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공천=당선’ 공식에 금이 가는 대구 민심, 그 변화의 싹을 현장에서 확인하다
대구= 글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민심을 들여다보겠다고 대구를 향하면서도 맘은 내내 편치 않았다. 사흘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우연히’ 취재에 응한(혹은 당한) 몇몇 대구 시민들의 마음을 합쳐 ‘민심’으로 모자이크하는 방식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설 연휴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구·경북 정당선호도의 변화 폭은 광주·전남이나 부산·경남에 비해 크지 않아, 기자의 무딘 ‘더듬이’가 이를 포착하는 데는 무리가 따를 것으로 판단했다. “변화의 싹이 보이지 않으면 단 한줄도 쓰지 않아도 좋다”는 데스크의 격려를 위안 삼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민심에 가장 민감한 이들이 누굴까 고민했다. 4·15 총선을 앞두고 매일 현장을 누비는 정치인들만큼 민감한 더듬이를 가진 사람들은 없을 것 같았다. 1월27일 대구에 도착해 기자가 처음 찾아간 곳은 정치 신인들의 선거사무소였다. ‘렌즈의 굴절도’를 감안해본다면, 실체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40:40:20의 민심 구조 대구 남구에 공천 신청을 한 한나라당 신동철(43)씨의 선거사무소를 찾았다. 신씨에게 “손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손맛이란, 유권자들과 악수를 나눌 때 전해지는 느낌을 일컫는 정치권의 은어다. 1987년 통일민주당 시절부터 17년가량 중앙 정치권에 몸담았던 신씨는 기자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다 안다는 듯이 얘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쪽 민심은 대선에서 두번이나 패배하면서 이미 변하기 시작했고 ‘차떼기’를 거치면서 흔들리고 있다. 한나라당의 ‘심장’인 이곳이 심하게 흔들릴 정도니 변화의 조짐은 분명하다. 싹쓸이해줬더니 대구를 위해 한 일이 뭐가 있느냐고 묻는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아예 접었고, 대신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팽배해졌다. 한나라당이 믿고 의지할 만한 당인지, 좀 참고 견디면 다음엔 집권할 가능성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한나라당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 이제 대구에서 한나라당 후보이기 때문에 당선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신씨는 현재의 대구 민심을 ‘40:40:20’으로 파악했다. 2002년 대선 이전, 한나라당과 비(非)한나라당의 지지 비율이 80:20이었던 데 반해, 종전의 80%가 여전히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40%와 지지를 유보하고 있는 40%로 갈라졌다는 것이다.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의 대구 지역 득표율이 각각 77.8%, 18.7%, 3.3%였고, 설 이후 <한겨레>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정당선호도가 36.8%와 19.5%, 그리고 무응답층이 32.8%였던 것에 비춰보면 얼추 들어맞는 셈이다. 신씨의 진단대로라면 문제의 ‘유보층 40%’만큼이 대선 이후 새로 생겨난 것이다. 그는 “공천 등 한나라당의 변화 과정을 지켜본 뒤 판단하겠다는 잠재적 지지층으로 한나라당 하기에 따라 출렁거리는 쪽이지 우리를 완전히 떠날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엔 북구 동화백화점 부근 ‘배기찬 연구소’로 발길을 돌려 열린우리당으로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배기찬(42)씨를 찾아갔다. 변화에 대한 진단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 대통령의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정책보좌를 시작해 청와대 정책관리비서관을 역임한 배씨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특히 우리당 전당대회 이후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배씨가 진단한 대구 민심은 열린우리당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박재욱 한나라당 의원(경북 경산·청도)이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억대의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면서 민심은 더욱 빠른 속도로 한나라당을 이탈하고 있다. 경쟁 없는 독점 구조가 결국 부패의 온상이 됐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되다보니 지역 돌보는 일은 뒷전이고 뒷돈 받아 챙기는 일에만 열심이었던 것 아니냐고 여기는 것이다.”
“이강철씨가 실세긴 실세냐?”
한나라당 정치 신인 신씨에게 ‘유보하고 있는 40%’의 존재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이미 멀리 떠나와서 이젠 우리당 하기 나름”이라고 반박한 뒤 “정동영 효과로 노무현당이라는 공세도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믿음직한 후보군을 내세워 힘 있는 여당이 침체된 대구 경기를 살릴 수 있다고 호소하면, 결국 변화의 바람이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망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지만, ‘수성’을 해야 할 한나라당과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열린우리당의 예비주자의 민심 진단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적어도 한나라당의 ‘공천=당선’ 공식에는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나라당 소속의 박성태 대구시의원은 “지난해 10월 지방의원 재·보궐 선거 당시 수성구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무소속 후보에게 낙선한 사건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며 “아무리 후보에게 결함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한나라당 깃발로 나선 후보가 떨어진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최근 몇년 사이에 없던 현상”이라고 말했다.
1월28일 서울의 남대문시장격인 대구 서문시장을 찾기 위해 택시를 탔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택시기사에게 “총선이 다가오는데 손님들이 정치 얘기를 하느냐”고 물었다. “간혹 있기는 한데 주로 욕만 한다”고 했다. 조순형 민주당 대표의 대구 출마에 대해 물었다. “사람이 깨끗하고 강직하니까 찍어줘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왜 부산이 아니고 대구냐는 사람도 있더라”고 답했다. 전날 취재를 바탕으로 변화 조짐도 캐물었다. “대구 경제 나빠진 것은 YS, DJ 때부터였고 노무현이가 정치를 잘못해서 더 나빠진 것이지 왜 그게 한나라당 의원들 탓이냐”고 퉁명스런 답이 돌아왔다.
