드는 이야기를 빨리 밝혀주었으니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민주당의 화를 돋구었다. 한나라당은 특히 지난 6일 정무위 국감장에서 동방금고 사건의 주역인 한국디지탈라인 사장 정현준씨가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으로부터 ‘권노갑, 김홍일을 안다’는 말을 들었다”고 답변하자 권철현 대변인의 입을 빌려 반격을 가했다. “정씨의 증언으로 KK설은 사실임이 밝혀졌고, 이미 경찰과 검찰진술에서 권노갑, 김홍일씨의 이름이 거명된 내용을 민주당이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시정잡배식 논리로 이주영 의원을 비방하고 있다. 명예훼손의 상처를 입은 것은 정권실세들이 아니라 이 의원인 만큼 즉각 공개사과하라.” 한나라당은 이번 사안을 ‘가만히 있어도 이기는 게임’으로 보고 있다. “어차피 이번 논란은 과거처럼 정치적 공방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또 법조계의 분위기도 우리쪽에 유리하다.”(이회창 총재의 한 측근) 실제 헌법학자나 변호사들 사이에는 이번 사태를 법적 쟁송으로 해결하려는 민주당쪽 태도에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들이 많다. “시중에 떠도는 ‘KKKP’의 실명을 거론하며 검찰총장에게 ‘맞느냐?’하고 물은 게 질문의 핵심이다. 그 정도는 진실을 알기 위해 의원이 직무상 행할 수 있는 발언으로 봐야 한다. 시비를 거는 게 난센스다.”(허영 교수·연세대 헌법학) “면책특권에 대한 법리논쟁이 있을지라도 시중에 떠도는 실세의 이름을 거명한 정도는 허용할 수 있는 범주라는 게 변호사들의 대체적인 판단이다.”(문병호 변호사·법무법인 부평종합법률사무소) 면책특권 논란의 역사와 폭로정치
이 의원의 발언이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허 교수는 특히 민주당이 내세운 ‘면책특권 제한론’에 대해 “선진국에서 면책특권 자체에 시비를 거는 일은 없다. 모독죄에 대한 면책제한 규정을 둔 독일조차 포괄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일 뿐 그 조항을 한번도 실제 적용한 예는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외국의 경우도 몇몇 면책특권 논쟁이 있었지만 부정부패 등에 연루된 인사들의 특권을 제한하는 의미가 짙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칠레가 군부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상원의원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사법처리”를 명분으로 지난 6월5일 면책특권을 박탈한 것이나, 미국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 조사권을 놓고 면책논란이 붙었으나 조사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 등이 그런 경우다. 발언 자체가 문제된 것은 지난 98년 10월6일 프랑스 극우파 국민전선 당수인 장 마리 르팡이 유럽의회에서 반유대발언을 하자 의회표결로 면책특권을 박탈한 게 거의 유일한 사례다.
한계가 명확한 정치적 성격의 논쟁을 번번이 법적 공방을 통해 해결하려는 우리 정치풍토가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면책특권은 형식을 보느냐, 실질을 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논란이 있다. 이 의원 발언도 형식은 적법하지만, 실질 측면에서는 ‘그런 목적으로 허용된 게 아니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결국 정치적 입장과 관점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밖에 없는 사안이 사법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정주교 변호사)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밖에 없는 면책특권 논란의 성격상 법의 잣대로 ‘무 자르듯’ 결론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권은 그동안 폭로정치 문제를 둘러싸고 면책특권 논란을 거듭했다. 그때마다 서울지검에 고소장이 접수됐다. 99년 여의도 정가를 뜨겁게 달궜던 정형근 의원의 ‘빨치산식 수법 발언’이나 ‘언론대책 문건 작성 폭로’, 이신범 의원의 ‘대통령과 국무총리 부인에 대한 고급옷 로비 의혹 발언’ 등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민주당은 명예훼손 혐의로 정 의원 등을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도 “사법처리가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러나 정 의원 등은 “면책특권” 등을 이유로 검찰조사를 거부했고 지금까지 고발장에는 먼지만 쌓이고 있다.
