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비정규직의 구세주여 오소서

690
등록 : 2007-12-20 00:00 수정 :

크게 작게

7개월째로 접어든 ‘이랜드 사태’,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하는 수배자들

▣ 사진·글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지난 5월 이랜드 그룹이 비정규직 사원 500여 명을 집단해고하면서 불거진 뉴코아 이랜드 사태가 7개월째를 접어들고 있다. 노조는 파업을 선언하고 매장 점거 투쟁을 벌이며 반발했다.

△윤성술 순천지부장은 지난 6월 뉴코아 순천점 집회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경찰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서울로 올라와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지내다 활동의 자유(?)를 위해 명동성당으로 옮겼다. 성모마리아상 앞에 멈춰선 그는 말없이 발밑을 내려다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동지들? 가족?


뉴코아 노동조합의 박양수 위원장과 윤성술 순천지부장은 투쟁 과정에서 사전구속영장과 체포영장이 발부돼 있는 수배자다. 5개월 넘게 도피 생활을 해온 이들은 더 이상 머물 곳이 없어 지난 11월20일부터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의 농성을 허락할 수 없다는 성당 쪽과 몇 번의 마찰을 빚기도 했다.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주임신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한 뒤에야 천막을 칠 수 있었다. 연말의 거리는 휘황찬란하고 사람들은 대통령선거 운동에 몰려다니지만 이들에게는 먼 이야기이다. 세상은 이들을 잊은 듯하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박양수 위원장의 휴대전화 속에 담긴 돌이 막 지난 아들 사진. 농성장에 찾아온 아이가 울면서 돌아간 뒤 박 위원장은 가족에게 농성장을 찾지 말라고 했다. 아이들이 눈에 밟힐 때면 휴대전화를 꺼내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랜다.

“위원장님!” 조합원 총회를 마친 동료들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잘 따르던 어린 조합원이 반가움에 와락 박 위원장을 끌어안는다. “해가 바뀌기 전에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보고 싶습니다.”

명동성당에서 음악회가 열려 늦은 시간이지만 사람들이 많다. 사람 구경도 할 겸 성당 들머리까지 나왔다. 여기까지가 이들이 나갈 수 있는 선이다.

세 평 남짓한 천막 안은 전깃불이 없어 어둡다. 밤이면 비닐 사이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의존해 생활을 한다. 누가 천막 근처에 가까이 오면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림자를 쫓는다. 혹시 천막을 철거당할지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이다.

성당에서는 지하의 세면장을 사용하도록 허락해주었다.

11월20일부터 성당에서 농성 중인 뉴코아 노동조합의 박양수 위원장(왼쪽)과 윤성술 순천 지부장.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어 시작한 농성. 내 발로 이곳에서 그냥 나갈 수는 없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