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생이니 올해 29살. 집배원이 하루 늦은 신문을 배달하고 환갑 지난 노인들이 대부분인 산골에서 구릿빛 얼굴의 청년 하문상씨는 마을 이장이다. 경북 문경시 동로면 간송1리. 장독대에 떨어져 주황빛 속을 드러낸 홍시, 추수 끝난 논에서 낙수를 줍는 농부, 깨알을 떤 깻단을 태우는 할머니…. 여느 시골과 다르지 않지만, 한 가지 다른 풍경이 있다. 곳곳이 오미자밭이다.
이장 일을 하는 데 젊은 나이는 불편할 때가 많다. 한 달에 두 번 동로면 이장회의에 가면 다른 이장들이 커피를 타오라는 둥 잔심부름을 시킨다. 그도 그럴 게 석학3리 이장은 친구 아버지다. 읍내 마트에 가서 담배를 달라면 학생이 무슨 담배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동네 어른들은 그를 부를 때 “어이” 또는 “자네”라고 한다. 그냥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밤에 바람처럼 지나가는 트럭의 형체만 보고도 “아, 윗마을 사는 누구 아잉교. 이 밤에 어딜 저리 빨리 가노” 하는 동네다. 찢어진 청바지 입고 다른 마을에 놀러갔다가 이장이란 놈이 동네 망신 다 시킨다고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나기도 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하 이장네는 마을의 활력소다. 할머니들이 이장 부인 채공주씨에게 딸 수연이 주라고 용돈을 쥐어준다. 시골에 들어와 사는 게 기특해서기도 하고, 채씨가 친구들을 자기 아들에게 소개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채씨는 하 이장보다 다섯 살 어린 스물넷.
지난해 부모님댁 아래쪽에 아담한 집을 지어 분가했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니 찾는 발길들이 끊이지 않는다. 밤 10시 지나 아랫동네에서 청년 다섯이 왔다. 한밤에 천렵 나가 건져온 피라미·갈겨니·쉬리·미꾸라지를 넣어 매운탕을 끓였다. 술을 마실 때, 하 이장은 꼭 고개를 돌린다. 어느 자리에 가나 막내이니 그리 버릇이 든 거다.
젊은 이장이 있어 45가구의 산골마을은 유쾌하다. 옆집 할머니가 자꾸 내려가는 전기차단기를 봐달라고 부른다. 동네의 힘쓰는 일, 아쉬운 일은 모두 하 이장의 몫. 농로에 빠진 차를 트랙터로 꺼내주고 길에서 어르신을 만나면 차에 태워드리고 물정 어두운 노인들에게 교통수당 챙겨드리고…. 급한 일이 생겨도 외지의 자식들은 빨리 오지 못하기에 하 이장이 노인들의 손발이 된다. 총선 때 시장에게 건의해 동네 하천 정비사업비로 5천만원을 따낸 걸 보면 하 이장, 정치 감각까지 갖췄다. 이장이 한끗발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동네 심부름꾼이란다. 일 한 번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먹고 돌아온 고향이다. 모르는 것도 많고 실수도 많았지만, 어르신들은 손자 같으니까 귀엽게 봐주신단다. ‘3년차 이장’인 지금은 동네 돌아가는 일이라면 다 알고 어떤 일이든 큰 소리 내지 않고 처리한다.
오미자는 해발 300m가 넘는 땅이라야 제대로 열매를 맺는다. 산골 지역에 딱 맞는 작목이다. 전국 오미자의 45%를 문경에서 생산하는데 그중 80%가 동로면에서 나온다. “간·심장·폐·신장·방광을 보호해주고예, 기침·천식 가라앉히는 데 좋아 가수들도 마이 마신다 아입니꺼. 숙취 해소와 피부 미용에도 그만입니더.” 하 이장의 오미자 자랑이 끝이 없다. 마지막에는 다른 말이다.
“우리 농촌 이리 가면 다 망합니더. 젊은 놈이 시골에서 성공하는 모델 하나 만들어볼라꼬예. 내 성공하는 거 보믄 젊은 사람들 시골로 많이 들어오지 않겠심꺼.”

20대 산골 이장님의 영그는 꿈

감 따기 작업을 마친 주민들이 늦은 저녁을 먹고 있다. 하문상 이장은 술잔을 들면 고개를 돌리는 것이 습관이 됐다.

아침 6시에 시작한 감 따기가 저녁 8시에 끝났다. 20kg이나 되는 감 상자를 옮겨나르다 보면 온몸이 쑤신단다.
젊은 이장이 있어 45가구의 산골마을은 유쾌하다. 옆집 할머니가 자꾸 내려가는 전기차단기를 봐달라고 부른다. 동네의 힘쓰는 일, 아쉬운 일은 모두 하 이장의 몫. 농로에 빠진 차를 트랙터로 꺼내주고 길에서 어르신을 만나면 차에 태워드리고 물정 어두운 노인들에게 교통수당 챙겨드리고…. 급한 일이 생겨도 외지의 자식들은 빨리 오지 못하기에 하 이장이 노인들의 손발이 된다. 총선 때 시장에게 건의해 동네 하천 정비사업비로 5천만원을 따낸 걸 보면 하 이장, 정치 감각까지 갖췄다. 이장이 한끗발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동네 심부름꾼이란다. 일 한 번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먹고 돌아온 고향이다. 모르는 것도 많고 실수도 많았지만, 어르신들은 손자 같으니까 귀엽게 봐주신단다. ‘3년차 이장’인 지금은 동네 돌아가는 일이라면 다 알고 어떤 일이든 큰 소리 내지 않고 처리한다.
지난 9월 문을 연 오미자 가공공장을 둘러 보고 있는 하 이장.

집 거실에 있는 게시판에 할 일들을 적고 있는 하 이장.
하 이장이 자랑하는 오미자밭. 이미 수확을 끝낸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