더욱이 이런 논란은 결국에는 대부분 여야간 정치적 흥정으로 끝났다. 사법적 판단까지 간 것은 86년 유성환 의원(신민당)의 ‘국시논쟁’과, 97년 대선직전 추미애 의원의 ‘부산 건설업체 자금 국민신당 유입설’ 정도가 고작이다. 유성환 의원 사건의 경우, ‘통일은 모든 국가시책에 우선한다’는 그의 본회의 발언을 문제삼아 당시 검찰은 자료를 사전에 보도진에 배포했다는 이유로 유 의원을 구속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91년 “포괄적 의정활동으로 면책대상”이라고 무죄를 선고했다. 면책특권을 광범하게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추 의원의 경우도 97년 서울지검 형사1부에서 유성한 전 의원 판례를 근거로 “명예훼손의 고의성이 없다”면서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의원들의 모든 발언은 면책특권의 보호막 속에서 무조건 보호받아야 하는 것일까. 법조인들은 “제한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제한이 가능할지 또 그 한계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는 의문”이라며 “국회의 전통과 관례로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허깨비’ 국회 윤리위가 문제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있지만 면책특권의 입법취지는 의원의 자유발언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특정인이 거명돼 명예가 훼손돼도 공익이 더 큰 것인지 항상 논란이 되는데 그것을 어떻게 재단할 수 있겠냐. 외국의 경우도 법원은 가능하면 국회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자율을 보장하는 추세다. 결국 국회가 자기 전통을 만들고 자체정화를 통해 해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양영태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문병호 변호사도 “문제가 있는 발언이라도 의원의 품위를 떨어뜨린 데 대해 정치적·윤리적 비난을 받을 일이지 법률적 쟁송으로 해결할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여야간 논란이 거듭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쉽지 않은 문제다. 손혁재 참여연대협동 사무처장은 “면책특권의 범위를 넘어선 발언이라도 법으로 규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국회 윤리위를 통해 자율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 국회 윤리위가 허깨비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저질발언에 대해 잔뜩 목청을 높이며 사생결단의 자세로 대립하지만 정작 윤리위에서는 서로 봐주기로 끝맺는 게 관행으로 굳어 있다. 지난 15대 국회에선 인격모독성 발언, 허위날조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무려 11건의 윤리심사 요구와 44건의 징계요구가 접수됐지만 모두 유야무야됐다. 결국 국회와 의원 스스로 자정을 통해 자존을 회복하지 않는 한 면책특권 논란은 끝없이 반복되는 정치적 푸닥거리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y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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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10일에는 당 안팎의 논객들을 모두 동원해 ‘면책특권, 무제한인가?’라는 주제의 공청회를 열었다. 민주당은 이날 공청회에서 논리를 하나 더 추가했다. 이 의원의 행위는, 면책특권에 대한 제한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헌법학자들조차 면책특권 대상에서 제외하는 데 동의하는 ‘중상적 명예훼손’(형법 제307조 제2항)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 의원 스스로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자인한 것처럼 아무런 객관적 증거나 근거가 없어 진실이 아님을 충분히 인식하였음에도 허위사실을 적시했다. 더욱이 박순용 검찰총장이 ‘(3K의)펀드가입 사실이 드러난 게 없다’고 답했는데도 계속 다그쳤다. 발언 당일 각종 정황증거를 볼 때 사실무근의 악명을 씌워 남의 명예나 위신·지위 등을 손상시키는 중상적 명예훼손죄에 해당되며, 당연히 면책대상이 아니다.”(이석형 변호사·주당 은평을 지구당위원장) 민주당의 이런 총공세에 대해 한나라당은 “이 의원은 국회의원 직무와 관련해 할 도리를 했을 뿐”이라며 법리논쟁에 휘말려들지 않으려 하고 있다. 헌법 제45조에 면책특권이 명시돼 있고, 이 의원의 발언은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확인하는 수준인 만큼 법리논쟁 ‘꺼리’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의원 등은 오히려 “민주당이 그동안 이니셜을 밝히라고 야단하지 않았느냐. 떠드는 이야기를 빨리 밝혀주었으니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민주당의 화를 돋구었다. 한나라당은 특히 지난 6일 정무위 국감장에서 동방금고 사건의 주역인 한국디지탈라인 사장 정현준씨가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으로부터 ‘권노갑, 김홍일을 안다’는 말을 들었다”고 답변하자 권철현 대변인의 입을 빌려 반격을 가했다. “정씨의 증언으로 KK설은 사실임이 밝혀졌고, 이미 경찰과 검찰진술에서 권노갑, 김홍일씨의 이름이 거명된 내용을 민주당이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시정잡배식 논리로 이주영 의원을 비방하고 있다. 명예훼손의 상처를 입은 것은 정권실세들이 아니라 이 의원인 만큼 즉각 공개사과하라.” 한나라당은 이번 사안을 ‘가만히 있어도 이기는 게임’으로 보고 있다. “어차피 이번 논란은 과거처럼 정치적 공방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또 법조계의 분위기도 우리쪽에 유리하다.”(이회창 총재의 한 측근) 실제 헌법학자나 변호사들 사이에는 이번 사태를 법적 쟁송으로 해결하려는 민주당쪽 태도에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들이 많다. “시중에 떠도는 ‘KKKP’의 실명을 거론하며 검찰총장에게 ‘맞느냐?’하고 물은 게 질문의 핵심이다. 그 정도는 진실을 알기 위해 의원이 직무상 행할 수 있는 발언으로 봐야 한다. 시비를 거는 게 난센스다.”(허영 교수·연세대 헌법학) “면책특권에 대한 법리논쟁이 있을지라도 시중에 떠도는 실세의 이름을 거명한 정도는 허용할 수 있는 범주라는 게 변호사들의 대체적인 판단이다.”(문병호 변호사·법무법인 부평종합법률사무소) 면책특권 논란의 역사와 폭로정치

(사진/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의 ‘KKK 관련설’에 발끈한 민주당은 이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공청회를 여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사진 이용호 기자yhle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