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2번지에 위치한 성주사는 신라 말 구산선문 중 하나로, 한때 2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며 수도하는 전국 최고의 절로 손꼽혔던 곳이다. 백제 때 오합사라는
절로 지어져 신라 말 낭혜화상에 의해 크게 중창됐다. 임진왜란 이후 서서히 쇠락해 지금은 절터와 그 위에 남은 몇 가지의 유물들만이 이곳이 절이었음을 알려준다. 성주사 절터 가운
데 오층석탑과 세 기의 삼층석탑이 줄지어 서 있다. 보통 금당 앞에 한두 개의 탑이 서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네 개의 탑이 이렇게 세워져 있는 것은 특별한 배치다.
전북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만복사 터가 보물 제32호인 당간지주 뒤로 펼쳐져 있다.
폐사지 기행을 하며 만나게 되는 풍경들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덤으로 얻는 행운이다.
사적 제168호인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거돈사 터에 보물 제750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외로이 천년의 세월을 견디고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됐으나 창건 연대는 미상이며, 고려 초기
에 대찰의 면모를 이룩했다. 7500여 평의 절터에 있는 금당지에는 전면 6줄, 측면 5줄의 초석이 보존돼 있어 본래는 20여 칸의 대법당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천지를 뒤덮을 듯이 쏟아지는 눈보라 속에서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했던 성철 스님의 말이 아니더라도 사람도 자연의 일부
임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경남 합천 성주사 터에 남아 있는 귀부. 보물 제489호인 이 귀부는 동서로 한 쌍이 남아 있는데,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무렵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373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입상이 하얗게 내리는 눈을 맞고 있다. 얼굴은 타원형으로 훼손이 심하나 인자한 모습이다.
보물 제100호인 충남 당진의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가운데 본존은 머리에 커다란 사각형의 갓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신체의 비례상 어색하게 큰 편이다. 불상의 몸은 대형화됐
는데 인체의 조형성이 감소돼 네모난 기둥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몸과 어울리지 않게 팔과 손을 붙여 비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있으며, 왼손은 배에 붙여 엄
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다. 좌우에는 본존불을 모시는 보살상이 있는데, 오른쪽 보살은 허리까지 묻혀 있고 왼쪽 보살은 머리만 파괴됐을 뿐 형식은 본존불과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