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지 공사로 상처입은 도심의 녹지를 지키기 위해 ‘투사’로 변신한 주민들
“수십년 오르내린 산인데 이게 뭐예요”
설 연휴를 끝내고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을 찾은 주민들은 정상에 오르자마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산 정상 9천평을 메우고 있던 수목 1천여 그루가 전기톱에 베어져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1월29일 아침,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사업본부)가 주민들에게 통보하지 않고 배수지건설 기초공사를 강행한 탓이다. 마포구의 유일한 녹지라던 성미산은 이제 ‘대머리’가 됐다.
‘성미산 개발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대책위)는 벌목작업이 있던 다음날부터 정상에 3개의 텐트를 쳐놓고 밤샘 농성을 하고 있다. 주민들이 설 연휴까지 반납한 채 영하의 추운 산 속에서 새우잠을 자며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중장비를 맨몸으로 막고 있는 형국이다. 대책위는 시당국이 추운 날씨로 인해 등산객이 없는 틈을 타서 2시간 만에 기습적으로 나무를 베어냈다고 주장한다. 김종호 대책위원장은 “다른 방법도 있는데 굳이 산을 훼손하면서 배수지를 만들 필요는 없다. 행정당국의 전근대적 발상이다”며 배수지 계획의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를 위해 대책위는 2월4일 시청 앞에서 150여명의 주민들과 함께 항의시위를 했고, 2월8일 500여명의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미산 보전의 염원을 담은 촛불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사업본부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성미산 배수지공사는 오래전에 계획이 확정된 만큼 처음부터 재검토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김광용 시설과장은 “가뜩이나 반발 때문에 공사가 지연된 실정인데 미리 주민들에게 통보하면 나무를 자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벌목이 ‘기습공사’가 아니라 이미 계획한 대로 실행한 것임을 강조했다.
성미산은 작은 산이지만 녹지가 많지 않은 서울시 마포구에서 소중한 생태공원의 역할을 해왔다. 30년 이상 된 자연수목들이 빼곡이 들어서서 천연기념물인 소쩍새를 포함해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처이자, 주변 어린이들의 생태학습장이 돼왔다. 인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유현영씨는 “아이들이 아침마다 나들이가는 장소라 산 속속들이 아이들의 추억이 배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또한 그는 1월30일 어린이들과 함께 서울 시청에 항의하러 갔을 때 정문 셔터까지 내려버린 시청의 처사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성미산 보전을 위한 주민들의 투쟁은 오래전부터 계속돼왔다. 2001년 7월 주민들은, 산기슭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한양재단이 부지에 아파트를 건설할 계획이고, 이 계획에 맞춰 정상에 배수지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김종호 대책위원장은 “한양재단은 배수지 건설을 위해 산이 헐리면 바로 아파트를 지을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업본부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성미산 배수지 문제는 아파트 건설과도 이어지는 복잡한 문제다. 배수지 계획을 알게 된 주민들은 즉시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연대’(성지연)를 만들어 2년 가까이 반대투쟁을 벌여왔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성미산 보전을 공약으로 내건 현 구청장은 물론이고, 지역구 의원, 이명박 서울시장과 면담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결과는 묵묵부답이었다. 성미산을 지키자는 주민여론이 확산되자 성지연은 올해 1월 마포지역 내 여러 단체들과 연대해 대책위를 꾸렸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서울시 배수지 계획의 전체적인 방향을 재고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경재 교수(서울시립대 건축도시조경학부)는 애초 여러 방식을 충분히 검토하고 계획을 세워야 했다고 지적한다. 배수지 건설 같은 장기계획을 공법, 물 사용, 환경에 끼치는 영향 등에 대한 전문조사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끌어오다 보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배수지 규모를 가능한 한 줄이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배수지 계획은 성미산으로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 제2, 제3의 성미산이 나오지 않는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성미산을 사랑하는 주민들은 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날이 따뜻해질수록 등산객이 많아지고, 그만큼 성미산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커지기 때문이다. 산꼭대기 텐트에서 추운 밤을 보내고 있는 주민들은 이번 겨울이 가장 큰 고비라고 한다. “봄·여름에 이런 벌목을 했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리는 한 할아버지의 말은 주민들의 심정을 잘 대변하고 있다. 대책위는 봄이 오면 벌목현장에 다시 나무를 심는 행사를 열 예정이다. 성미산에도 봄은 올 것인가. 사진 류우종 wjryu@orgio.net/ 글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서울시의 성미산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마음을 모으듯 연결해 걸어놓은 개발 반대 그림 현수막.
성미산 보전을 위한 주민들의 투쟁은 오래전부터 계속돼왔다. 2001년 7월 주민들은, 산기슭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한양재단이 부지에 아파트를 건설할 계획이고, 이 계획에 맞춰 정상에 배수지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김종호 대책위원장은 “한양재단은 배수지 건설을 위해 산이 헐리면 바로 아파트를 지을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업본부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성미산 배수지 문제는 아파트 건설과도 이어지는 복잡한 문제다. 배수지 계획을 알게 된 주민들은 즉시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연대’(성지연)를 만들어 2년 가까이 반대투쟁을 벌여왔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성미산 보전을 공약으로 내건 현 구청장은 물론이고, 지역구 의원, 이명박 서울시장과 면담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결과는 묵묵부답이었다. 성미산을 지키자는 주민여론이 확산되자 성지연은 올해 1월 마포지역 내 여러 단체들과 연대해 대책위를 꾸렸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서울시 배수지 계획의 전체적인 방향을 재고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경재 교수(서울시립대 건축도시조경학부)는 애초 여러 방식을 충분히 검토하고 계획을 세워야 했다고 지적한다. 배수지 건설 같은 장기계획을 공법, 물 사용, 환경에 끼치는 영향 등에 대한 전문조사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끌어오다 보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배수지 규모를 가능한 한 줄이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배수지 계획은 성미산으로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 제2, 제3의 성미산이 나오지 않는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성미산을 사랑하는 주민들은 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날이 따뜻해질수록 등산객이 많아지고, 그만큼 성미산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커지기 때문이다. 산꼭대기 텐트에서 추운 밤을 보내고 있는 주민들은 이번 겨울이 가장 큰 고비라고 한다. “봄·여름에 이런 벌목을 했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리는 한 할아버지의 말은 주민들의 심정을 잘 대변하고 있다. 대책위는 봄이 오면 벌목현장에 다시 나무를 심는 행사를 열 예정이다. 성미산에도 봄은 올 것인가. 사진 류우종 wjryu@orgio.net/ 글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 나무들이 무자비하게 잘려 넘어져 있는 성미산 능선. |
![]() 성미산 곳곳에는 성미산을 살려달라는 주민들의 애원이 적힌 리본이 매달려 있다. |
![]() 1월29일 오전 서울시가 나무를 잘라내자 주민 대책위원들이 1월30일부터 성미산 정상에 텐트를 치고 성미산 살리기 농성을 하고 있다. |
![]() 2월4일 오후 ‘성미산 개발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 주최로 서울 시청을 항의 방문한 주민들 사이에서 어린이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
![]() 2월8일 밤 성미산에 모여 촛불시위를 하는 마포구 성산동 주민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