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155명이 발의한 친일청산특별법 우여곡절 끝에 수정안 마련 2월 국회 상정
우리도 프랑스나 독일처럼 반민족 행위의 역사를 깔끔히 청산할 수 있을까? 우리 내부의 친일 잔재는 청산하지 못하면서 일본쪽의 독도 망언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허위의식은 걷어낼 수 있을까?
국회 민족정기모임(회장 김희선 의원·열린우리당)이 주도해 제정하려는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특별법)이 국회 심의과정에서 부닥친 우여곡절은 이런 질문에 단서를 제공한다. 특별법은 1948년 구성됐다가 활동을 중단당한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정신을 되살려, 대통령 직속으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자는 법이다. 이를 통해 누가 어떤 친일행위를 했는지를 규명해 ‘처벌’보다는 최소한 역사의 기록에라도 남기자는 내용이다.
왜 우린 매국 행위를 청산하지 못하나
김희선 의원을 비롯한 민족정기모임 회원들은 지난해 8월14일 국회의원 155명의 서명을 받아 특별법을 발의했다. ‘독립군의 딸’인 김 의원과 강인섭·김원웅·송영길·설훈·이종걸 의원 등 28명이 모여 2001년 6월 민족정기모임을 만든 이래 벌인 일련의 작업을 법안으로 구체화한 것이었다. 이 모임은 2002년 2월28일 친일반민족행위자 708명의 명단을 학계와 함께 조사해 발표하는 등 꾸준히 여론환기 활동을 펴왔다. 그러나 국회 지도부는 특별법이 발의 요건을 갖춰 접수됐음에도 불구하고 안건을 심의할 상임위원회를 배정하지 않았다. 사안의 성격상으로는 행정자치위원회 소관이 될 터인데 행자위가 받지 않았고 다음으로 받을 차례인 운영위원회도 미적거렸다고 한다. 국회법은 의안을 접수 2주일 이내에 소관 상임위를 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족정기모임은 이 문제를 다룰 별도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는 대안을 냈다. 그 결과 최초 발의로부터 두달여가 지난 11월7일 과거사진상규명특위를 가까스로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독립운동 후예 외에 다른 의원들은 참여를 꺼려 이 특위는 강인섭 위원장(한나라당)을 포함해 9명이 참여하는 초미니 위원회가 됐다. 김희선 의원은 “이쪽저쪽 모두 제 자식이 아니라며 툭툭 쳐대던 상황에서 가까스로 아기를 낳아줄 엄마를 찾은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과거사특위는 두 차례의 공청회를 거친 뒤 법안을 의결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겼다. 법사위는 12월26일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위원장 김용균 한나라당 의원)로 세부 심사를 맡겼다.
파란은 법안심사소위에서부터 일어났다. 심사소위의 12월30일치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는 “국민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이뤄야 할 국회와 정부가 오히려 사회 갈등을 조장하고 5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행하는 진실 규명은 증인 또는 증거의 소실 등으로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이라고 밝혔다. “이런 법은 만들면 안 된다”는 심사소위의 기류를 응축한 보고서였다.
진실 밝혀 국민화합… 후손 반발해 국론 분열
실제로 상당수 소위 위원들은 심의과정에서 “원칙적으로 법 제정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각론에서 이런저런 이의를 달고 나서 진의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정부가 나설 게 아니라 민간 학계에 맡기자” “과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아버지의 일제 때 검찰 서기 경력이 정치쟁점화됐듯이 정치적 활용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역사를 왜곡한 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 조선사편수회 관련자는 빼자”는 등의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김희선 의원은 “이 법안은 잘못에 대한 규명, 반성, 화해라는 과정을 거쳐서 국민화합을 이루자는 법”이라며 “2002년 8월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한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76.7%의 다수가 법 제정을 찬성했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최용규 의원도 “자유당 정부 각료 60여명 가운데 30명이 친일 매국노였다”며 “이런 부분은 역사를 꼭 한번 짚어보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심사소위가 해를 넘기며 법안 심사를 미루자 독립유공자유족회 등 시민단체 회원 20여명이 김용균 소위 위원장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친일청산 반대 의원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법안심사소위는 1월7일 심의를 재개해 나름의 절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김용균 소위 위원장이 심의 막판에 “최종적으로 정부 의견은 뭐냐”고 물은 데 대해 김주현 행정자치부 차관이 입법 반대 입장을 밝혀 다시 파란이 일었다. 김 차관은 “법안 내용 중 처벌 대상과 관련해 후손들이 반발해 국민적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친일 진상규명에) 나설 게 아니라 학계로 넘기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순간 분개한 송영길 의원(열린우리당)이 “도대체 노무현 정부의 차관 맞느냐”며 고함을 치면서 일어섰으며, 김용균 소위 위원장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정부와 여당 사이에도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심의를 계속할 수 없다”며 또다시 심의를 유보했다. 이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김 차관을 붙들고 “진의가 뭐냐” “정부의 공식 입장 맞느냐”며 항의하던 끝에 이날 밤 늦게 김 차관이 몇 시간 전 발언은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김희선 의원은 다음날 고건 국무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정부는 국회에서 의원입법을 하면 받아서 집행할 따름”이라는 답변을 받아냈다.