서문시장에서 만난 시민과 상인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얘기는 “먹고살기 힘들다”와 “이젠 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구에 살고 있다는 주부 이혜옥(56)씨는 “대구 경제가 워낙 어렵다보니 적어도 1곳 정도는 여당을 뽑아줘야 한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한다”며 “그런데 이강철씨가 실세긴 실세냐”고 되물었다.
지역신문에 이름이 많이 오르내리긴 하는데, 정말 노 대통령 측근을 찍으면 대구 경제에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지역에서 공천 경합을 벌이고 있는 한나라당의 강신성일 의원과 박창달 의원에 대해서는, “한 사람은 그만했으면 좋겠고, 다른 사람은 누군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 주부는 2002년 대선 전까지는 한나라당의 열성 지지자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지역 재계의 고위 인사도 “어느 지역이든 몰표행위는 사라져야 한다”며 “경쟁 없는 독점 구도에서는 무능과 부패가 판치고, 결국 그 지역 발전은 없고 나라만 망친다는 것이 경험의 소산 아니냐”는 말로 자신의 바람을 에둘러 표현했다.
한나라당의 정치적 구심점이 변수다
한나라당 이외의 다른 정치세력들은 좀처럼 발붙이기 힘들 것으로 여겨졌던 대구에 미세하게나마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이를 추세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여론조사가 거의 유일하다. <한겨레> 정기 여론조사 결과 중 대구 지역의 각 정당의 선호도를 보면, 열린우리당은 2003년 9월20일(당시엔 국민참여통합신당 주비위원회) 민주당과 분당한 뒤 4.2%에서 시작해 5.1%(10월18일) → 8.9%(11.19일) → 9.7%(12월20일)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더니, 설 이후 실시한 조사에서는 19.5%로 급상승했다. 같은 기간 한나라당은 57.3%에서 시작해 SK 비자금 사건으로 촉발된 대선자금 정국에서 34.6%(10월18일) → 21.5%(11월19일)로 급락했다가 설 연휴 뒤 36.8%로 조사됐다. 분당 뒤 민주당은 15.5%(9월20일) → 3.1%(10월18일) → 15.2%(11월19일) → 9.1%(12월20일) → 7.3%의 정당선호도를 보였다. 여론조사를 통해본 대구지역 민심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체 혹은 하락, 열린우리당의 상승으로 요약된다.
이런 변화 양상에 대해 홍덕률 대구대 교수(사회학)는 “김대중 정부 때는 이회창이라는 정치적 구심을 중심으로 ‘빼앗긴 권력을 되찾아야 한다’며 뭉쳤지만, 이젠 현 정부의 권력을 이용하기 위해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지역 이익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현실론이 지역 유지와 기관장 등 이른바 여론 주도층에서부터 고개를 들고 있다”며 “호남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도 다양한 정치이념을 가진 여러 정당이 공존하고 경쟁하면서 이성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정치적 다원구조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지역 여론조사기관인 에이스리서치의 조재목 소장은 “대구 민심의 변화는 한나라당에서 기인했고 따라서 당분간은 한나라당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향후 공천 과정에서 불거질지도 모를 균열을 봉합할 정치적 구심점의 유무에 따라 파장의 크기가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대구 중앙로 거리. 한나라당의 ‘심장’인 대구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40:40:20의 민심 구조 대구 남구에 공천 신청을 한 한나라당 신동철(43)씨의 선거사무소를 찾았다. 신씨에게 “손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손맛이란, 유권자들과 악수를 나눌 때 전해지는 느낌을 일컫는 정치권의 은어다. 1987년 통일민주당 시절부터 17년가량 중앙 정치권에 몸담았던 신씨는 기자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다 안다는 듯이 얘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쪽 민심은 대선에서 두번이나 패배하면서 이미 변하기 시작했고 ‘차떼기’를 거치면서 흔들리고 있다. 한나라당의 ‘심장’인 이곳이 심하게 흔들릴 정도니 변화의 조짐은 분명하다. 싹쓸이해줬더니 대구를 위해 한 일이 뭐가 있느냐고 묻는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아예 접었고, 대신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팽배해졌다. 한나라당이 믿고 의지할 만한 당인지, 좀 참고 견디면 다음엔 집권할 가능성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한나라당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 이제 대구에서 한나라당 후보이기 때문에 당선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신씨는 현재의 대구 민심을 ‘40:40:20’으로 파악했다. 2002년 대선 이전, 한나라당과 비(非)한나라당의 지지 비율이 80:20이었던 데 반해, 종전의 80%가 여전히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40%와 지지를 유보하고 있는 40%로 갈라졌다는 것이다.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의 대구 지역 득표율이 각각 77.8%, 18.7%, 3.3%였고, 설 이후 <한겨레>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정당선호도가 36.8%와 19.5%, 그리고 무응답층이 32.8%였던 것에 비춰보면 얼추 들어맞는 셈이다. 신씨의 진단대로라면 문제의 ‘유보층 40%’만큼이 대선 이후 새로 생겨난 것이다. 그는 “공천 등 한나라당의 변화 과정을 지켜본 뒤 판단하겠다는 잠재적 지지층으로 한나라당 하기에 따라 출렁거리는 쪽이지 우리를 완전히 떠날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대구시지부장인 이해봉 의원이 의정보고회를 하고 있다(왼쪽). 열린우리당 대구 출마 예정자들이 대구 서문시장에서 일일 판매원 체험을 하고 있다(오른쪽).

대구 앞산에서 바라본 시가지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