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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민주당의 아슬아슬한 ‘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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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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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갑 사태’는 역전의 카드일까… 조순형-추미애 이미지와 안 맞는다는 시각도

지지율 하락에 ‘승부수’를 찾던 민주당이 마침내 ‘한화갑을 지키자’는 깃발을 높이 올렸다. ‘한화갑 카드’는 과연 전세를 역전시킬 만한 파괴력이 있을까. 전망은 엇갈린다.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한화갑 수사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호재? 지난 2월1일 민주당사 앞에서 검찰 수사관들의 진입을 막고 있는 민주당 당직자들.(한겨레 김종수 기자)
민주당이 한화갑 의원에 대한 검찰수사를 계기로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을 겨눈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호남표를 결집함으로써 최근의 지지율 하락 추세를 반전시키려는 의도에서 민주당이 나름의 승부수를 선택한 것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민주당의 승부수가 총선 민심지형을 다시 한번 뒤바꿔놓을 수 있을지가 관심사로 떠오른 상태다.

민주당은 사실 ‘한화갑 사태’ 이전까지 소리도 소문도 없이 고사할 처지에 빠져들고 있었다. 1월 하순의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의 정당지지율이 정체한 가운데 열린우리당이 단독 1위, 민주당이 3위로 하락하는 흐름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서 승부수 찾아나서다

민주당의 여론조사 추이에 따르면 민주당의 정당지지율은 지난해 말까지도 10% 후반 수치로 2위 수준을 유지하다가 연말연초 국회 정치관계법 협상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여론조사 때마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2~3%씩 빠지는 반면에 열린우리당의 그것이 1~1.5%씩 올라가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민주당에서 이탈한 지지자가 일단 부동층으로 옮겨 앉았다가 조금씩 열린우리당으로 다시 옮겨가는 현상이 연말연초에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지지자 이동 원인은 역시 연말연초의 정치관계법 협상에서 보여준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의 공조가 꼽힌다. 선거구제 및 선관위의 단속권 문제 등에서 이들 3당이 현상유지적 입장을 취한 것을 열린우리당쪽이 ‘3당 야합’으로 몰아붙인 것이 국민들에게 나름대로 어필했다는 이야기다. 특히 민주당은 분당 이래 독자적인 정체성 확립에 성공하지 못하다가 오랜 숙적인 한나라당과 공조하는 것으로 비치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분석된다.

1월11일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와 정동영 체제의 등장은 이런 흐름에 일종의 촉매 역할을 했다고 한다.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구태 인상을 벗지 못한 데 따른 반사이익이 기본”이며 “정동영 체제의 출현은 반사이익을 현실화하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2일 열린 민주당 상임중앙위원회. 한화갑 카드는 ‘조순형-추미애’라는 민주당의 새로운 이미지와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이용호 기자)
그 결과 ‘한화갑 사태’ 직전의 여론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2강에 민주당의 1약 구도로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세부적으로는 첫째 호남과 인천·경기 지역에서 부동층이 50% 이상 규모로 급증하고, 둘째 40대 연령층에서 열린우리당의 강세가 나타나며, 셋째 서울·충청·영남권에서 열린우리당이 약진하고, 넷째 수도권에서 한나라당 하락과 민주당의 급강하로 분석됐다.(김형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부소장·명지대 객원교수)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이 그나마 지켜왔다고 믿어온 광주·전남에서도 열린우리당과 접전 단계에 들어섰다는 징후가 나왔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1월 말 ‘모 아니면 도’ 식의 승부수를 목마르게 찾아나서게 된다. 대선자금 및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청문회를 열자고 머뭇거리는 한나라당을 열심히 설득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김경재 의원이 동원산업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50억원을 제공했다며 폭로전을 시도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청문회를 열면 또다시 한-민 공조 시비가 일어 민주당이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다는 점을 안다”며 “그러나 이것저것 모두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화갑은 3김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검찰이 한화갑 전 대표의 2002년 경선자금을 수사하고 나선 것은 민주당으로선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소재로 받아들일 만했다. 따라서 △영장실질심사 출두 거부 △검찰 구속영장 집행 저지 △당사 농성 △2월3일의 광주 장외집회 등을 일사천리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2월2일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는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이용호 기자)

민주당이 제기하는 형평론, 즉 “경선자금은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의장 것도 있는데, 왜 한화갑 의원 것만 수사하느냐”라는 주장에는 나름의 명분이 담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검찰수사 거부와 장외집회로 이어지는 투쟁 방법이 소기의 성과(민주당 죽이기 → 호남 죽이기 → 호남 민심 결집)를 가져올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대표는 “한화갑 전 대표는 3김시대의 대리인이지 3김이 아니다”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같은 처지에 빠졌다면 몰라도 한 전 대표의 힘만으로 큰 파괴력을 발휘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견해는 과거 ‘DJ 야당’이 정치적 위기를 맞아 즐겨 사용하던 장외집회 방식은 사실상 효험을 다한 것으로 요약된다. DJ 시절의 장외투쟁이 기본적으로는 호남의 방어적 지역주의 정서에 토대를 둔 것이었는데, 그러한 지역주의 자체가 변화의 큰 흐름을 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홍 대표는 또한 “민주당의 한화갑 카드 ‘올인’은 조순형-추미애 체제의 기본 컨셉트에도 반하는 전략”이라고 진단했다.

사실 민주당이 지난해말 조순형-추미애 체제를 선택한 것은 동교동당, 호남당이라는 기존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민주당은 전당대회 직후 지지율이 최고로 상승하는 ‘조순형 효과’를 맛봤다. 그러나 한화갑 사태를 계기로 소속 의원 전원이 농성에 참여하고 광주 집회로 달려감으로써 그나마 민주당이 쌓았던 변신 성과를 하루아침에 원점으로 되돌려놓고 있는 것으로 홍 대표는 지적했다. ‘DJ 야당’이 장외집회를 하더라도 호남을 피하고 서울 보라매공원을 택하는 세심한 고려를 했던 것과 비교해, 이번에 민주당이 곧바로 광주로 달려가는 것도 궁색한 대목으로 꼽힌다.

조용휴 폴앤폴 대표도 ‘한화갑 올인’의 효험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조 대표는 “민주당의 열성적 지지자를 결집하는 나름의 효과는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검찰 출두를 거부하면서 노 대통령과 정동영 의장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는 모순된 태도, 즉 자신의 허물을 눈감으면서 남탓만 해갖고는 공감대를 넓히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때리기 효과 있을 것”

그러나 반대 견해도 존재한다. 김형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부소장은 “민주당이 내건 승부수의 초점은 노 대통령보다는 정동영 의장 때리기”라며 “정 의장이 최근 열린우리당 상승세의 견인차 역할을 한 점에 비춰볼 때 정 의장을 싸움 한복판에 끌어들이는 것은 나름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또한 “한 전 대표의 행동에 이어 정범구, 김홍일 의원이 복당하는 연쇄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이런 사건들을 통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서 떠도는 부동층을 좀더 장기간 묶어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한화갑 올인’으로 판세를 완전히 반전시키진 못하더라도 열린우리당의 상승세를 저지하는 등 시간을 버는 효과에 무게를 두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정창교 전자정보국장은 “자체 분석 결과 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과 경선자금 수사가 형평성을 결여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그러나 그것만으로 민주당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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