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통일의 염원을 자전거에 싣고…

385
등록 : 2001-11-21 00:00 수정 :

크게 작게

금강산 일대에서 열린 한겨레자전거평화대행진… 왕복 24km 달리며 이색 통일체험

사진/ 삼일포를 향해 자전거로 달리고 있는 참가자들. 뒤로 금강산이 보이고 도로 양옆에는 철책이 설치되어 있다.
붉은색 단풍이 금강산 골짜기에 뒤엉켜 있는 늦가을. 북녘땅을 밟은 남쪽 사람들은 1천개의 자전거 바퀴에 통일의 염원을 싣고 금강산 일대를 내달렸다. 500대의 자전거가 두줄로 1km 가까이 늘어선 행렬은 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져 있었다. 구름에 가려 온전히 자태를 드러내지 않던 금강산도 이날만큼은 남녘 동포들을 맞아 제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자전거를 타고 금강산 관광에 나선 이들은 통일을 위한 물꼬를 트고 있다는 뿌듯함에 찬바람이 얼굴을 때려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바로 거기에 통일의 손을 마주잡아야 할 북녘 동포들이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일대는 지난 11월11일부터 13일까지 통일의 열기에 휩싸였다. 민족통일과 인류평화를 가슴에 새긴 이들이 사단법인 자전거사랑전국연합회(회장 강운태·이하 자전거연합회)와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사장 변형윤)이 함께 마련한 ‘제1회 한겨레자전거평화대행진’에 나섰다. 초등학생부터 70대 할머니·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577명이 참가한 이번 행사는 눈으로 금강산을 만끽하고, 주변에서 자전거를 타며, 자신의 자전거를 고성군민에게 전달하는 금강산 3배 즐기기였다.

지난 13일 아침 8시40분 무렵 온정각 문화회관 앞뜰에는 500대의 자전거가 행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맞는 자전거를 한대씩 나눠 탄 참가자들은 문화회관에서 삼일포까지의 왕복 24km 자전거행진에 나서려는 참이었다. 자전거 대열의 맨 앞에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삼성초등학교 ‘그린스카우트’ 대원 35명이 있었다. 이들은 매일 아침마다 한 시간씩 4km 정도 자전거를 타며 기량을 닦아왔다. 그 뒤로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입은 자전거연합회 지역본부 회원들과 일반 참가자들이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자전거행진에 나서는 참가자들은 남다른 경험에 흥분된 표정이었다. 50여년 동안 자전거를 탔다는 자전거연합회 서울본부 회원인 조재만(64·서울시 종로구)씨는 “민족의 명산인 금강산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며 “더구나 북녘땅에서 자전거를 탈 생각을 하니 찬바람에도 신이 난다”고 덧붙였다. 삼성초등학교 5학년 최동필(12·서울시 관악구)군은 “남쪽의 한적한 시골마을 같은 곳이 북한땅이라는 게 놀랍다. 북한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면 더 좋았을 것이다. 평소에 자전거 연습을 많이 했는데 구간이 짧아 아쉽다”고 말했다.

사진/ 금강산에서 최고의 명소로 꼽히는 만물상. 이곳에는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이 있지만 멀리서 바라봐야 한다.
자전거 대열은 운곡리와 봉화리, 구음리를 지나 삼일포 주차장에 도착했다. 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자전거들은 정해진 길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금강산 관광을 위해 새로 포장한 도로 양쪽에 사람의 키보다 훨씬 높은 철책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책이 서로를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 너머에는 마주보는 동포들이 있었다. 고성군 주민들은 농한기의 국토재정비 기간에 도로 정지작업을 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인민학교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현장으로 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자전거 대열이 손을 흔들며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전하면 북한 주민들은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화답했다. 어디론가 바삐 가던 어떤 이는 “조국통일에 매진합시다”라는 말을 전해오기도 했다. 도로 주변에 있는 인민학교에서는 수업 시작을 알리는 ‘학교종’ 소리가 들려오고, 게시판에 붙어 있는 작은 소식도 눈에 들어왔다. 비록 손을 마주잡고 인사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관광버스에서 내려와 자전거로 이동하는 참가자들이 동포애를 육성과 표정으로 느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삼일포 관광까지 3시간 정도 이어진 자전거행진. 참가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북녘땅을 달린 것만으로도 감격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모든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행사 광고를 보고 참가신청을 했다는 박점식(31·전남 목포시)씨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며 이렇게 말한다. “땅끝마을에 살면서 사업을 5일씩 내팽개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눈앞에 있는 동포를 보면서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현실에 울컥했습니다. 다음에는 남쪽에서는 한라산이나 땅끝마을에서 출발하고, 북쪽에서는 백두산이나 중강진에서 출발한 자전거 행렬이 금강산에서 만나 공동행사를 하면 좋겠습니다.”

그의 바람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육로관광길이 뚫려야 한다. 그래야만 지척에 두고도 4시간여 동안 뱃길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덜고, 남과 북의 자전거가 오작교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전거행진을 마치고 출발지로 돌아온 참가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새긴 스티커를 자전거에 붙였다. 하지만 북녘 동포를 만나지 못하고 자전거는 (주)현대아산을 통해 북쪽에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통일엽서 보내기에서 어느 참가자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하나’라고 썼지만, 아직도 서로를 보듬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금강산만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만남을 위한 작은 시작이었을 뿐이다.



참가자들이 온정각 문화회관 앞에서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500여명이 출발해 430여명이 자전거로 완주했다.

  


자전거 행진을 앞두고 열린 전야제에서 참가자들이 불꽃을 흔들고 있다. 가족들이 함께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도 많았다.





북녘 땅에서 자전거로 24km 를 달린 참가자들이 문화회관으로 돌아오고 있다.

  


참가자들은 자전거 행진 전날 해금강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군사시설이 있어 사진배경을 자유롭게 선택하기 힘들었다.





한겨레자전거평화대행진의 마지막을 장식한 통일엽서. 받는 이의 주소를 쓸 수는 없었지만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만은 한결같았다.

  


자전거사랑전국연합회 회원들이 전야제에서 '우리의 소원'을 목놓아 부르고 있다.



금강산=사진 김종수 jongsoo@hani.co.kr
글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