법사위는 이런 과정을 거쳐 1월8일 폐회된 임시국회 마지막 날까지 △진상규명위원회 활동 시한을 애초의 5년에서 3년으로 단축 △조선사편수회 대목은 규명 대상에서 삭제 등의 조정안을 만들어냈다. 국회 본회의 처리까진 마치지 못했지만, 2월 임시국회에서 특별법을 탄생시킬 토대는 그럭저럭 마련한 셈이다.
‘언론’ 적시한 대목이 두루뭉술해진 이유
말 그대로 과거사로 볼 수도 있는 이 문제를 놓고 오늘의 국회에서 격렬한 진통이 벌어지는 데는 까닭이 있는 것 같다. 즉, 우리 사회 지배구조 이면에 청산되지 않은 친일세력의 잔영이 여전하다는 이야기다. 실례로 국회 법사위는 과거사 특위가 의결한 애초의 ‘친일반민족행위의 정의’ 가운데 ‘언론·예술·학교·종교·문학 그 밖에 문화기관이나 단체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를 찬양하고 내선융화·황민화운동에 앞장서거나…’에서 ‘언론’을 빼도록 했다. 그 결과 수정안은 ‘문화기관이나 사회단체를 통하여…’로 다소 두루뭉술해졌다.
김희선 의원은 “국회의원들이 일제 때 친일 보도를 했던 조선일보·동아일보 등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눈치를 보는 기류가 뚜렷했다”며 “오늘의 기득권 구조와 친일 진상규명이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글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누가 친일파 청산을 반대하는가. ‘독립군의 딸’인 김희선 의원은 민족정기모임을 이끌며 친일행위청산법 제정을 위해 발로 뛰었다.
김희선 의원을 비롯한 민족정기모임 회원들은 지난해 8월14일 국회의원 155명의 서명을 받아 특별법을 발의했다. ‘독립군의 딸’인 김 의원과 강인섭·김원웅·송영길·설훈·이종걸 의원 등 28명이 모여 2001년 6월 민족정기모임을 만든 이래 벌인 일련의 작업을 법안으로 구체화한 것이었다. 이 모임은 2002년 2월28일 친일반민족행위자 708명의 명단을 학계와 함께 조사해 발표하는 등 꾸준히 여론환기 활동을 펴왔다. 그러나 국회 지도부는 특별법이 발의 요건을 갖춰 접수됐음에도 불구하고 안건을 심의할 상임위원회를 배정하지 않았다. 사안의 성격상으로는 행정자치위원회 소관이 될 터인데 행자위가 받지 않았고 다음으로 받을 차례인 운영위원회도 미적거렸다고 한다. 국회법은 의안을 접수 2주일 이내에 소관 상임위를 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족정기모임은 이 문제를 다룰 별도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는 대안을 냈다. 그 결과 최초 발의로부터 두달여가 지난 11월7일 과거사진상규명특위를 가까스로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독립운동 후예 외에 다른 의원들은 참여를 꺼려 이 특위는 강인섭 위원장(한나라당)을 포함해 9명이 참여하는 초미니 위원회가 됐다. 김희선 의원은 “이쪽저쪽 모두 제 자식이 아니라며 툭툭 쳐대던 상황에서 가까스로 아기를 낳아줄 엄마를 찾은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과거사특위는 두 차례의 공청회를 거친 뒤 법안을 의결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겼다. 법사위는 12월26일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위원장 김용균 한나라당 의원)로 세부 심사를 맡겼다.

친일청산특별법은 2월 임시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지난 1월7일 국회 법사위 밥안심사소위에서 김희선 의원과 송영길 의원이 정부쪽의 답변을 듣고 있다.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