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마주한다. 환하게 번지는 웃음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서로를 보듬어 안는다. 그것으로 족하다. 이보다 더 서로를 잘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세월은 흘렀지만, 아픔은 그대로다. 감내해야 했던 질곡의 시간, 서로를 껴안는 순간 그 아픔은 흐르는 강물에 맡길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 작지만 평화는, 그 속에서 시작됐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 63년하고도 한 달여가 흐른 지난 9월7일, 일본 요코하마 오상바시 국제여객터미널. 머리에 서리가 내린 어르신들이 제 몸보다 커 보이는 여행가방을 들고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두 도시에 원폭이 투하될 당시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이다. 한 번도 얼굴 마주한 적 없지만,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아픔을 안다. 누가 먼저랄 것 없다. 서로 끌어안는 것만으로 지난 시간의 아픈 사연을 나누고, 서로의 고통을 보듬게 된다. 일본 도쿄에 본부를 둔 평화단체 피스보트가 1년여 준비를 거쳐 마련한 ‘원폭 피해자가 증언하는 평화 세계일주 프로그램’이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 4명도 배에 올랐다. 일본을 비롯해 전세계에 살고 있는 원폭 피해자 1세 102명이 평화를 위해 뱃길에 나섰다. ‘노 모어(No More) 히로시마, 노 모어 나가사키, 노 모어 피폭자, 노 모어 워.’ 더 이상 피폭을 바라지 않는다. 아픔도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전쟁! 사라져야 한다.
9월7일 요코하마항을 출발했다. 베트남에선 고엽제 피해 어린이들을 만났다. 피폭 노인들과 고엽제 피해 어린이들이 만나 전쟁의 아픔을 서로에게 증언했다. 눈물은 비가 되어 흘렀다. 인류의 원죄, 참혹한 아픔의 증언은 100여 일 동안 20여 개국을 돌며 세계인에게 전해질 터다. 반전·반핵·평화의 소중함을 전달하는 역사의 증언자들이 대양과 대륙을 가로지른다. 원컨대 지구촌에, 아~, 평화 있으라!
요코하마(일본)=사진·글 이정용 기자 한겨레 뉴스사진팀장 lee312@hani.co.kr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 102명을 실은 피스보트가 9월16일 첫 번째 기항지인 베트남 다낭항을 떠날 때 젊은 승객들이 부두에 환송나온 이들에게 평화가 영원하길 바라며 소리를 치고 있다.

9월15일 베트남 다낭을 찾은 피스보트 승객들이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들과 함께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점령했던 다낭 사우스차이나(샤오치나) 해안을 찾아 핵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다짐하는 행사를 연 뒤 하늘의 햇무리를 배경으로 해맑게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원폭 피해자가 증언하는 평화 세계일주’를 떠나기 전인 9월7일 오전 일본 요코하마 오상바시 국제여객터미널에서 곽귀훈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명예회장(##사진 위치?)과 모리타 다카시 브라질 원폭피해자협회 회장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서로 등을 두들기며 격려하고 있다.
‘더 이상 고엽제·핵무기·전쟁이 필요 없다’는 이름으로 전쟁 피해자 증언 행사가 열린 9월13일 베트남 다낭의 한 호텔에서 일본의 원폭 피해자이자 어린이 동화 작가인 모리모토 준코가 고엽제 피해 어린이를 끌어안으며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고 있다.
베트남 다낭항을 떠나기 전 며칠 동안 정이 들었던 피스보트 승객들과 베트남 다낭 청년동맹 회원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평화를 잊지 말자고 다짐하며 이별의 안타까움을 나누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 오상바시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원폭 피해자가 증언하는 평화 세계일주’를 위한 배가 성대한 환송식을 마친 뒤 부두를 벗어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