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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대통령도 분당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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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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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일선에 복귀하는 문희상 전 청와대 비서실장… 참여정부 성공해야 DJ 정부 명예 회복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문희상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노무현 대통령도 민주당의 분당을 안타까워했다”며 “개인적으로는 분당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주효하지 못했으며, 노 대통령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총선 전에는 어렵겠지만 총선 뒤에는 (열린우리당과) 다시 합치는 게 바람직하다”며 정치 복귀 이후 통합조정자 역할을 할 뜻을 밝혔다. 그는 또 비서실장 재직 중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간의 가교 역할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두 분의 관계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다”고 말했다.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비서실장직을 그만둔 그를 사임 당일인 2월13일 서울 삼청동의 비서실장 공관에서 만났다.

탈권위 시대에 청와대 위상의 재정립을 꾀한 문희상 전 청와대 비서실장. 문 전 실장은 정치 복귀 이후 통합조정자 역할을 할 뜻을 밝혔다.(이용호 기자)


1년의 혼란은 국가경영틀 바꾸는 진통

-비서실장을 시작할 때의 목표는 무엇이었으며 얼마나 달성했다고 생각하나.

=정치를 접을 생각까지 하면서 전력투구하겠다는 결심으로 비서실장을 맡으라는 제안에 응했다. 참여정부를 성공시킴으로써 국민의 정부가 폄하되지 않고 역사 속에서 평가받도록 하겠다는 사명감이 강했다. 참여정부가 국민의 정부 연장선에서 재창출된 정권이면서 지지기반이 취약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는 기(氣)를 다 짜낼 만큼 한다고 했지만 목표를 이뤘는지에는 아쉬움이 많다. 다만 최선을 다했기에 홀가분하다.

-참여정부 1년간 혼란이 적지 않았는데.

=과거 대통령들은 사실상 왕처럼 군림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지사 출신으로서,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군인으로서 왕 노릇을 하였으며,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투사의 권위를 토대로 왕처럼 군림했다. 반면에 노 대통령은 1946년생으로 해방 뒤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첫 대통령이다. 민주주의를 몸으로 체화하면서 성장한 세대이기 때문에 의식구조가 전혀 다르다. 가뜩이나 취약한 지지기반 위에서 이러한 시대 또는 세대의 정신을 갖고 국가경영의 틀을 바꾸려다보니 깨지고 지지고 볶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쨌든 당연히 겪어야 할 홍역이다.

-구체적으로 지난 1년간 주력한 일은.

=과거 정부는 프로그램 없이 충동적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반면에 참여정부는 제왕적 대통령제 대신에 시스템에 의한 지배, 법에 의한 사회원리를 세운다는 목표로 1차연도에 각 분야의 로드맵을 작성했다. 청와대 내부만 해도 250여개의 규정을 만들었다.

-탈권위와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이란 방향은 좋지만 효율성을 의문시하는 견해도 있다.

=그 점은 서운하고 아쉽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밥을 짓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따로 있으며 설계하는 사람과 시공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법이다. 나는 설계하는 재주밖에 없었으며 그 점에서 최선을 다하고 역할을 끝냈다. 이제는 시공할 사람이 맡아서 해야 한다.

-말만 하고 행동이 없다는 점에서 ‘NATO’(NO ACTION TALK ONLY) 또는 계획만 세운다며 ‘플랜 온니’ 정권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로드맵 퍼스트, 액션 레이터’가 옳다. 과거 두 정부는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개혁에 실패했다. 그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설계도가 필요하다. 지난 1년간 우리는 그것을 했다. 그 결과 지금 시공 단계에 들어간 것도 많다.

탈권위와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은 성공적인가. 문희상 전 비서실장이 재임 중에 청와대 본관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비서실 조직을 수없이 개편하고 사람도 바꿨다. 그러면서 일은 언제 할지라는 의문론도 제기됐다.

=대통령의 합리주의와 실용주의를 이해했으면 한다. 조직의 안정성이 흔들리는 것 같지만 부서별 정원 따위와 관계없이 실용적으로 운영한다는 차원에서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한 것이다. 이를테면 정무수석이 왜 필요한지를 검토해왔다. 과거 개념으로는 정무수석이 당과 국회를 컨트롤한다는 차원에서 굉장한 실세이다. 그러나 앞으로 청와대와 정치권 관계에서는 정부의 정책을 당과 국회에 잘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정무수석보다는 정책실장이 나서는 게 더 적당할 수 있다. 대신에 정무수석은 시민단체를 담당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기존의 국민참여수석 업무와의 관련성은 어떻게 될지 따위를 제로베이스에서 하나씩 검토하고 있다.

분권 · 자율 시스템 밑그림 그렸다

-청와대 비서실장의 개념도 바뀐 건가.

