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개의 도자기를 위한 기나긴 여정… 2001 도자기엑스포로 거듭나는 여주
여주에 도요지가 조성된 시기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북내면 중암리에서 고려백자가마터를 발견했고, <세종실록>에 여주자기에 대한 기록이 있는 점과 시중 골동품상에 여주자기가 현존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주 싸리산에서는 도자기원료인 고령토가 생산되었는데 광주분원에서 뱃길로 운반해 사용했다. 이후 광주분원이 쇠퇴하자 도공 5명이 북내면 오금리로 이주해 자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여주 도예촌은 여주읍에서 강 건너 서북쪽으로 북내면 오금리, 현암리, 오학리와 천송리, 지내리 일대에 약 600여개의 도자기 공장이 밀집되어 있다.
1932년 조선총독부 도자기시험 보고서를 보면, 연간 현 시가로 약 15억원에 달하는 생산성을 갖추고 있어 전국 최대의 도예촌이 형성되었고, 최근 지자제 이후 도자기 산업에 대한 전폭적인 후원과 지원, 그리고 도예가들의 전승도예 연구로 독특한 신작을 개발하고 있다. 청자, 백자, 분청, 와태 등 다양한 종류의 작품과 제기, 화분, 식기, 찻잔과 접시 등 실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대량생산하고 있어, 여주에 가면 어디서나 찬란한 창작 작품의 감상은 물론, 저렴한 가격으로 취향에 맞는 도자기를 선택할 수 있다.
지난해 12회째 맞이한 여주 도자기 박람회는 연인원 100만명을 웃도는 관광객을 유치할 만큼 명성을 얻었으며 2001년 여주·이천·광주에서 동시에 개최되는 세계도자기엑스포에서는 여주 도자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유감없이 발휘하게 될 전망이다.
사진·글 이규철/ 이미지프레스

사진/ 도공 한상구씨의 인생은 흙과의 긴 전쟁이었다.
![]() 가마에서 작품을 선별한다. 자기 검증의 시간이다. |
![]() 한상구씨 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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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드러지고 파헤쳐진 손을 통해 그의 삶과 장인정신을 본다. |
![]() 손끝으로 전해지는 백토 질감으로 자기를 빚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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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공은 흙, 불, 그림을 알아야 작품을 만들 수 있다. |
![]() 작품이 완성되면 긴 여정의 회한만 남는다. |
사진·글 이규철/ 이미지프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