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제주 해군기지 공사의 불법성을 감시하는 평화활동가의 목 위로 대형 크레인 줄이 겹쳐지고 있다. 마치 국가폭력에 목 졸려 질식돼온 제주도의 과거와 오늘을 은유하는 듯하다.
② 강정마을 ‘알점방’ 주인 김도실(76)씨가 3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 김종원(1935년생)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다. 남편은 가족 15명이 몰살당한 뒤 평생 ‘신경성 우울증 노이로제’로 고통받았다.
③ 경찰은 1948년 11월16일 강정마을 주민들이 가족과 이웃의 안녕을 빌던 ‘큰당’ 옆 밭에서 10명을 학살했다. 피로 얼룩졌던 학살 현장은 현재 감귤나무로 푸르다.
④ 제주 곳곳에선 4·3 때 학살된 가족을 한꺼번에 모시는 제사상이 차려진다.
4·3 희생자의 신발.
제주의 무속은 풀 길 없는 억울한 죽음을 다독이는 ‘해원(解寃)의 손길’이다.
제주의 무덤 곁을 지키는 동자석.
⑧ 철조망으로 출입을 막은 해군기지 공사장 너머로 범섬이 보인다. 범섬은 고려 공민왕이 최영을 보내 ‘목호’(제주에서 말을 기르던 원나라 관리)와 그들을 도운 제주도민들을 토벌한 곳이다. 제주도민에게 육지의 왕조는 이국의 왕조와 다를 게 없었다.
제주4·3평화공원(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행방불명자 묘지. 주검 없이 이름만 새긴 비석들 위로 안개가 흐른다. 정처를 갖지 못하고 끝없이 떠도는 희생자들의 넋처럼 보인다.
강정은 제주 유일의 쌀 경작지였다. 좋은 물(1급수)이 좋은 쌀(강정 특산품 ‘팔금’)을 키웠다. 경찰은 ‘산사람들’의 식량줄을 끊으려고 강정을 특별 관리했다. 논을 중심으로 분포했던 마을을 소개해 현재의 강정마을로 몰아넣었다. 주위에 돌담을 치고 주민들을 시켜 경계했다. 지금의 강정 지도는 4·3이 만들었다. 국가폭력은 대를 이어 쉬지 않고 일한다. 4·3이 변조한 강정이 다시 뒤틀리고 있다. 해녀가 쫓겨난 강정 앞바다는 해상 크레인이 점령했다. 총을 들고 도민을 토벌하던 국가는 크레인을 ‘앞에총’ 삼아 해군기지를 ‘투척’하고 있다. 바다는 철조망에 갇혀 자유를 잃었고⑧, 구럼비 바위는 깨져 방파제의 일부가 됐다. “4·3도 찢지 못했던 주민들의 유대가 해군기지 찬반을 두고 너덜너덜 조각났다”며 90살 넘은 유족은 한탄했다. 국가추념일 지정 뒤 첫 행사(4월3일)가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국가는 유족들 앞에서 <아름다운 나라>를 합창했다. 노랫말(“나는 행복한 사람”)이 66년 전의 총알처럼 유족들의 심장을 쏘았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4·3 ‘희생자 자격’을 재심의하겠다며 법(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4월2일)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제주는 언제나 이방의 섬이며 식민지였다. ‘아무 일 없이 늘 아름다운 나라’에서 숨 막히게 아름다운 섬이 숨 막히게 목 졸리고 있다. 제주=사진 김흥구 다큐멘터리 사진가 docare@naver.com·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다큐멘터리 사진가 김흥구는 2003년부터 제주를 오가며 좀녜(해녀)와 4·3에 관한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