=비서실장을 국무총리, 국정원장과 함께 권력의 빅3로 생각한 게 과거의 개념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 시대에야 1인자가 다 못하는 것을 2인자가 챙기고, 또 나머지 부스러기를 3인자가 챙겼지만 지금은 시스템을 통해 권력을 최대한 분산시키려 하고 있다. 그것이 분권과 자율이다.

-실제로 그렇게 일이 됐나.

=그게 나한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권력을 행사해주기를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으며, 하자면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참고 자제했으며 그러다보니 가슴에 숯덩이가 생겼다.

-대통령에게 직언을 활발히 했을까라는 의문도 있다.

=내가 쫓겨난 경험이 있어서(김대중 정부의 첫 정무수석을 하다가 몇달 만에 낙마) 이제는 절대로 쫓겨나지 않겠다고 공언한 적도 있으니 그런 의문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직언은 내 전공과목이다. 타고난 성격 때문에 못 말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통령이) 자존심이 상할 말도 팍팍 해왔다.

-주로 어떤 직언을 했나.

=대중들이 대통령에 대해 불안하게 느끼는 어법 문제를 종종 조언했다. 이를테면 대통령이 자꾸 누군가와 승부하는 것처럼 비치면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거꾸로 대통령의 (그런) 어법이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내가 할 말이 없어졌다.

-참여정부에는 실세가 없다지만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이 실세 아니었나.

=과장된 것이다. 과거 원외 정치인 시절이면 이광재·안희정밖에 참모가 없으니 그들의 말을 중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후보 시절부터 기획단과 선대위가 생겨 더 양질의 조언을 듣게 됐다.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오래 일한 참모이니 가끔 이광재의 조언을 들을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김우식 연세대 총장이 후임 비서실장이 된 것도 이 전 실장의 천거가 주효한 결과라는 관측이 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김우식 총장은 첫 비서실장을 인선할 때도 후보로 거론됐다. 전적으로 대통령이 개념을 잡고 선택한 것이다. 내가 사표를 내겠다니까 그 뒤에 대통령이 대학교 총장이면 어떻겠냐며 후임자 개념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김우식 총장밖에 없었다.

-‘2기 청와대’에 보수성향 인사가 많이 진출해 대선 공약에서 천명한 개혁노선이 퇴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율곡 이이는 이렇게 설파했다. 창업형 군주는 가신을 중용해야 하며, 수성형 군주는 테크노크라트를 써야 한다. 경장(更張)형 군주는 두 유형을 섞어쓰되 1기에는 코드가 맞는 인사를, 2기에는 관료형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참여정부 2기다. 1기 작업 과정에서 데미지도 많이 받았으니 그것을 보강하는 차원에서도 안정형 인사를 쓰는 게 괜찮다.

-개혁노선의 퇴조를 방지할 방안은.

=대통령이 최근 정책기획위원회를 대폭 보강했다. 이정우 정책실장이 정책기획위원장이 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개혁성향 학자들도 정책기획위에 대거 배치됐다. 거기서 로드맵을 점검하고 개혁과제를 철저하게 모니터링할 것이다.

-비서실장 재직 중 김대중 전 대통령쪽과의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의미 있는 변화가 있다. 그러나 아직 내용을 언급할 단계는 아니다.

-민주당이 신당 창당과 분당을 놓고 지난해 진통을 겪을 당시 어떤 역할을 했나.

=개인적으로는 분당을 막아보려 했다. 그런 방향으로 여러 사람들을 접촉했다. 그러나 극단론·강경론이 득세하면서 어찌할 수 없는 쪽으로 상황이 흘러갔다. 대통령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개입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다. 당정이 분리됐기 때문에 대통령이 말한다고 누가 듣고 말고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노-김 관계’ 의미 있는 변화 기대

-대통령이 총선 출마를 권유하지 않았나.

=내가 사의를 표시할 때까지 전혀 권유하지 않았다. 그냥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다. 당쪽에서 사람들이 수없이 전화해서 나오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대통령은 언젠가 “당에서 나오라고 하는 이야기가 많다면서요”라고 지나가는 말로 한번 이야기한 것밖에 없었다.

-정치를 다시 하게 됐다. 무엇을 하려 하나.

=참여정부가 성공해야 DJ 정부가 역사 속에서 명예를 회복한다는, 비서실장을 시작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열정을 갖고 일하려고 한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 전망은.

=총선 전에야 어렵지만 총선 뒤에는 물론 다시 합쳐야 한다. 내 정치가 본래 투쟁형이기보다는 통합형이다. 퇴임 뒤 첫 일정으로 박지원·권노갑·한광옥씨와 최도술·안희정씨 등을 두루 만나고 다닌 것도 그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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