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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어찌 전쟁을 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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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8-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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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 멎은 이라크 곳곳에 새겨진 전쟁의 흔적… 지금 상처받은 이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갈까

사진/ 미군의 총알세례는 구석구석 씻을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후세인 체포작전이라는 명분으로 가해지는 무차별 폭력행위에 의해 이라크 주민들은 언제 다시 닥칠지 모를 죽음의 순간을 걱정한다.
전쟁은 상처를 남깁니다.

온 도시를 수놓은 총탄자국.

초점을 잃은 눈동자.

산을 이룬 탄피와 또다시 자유를 가른 철조망은 옛 문명의 도시 바그다드의 오늘입니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바그다드에는 신밧드의 나는 양탄자와 소원을 들어준다는 요술램프는 간 데가 없습니다.


단지 후세인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미군들과 이대로는 물러설 수 없다며 게릴라식으로 미군을 공격하는 옛 이라크 전사들이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습니다.

총성이 멎은 자리에는 아파 보채는 갓난아이의 눈물에 한숨짓는 여인네들이 있고, 탄피를 장난감 삼아 놀며 맨발로 썩은 하수구를 뒤지는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곳에는 가슴에 상처를 지닌 사람들을 감싸안아줄 이들이 없습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시린 상처와 폭력의 흔적들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상처는 단지 아물 뿐, 그 흔적은 영원히 남게 마련입니다.



진료순서를 기다리던 한 여인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차례가 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인은 계속 말이 없다.

  


몸으로 겪어낸 전쟁은 끝났지만 이 여인에게는 씻기 어려운 상처가 남았다. 다친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땅에 털썩 주저앉은 여인의 눈빛에서 이라크의 미래를 읽어낼 수는 없었다.





표적은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 사람의 머리와 가슴의 형상을 한 이 철판 표적에 새겨진 무수한 총알구멍을 통해 새겨지는 그림자가 어지러울 만큼 흉물스럽다.

  


격렬한 전투의 순간은 지나갔지만 그 흔적만큼은 바그다드 어디에서든 쉽게 찾을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상대를 피한 총알은 엉켜진 철조망 뒤 담장을 뚫었고 잊기 어려운 가슴속 상처를 그려놓았다.





미군들이 쳐놓은 철조망은 통행금지를 뜻한다. 자신들의 땅에 놓인 난데없는 철조망을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매일같이 노닐던 거리였지만 이젠 멀리 돌아가야 한다. 자신들의 땅을 잃어가는 것이다.

  


열세살 알라위(사진 뒤)는 자신의 집 벽에 새겨진 총알자국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생수를 권하던 알라위는 그저 자신이 견뎌야 할 삶일 뿐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사진/ 맨발로 탄피밭을 헤매던 아이는 카메라의 시선을 의식하자 피함 없이 맞서 쳐다본다. 눈에는 알 수 없는 증오가 배어 있었으며 흘러내린 누런 콧물을 보고 나서야 다시 어린 동심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라크=사진·글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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